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호텔 창문’은 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제목이며 수상작의 (편혜영)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은 최근 한국문단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상작 외에 실린 5편의 후보작이 모두 여성작가들의 작품이다. 30-40대 여성작가들이라 그런지 편혜영의 작품을 제외하고 나머지에는 모두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김금희의 ‘기괴한 탄생’에는 제자뻘인 대학원생과 사랑에 빠져 이혼을 하고 학교까지 그만둔 대학교수와 한국이 떠나고 싶어 스물두살의 나이에 마흔에 가까운 남자와 결혼을 해서 미국에 갔던 직장 동료 리애씨가 나온다. 남편은 20여년 넘게 그녀와 살며 단 한 번의 섹스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죽었고, 리애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혜진의 ‘자정 무렵’에서는 레즈비언 커플이 주인공이다. 유리라는 친구를 통해 이성커플을 포함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눈에 비치는 동성애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이야기다. 주인공 지영은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의 딸 송이, 그리고 홀어머니와 함께 산다. 동네 책방에서 일을 하고, 근처에서 파스타 집을 하는 남자의 관심을 받는다. 이야기는 마치 가족 단막극같다. 단편 소설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조남주의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가정폭력과 성희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에게는 중2의 딸 주하와 과거에 ‘가정폭력상담소’를 운영했던 친정 어머니가 있다. 같은 반 남학생들이 친구의 교복치마 속을 사진찍는 모습이 우연히 주하가 찍고있던 교실 안 동영상에 들어간다. 그일로 남학생들은 학폭위에 불려가게 된다. 평소 알고 지내던 남학생의 엄마는 그녀에게 딸 아이를 잘 타일러 그날 일은 여자 아이들이 미리 짜고 남자애들을 부추겨 찍은 것이라고 진술해 줄 것을 부탁한다.
끝내 그녀는 부탁을 거절하고 가해 남학생들에게는 서면사과와 특별교육 처분이 내려진다. 반전은 소설의 끝에 나온다. “일부러 찍은 거야. 남자애들이 올 줄 알았어. 은비랑 대사 연습도 했었어.” 과거의 소설이었다면 아마도 주인공은 며칠을 고민하다 딸 아이를 닥달하여 거짓 진술을 하게 하고, 그로 인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
이 소설집은 요즘 한국 여성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자도 바람을 피울 수 있고, 이혼은 더 이상 흉이 되지 않으며, 여자도 여자를 사랑할 수 있고, 성희롱은 맞서서 싸운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제 한국의 단편소설에서 반정부 시위와 공권력의 위압, 노동자를 착취하는 부당한 상사의 모습 등은 사라진 모양이다. 사람들은 대의를 위한 투쟁보다는 개인의 삶에 더 관심을 보이게 된 모양이다.
문학상 수상작품집인데 여성 작가들의 작품만이 들어 있다는 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