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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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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Jan 22. 2018

19줄에 인생이 보인다

이 아침에...

낚시를 좋아하는 강태공들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낚시야 말로 우리네 인생사와 너무도 닮았다고 말하는 이가 있을 것이며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인생이 골프와 같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취미가 무엇입니까?” 라로 물어오면 나는 주저 없이 “바둑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나는 바둑이야말로 우리네 인생사와 같으며  판의 바둑에는 삶의 지혜가 들어있다고 말할  있다. 


내가 바둑을 처음 배운 것은 아마도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와 함께 배웠다. 처음에 나는 무조건 남의 돌을 잡으려고 덤벼들었고 안전하게 돌을 이어가며 집을 짓는 아버지에게 계속 졌다. 모험을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아이가 계속 안정만을 추구하는 어른을 따라잡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지금까지 40여 년째 바둑을 두고 있다. 


바둑에는 초반, 중반, 그리고 끝내기라는 것이 있다. 초반은 반상에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이고 중반은 이미 구상해 놓은 밑그림에 따라 상대를 몰며  집을 키우는 단계이고 끝내기는 막판에 마무리를 하는 과정이다. 

바둑이 세상사만큼이나 복잡하고 힘든 이유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넌지시 미끼를 던지기도 하고 수가 꼬이면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한쪽에서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면 잠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두는 것이 좋다. 불리하다고 생각했던 상황이 도리어 나중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돌이라도 이를 이용하면 실리를 취하거나 세를 키울  있다. 영어에 “Do not burn the bridge.”라는 (다리를 태워버리지 마라.) 표현이 있다. 거래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지금 당장 내게 손해가 난다고 해서  잘라 버리기보다는  정리를 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두면 후에 도움이  수도 있다는 의미다.

 

너무 일찍 상대방의 대마를 잡으면 도리어 역전패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상대방이 무리수를 두며 계속 싸움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자칫 싸움에 말려들면   대마가 죽어 내가  수도 있다. 이때 너무 몸을 사리는 것도 좋지 않다.

 

우리네 인생사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거칠게 나오는 상대에게 잘못 걸려들면 피해를   있지만 너무 양보만 해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을 분명히 긋고 이를 넘어서면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세를 너무 좋게 보아도, 너무 나쁘게 보아도 바둑은 진다. 조금 이기고 있다고 해서 자만하다 보면 어느새 역전이 되기도 하고 너무 일찍 판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해서 무리수를 두어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인생도 살다 보면 위기를 맞기도 하고 기회를 잡기도 한다. 힘겨운 상대와 대국을  때도 인내하고 기다리면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면 기회를   있다. 이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해야 그다음에 찾아는 오는 기회를 잡아 기사회생할  있다. 너무 과거의 실수에 집착하면  앞에 다가온 기회를 놓치고 만다. 


바둑에서는 수순에 따라   있는 돌이 죽기도 하고 죽을 돌이 살아나기도 한다. 세상사에도 순서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정해진 순서를 밟아 가는 것이 순리이며 안전한 길이다. 


바둑은 외면상은 둘이 두는 것이지만 실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적당히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고 가슴에 해당하는 직감과 머리에 해당하는 수순이 적당히 조합을 이루어야 좋은 바둑을   있다. 


이겼다고 해서 모두 기분 좋은 바둑은 아니다. 내가 잘못  바둑인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어이없는 실수로 이겼다면 기분은 개운치 않다. 한수 한수 최선을 다해  바둑이라면 비록 졌더라도 기분이 좋으며 이런 대국을 통해 배우게 된다. 


인생이라는 바둑판에서 나는 이제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큰 역전을 꾀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끝내기만  하면 작은 차이지만 이길 수도 있는 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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