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대의 건물주가 되었다

평범한 막내에서, 하락장을 견딘 진짜 ‘현실 투자자’로

by 돈미새
평범한 막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출발하다


나는 남들이 말하는 ‘엄친아’도 아니었고,
사촌 형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잘난 구석 하나 없는 평범한 집안의 막내였다.

그래서일까, 내게 “건물주”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현실감이 없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20일 오전 11_56_29.png 출발선에 선 사람


2020년, 모두가 그랬듯 나도 아파트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방의 소도시 아파트 몇 채에 투자하면서, 부동산 그래프가 오를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렸고, 또 떨어질 때는 손끝이 떨리곤 했다.


그런데 내 인생의 진짜 전환점은 세 번째 딸이 태어난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삶의 중심은 ‘돈’보다 ‘가족’으로 조금씩 옮겨갔다.

아내는 셋째를 낳고 나서 친정이 있는 인천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결혼 이후 줄곧 경남에서 살며 시댁 근처를 지켜준 아내에게,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결심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인천으로 가자.”
아파트도 팔고, 지방에서의 투자도 멈췄다.

하지만 막상 올라오고 나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돈, 생활비로 까먹기만 하면 어떡하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 불안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가 2021년이었다.


공부하고, 떨어지고, 부딪히며 얻은 ‘진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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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은 지방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단순히 “지방에서 투자하던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방투자를 해보면 수도권의 투자와 다르다)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각종 부동산 서적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세상이 얼마나 크고,
내가 얼마나 작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나는 상승장 끝물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시장은 하루하루 가파르게 오르고, 주변은 “지금이다”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꾸로 생각했다.
“이럴 때 공부하고, 이럴 때 움직이는 사람이 결국 남겠지.”


그때부터 나는 현장을 다니며 직접 눈으로 지역을 봤다.
청량리, 상암동, 마포, 문래동…

하루에도 몇 군데씩 다니며,
“이 동네는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오는 곳을 따로 기록했다.


보통 사람들은 경매 물건이 있으면 검토를 하고 임장을 나가지만
나는 반대로 했다.

먼저 발로 다니며 지역을 보고,
그다음에 “내가 이 정도면 산다”는 기준가격을 정했다.

그 가격보다 싼 물건이 나오면,
숨 쉴 틈도 없이 입찰을 넣었다.


물론 모두 떨어졌다.

낙찰은 고사하고, 입찰표가 바로 폐찰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싸게 사지 못하면, 어떤 장에서도 이길 수 없다.”
이건 부동산의 첫 번째 원칙이니까.


‘가오’로 시작한 건물 투자, 그리고 상암동의 기적


경상도 남자는 가오에 산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차라리 갭투자로 망했다는 소리보다,
건물 사서 망했다는 소리를 듣자.”


그 마음 하나로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상암동이었다.
방송국, 드라마 제작사, 광고회사, 그리고 수많은 창작자들이 모여 있는 곳.


내가 본 건물은 대지 50평의 단독주택,
그리고 3층짜리 상가주택 두 채였다.

수중의 자금을 거의 다 쏟아부었고,
법인을 세워 용도변경 계약으로 매입했다.


돈은 부족했지만, 시간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었다.

잔금을 최대한 길게 미루고, 공사와 임차 마케팅을 동시에 진행했다.


방송국에 직접 전화를 돌리고,
드라마 제작사에 메일까지 보냈다.

처음에는 다들 귀찮다는 말투로 전화를 끊었고,
그때마다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갈 무렵
한 방송국에서 촬영 장소로 쓰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드디어 됐다.”


하지만 그 순간 또다시 생각했다.
“내가 방송국보다 더 좋은 임차인을 구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번엔 상권 분석을 다시 시작했다.
마포·상암 일대의 레스토랑과 카페,
20~30대 직장인 여성이 많은 소비층 데이터를 정리했고,

직접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 레스토랑 브랜드에서 내가 제시한 금액보다 높은 임대료로 계약을 요청해 왔다.

그렇게 나는 공실 없는 건물주가 되었다.

하락장에서도, 금리 상승 속에서도,
매달 꾸준한 임대 수익이 들어왔다.


불황 속에서도 배운 한 가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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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나는 건물을 조금씩 사고팔았다.

보증금으로 구옥을 매입해 리모델링을 하고,
예쁘게 고쳐서 새를 주고,
다시 팔기도 했다.


누군가는 “지금은 투자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남들이 멈출 때 배우고, 움직일 때 계산했다.


결국 부동산은 “남들이 무서워할 때”
그 무서움을 견딘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요즘도 상암동 건물에 2배 가격을 제시하는 연락이 온다.
유명한 부동산 중개법인에서 전화가 올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지금은 팔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만든 스토리를 지키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일, 그러나 진짜 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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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말도 안 돼. 소설 같다.”

맞다.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내 삶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나려면
적어도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30대의 평범한 남자였지만,
가족을 지키고 싶었고,
두려움 속에서도 발을 내디뎠다.


그 결과 지금, 나는
하락장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현실 건물주가 되어 있었다.


마무리하며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 끝에 얻은 제 삶의 기록입니다.

저 역시 불안했고, 여러 번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단순히 ‘부동산 이야기’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속에는 삶을 바꾸는 결단, 가족을 위한 용기,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 담겨 있으니까요.

저는 앞으로도 제 실제 투자 여정과 그 안에서 배운 경험들을 꾸준히 기록하고 나누려고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을 제가 실제로 투자했던 건물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할 이벤트를 준비 중입니다.

그날은 제 진짜 이야기를 직접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이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좋아요’와 ‘댓글’을 남겨주세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는 또 다른 동기이자, 앞으로의 여정을 이어갈 큰 힘이 됩니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도전에도 좋은 기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곧 다시, 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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