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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맛의 기억

찐빵과 호떡

맛의 기억

by 고동운 Don Ko

70년대 은평구 역촌동에 살던 때의 일이다. 서부병원 옆에 아기 주먹만 한 고기만두와 찐빵을 파는 만두집이 있었다. 삼립호빵에 길들여 있던 나의 입맛에 손으로 빚어주는 이 집의 만두와 찐빵은 격상된 맛이었다.


이 무렵에는 ‘to go’ 용기가 발달되어 있지 않아 국물이 든 음식을 사려면 냄비나 주전자를 들고 가서 사 와야 했으며 국물이 없는 만두나 순대 따위는 종이에 싸 주었다. 종이가 직접 닿으면 들러붙을 수 있으니 얇게 켠 나무로 만든 도시락을 사용하기도 했다. 은은한 나무향이 나는 고기만두를 초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그 집에서는 호떡도 팔았다.


호떡에 대한 기억은 이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이모의 세 번째 남편은 ‘문 서방’이라 불리는 대머리 아저씨였다. 월남을 드나들며 무슨 사업을 한다고 했는데, 이모와 재혼을 한 후 몇 달 동안 외가의 사랑채에 머물며 지냈다.


이모와 자주 외출을 했는데 돌아올 때는 늘 손에 밤참을 사들고 왔다. 수박이나 떡을 사들고 오는 날도 있었고, 호떡을 사들고 오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문 서방’ 이 이모와 함께 외출하는 날이면 밤이 깊어도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렸다. 그러다가 얻어먹는 밤참의 맛이 얼마나 좋던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은근히 ‘문 서방’의 귀가시간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얼마 후, 그 밤참은 모두 할아버지의 돈으로 사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말았다. 사업자금이 필요합네 하며 할아버지에게서 돈을 빌려다가 흥청망청 쓰고 다녔던 것이다. 나중에는 ‘사기꾼’ 어쩌고 하면서 어머니가 그와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월남으로 돌아갔고, 이모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미국 온 지 17년 만에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누군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기에 ‘찐빵과 호떡’이라고 했더니 저녁을 잔뜩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파는 호떡을 한 봉지 사서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배가 너무 불러 도저히 호떡을 먹을 수 없었다. 마침 머물고 있던 숙소가 S 재활원의 기숙사라 밤에도 당직 교직원이 있었다. 17년 만에 받아 든 호떡은 그렇게 당직 교직원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후 한국에 4번이나 더 나갔는데, 한 번도 호떡과 찐빵을 먹을 기회는 없었다.


내가 사는 남가주에도 주먹만 한 왕만두와 호떡을 파는 집들이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맛은 아니다. 내 입맛이 달라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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