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투이의 자전적 소설 ‘루’ (Ru)의 영어판을 읽었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141페이지의 분량이며, 소설이라기보다는 연작 에세이에 가깝다. 그녀는 한국이 군대를 보내 지키려 했던 월남 시절에서 시작해서, 남쪽 정부의 패망, 보트를 타고 탈출하여 캐나다에 정착하기까지의 시절,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베트남의 이야기를 마치 엽서에 사연을 적어 보낸 듯이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공산치하에서 탈출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투이의 가족도 다이아몬드를 어금니에 박고, 아이들 옷깃에 꿰매어 숨겨 탈출했다. 많은 이들이 금니를 해 넣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의 글에는 브래지어를 커피 노점상들이 사용하던 헝겊으로 만든 커피 필터라고 생각하는 소년병이 나오며, 한 끼 밥을 먹기 위해 나이 든 남자의 자위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소녀들이 나온다.
평생 일로 허리가 굽어 층계를 내려갈 때면 무게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 넘어질까 봐 뒷걸음질로 내려가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나온다. 유모차를 밀며 마을회관을 찾는 우리 어머니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미국은 1987년에 월남에서 미군들이 만들어 놓은 혼혈아들의 미국 이민을 허락하는 법을 만들었고, 7만 5천 명이 넘는 혼혈 가족이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미군이 한국에 만들어 놓았던 아이들, 한국군이 월남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의 시련을 생각해 보게 된다.
월남이 적화 통일되며 많은 이들이 희생을 치렀을 것이다. 죽은 이들도 있을 것이며, 수년 동안이나 수용소에서 교화를 받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베트남은 한 나라다. 한때는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화해했고, 한국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직원을 10만 명이나 고용하고 있으며, 매년 5-6,000명의 베트남 여성이 한국으로 시집을 온다.
투이는 통일 베트남에 돌아가 수년간 살며 잊고 지내던 삼촌과 이모, 4촌들을 만난다. 내게도 북한 땅에 사촌들이 있다. 몇 명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실향민이었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북한 땅에 남아 있는 삼촌과 고모들도 모두 돌아가셨을게다. 통일이 된다고 해도 내가 사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념을 달리하는 두 집단이 하나가 되려면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해 희생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희생이 따르더라도 통일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는 돈을 주고 젊은 여성을 사는 남자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녀는 그 남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잠시나마 그녀들을 통해 꿈과 가능성이 가득했던 젊은 날로 돌아가고파 하는 그들의 마음을 그녀는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같은 동양 문화권이라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고 분단의 아픔을 겪은 나라의 이야기인지라 내가 기억하고 있는 60-70년대 한국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이민자라는 공통점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그녀가 썼다는 또 다른 책 ‘만’도 구해서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