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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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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동운 Don Ko Nov 08. 2019

문이 잠긴 화장실

이 아침에...

얼마 전 주일 아침의 일이다. 늘 하던 대로 미사 전에 화장실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급히 돌아 나와 열쇠 당번을 찾으니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고 한다. 내가 다니는 성당은 자체 건물이 없어 가톨릭 고등학교 건물을 빌려 쓰는데 구역별로 돌아가며 한 달씩 성당문을 열고 닫는다. 50년대 지어진 낡은 건물이라 장애인 편의시설이 부실한 편이다. 예배당 가까이 있는 화장실은 문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조금 떨어져 있는 교실 쪽 화장실 사용하곤 한다. 


마침 전례를 담당하는 H 씨가 지나가기에 혹시 열쇠를 가진 사람이 있나 물어보니 K회장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정을 설명하니 미사를 준비하고 있는 K 씨 쪽으로 갔다. 두 사람이 멀리서 내 쪽을 보며 잠시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갔다. 아마도 이쪽 화장실이 열려있으니 그걸 쓰겠거니 했던 모양이다.


곧 미사가 시작되었고, 다행히 급하지 않아 잘 참아냈다. 


미사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나는 과연 성소수자나 불법 체류자들이 처한 상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 세상은 다수의 편의를 위해 돌아간다. 소수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는 법의 힘이다.


아직도 한인 비지니스들 중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곳들이 있다. 화장실 가는 길목에 식재료나 남는 의자들을 쌓아 놓은 것을 보게 된다. 내가 화장실을 찾으면 두 가지 유형의 반응이 있다. 미안하다며 길목에 놓인 물건들을 얼른 치워주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치워달라고 해야 겨우 낯을 붉히며 치워주는 가게도 있다.


내년이면 미국의 장애인 복지법이 (ADA)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 미주의 한인언론에서는 가끔씩 장애인 공익소송에 대한 보도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장애인이나 변호사들이 부당한 소송을 한다는 부정적인 보도다. 합의금을 노려 악의를 가지고 이런 소송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법이 생겨난 지 3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많이 구독하는 ‘매일미사’에는 신자들의 기도라는 항목이 있고, 여기에는 자주 장애인을 위한 기도문이 실린다. 혹시 이런 기도를 하면 하느님이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해 주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시는 기적을 행해 주시리라고 기대하는 신자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하느님은 이제 그런 기적을 행하시지 않지만 우리는 그 일을 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대상을 놓고 기도를 하는 것은 마음을 모아 그를 생각하며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일이다. 장애인을 위해 기도했다면 그다음은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실천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해 문을 열어주고 자리를 양보하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미혼모를 위해 기도했다면, 주변의 미혼모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가끔은 아이를 돌보아 주거나 더 이상 쓰지 않는 아동용품을 나누어 쓰는 것이다. 


성당에 장애인 화장실이 생길 때까지 당분간 주일 아침에 마시는 커피 양을 줄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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