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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황돼지 Mar 08. 2024

0권부터 독서 1년 후기

- 독서는 만능일까?

작성자

- 30대 중반까지 독서를 하지 않음

- 1년 동안 140여 권 읽음


독서를 시작한 이유

- 글을 잘 쓰기 위해서

- 위기 극복과 성공의 단서 찾기

- 지식과 상식의 콤플렉스 때문에




1. 감수성

 저의 MBTI는 T입니다. 독서를 하면 T(사고형)가 F(감정형)로 바뀔 있을까요? 독서를 시작한 김에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근본적인 한계를 느꼈습니다. 타인의 눈을 통해서 다양한 관점을 깨우치고 그들의 가치관에 공감했지만 감수성의 성장은 없었습니다. 제가 기대한 것은 온도계의 변화였습니다. 똑같은 40도 폭염이라도 35도가 되었다가 50도가 되기도 하는 그런 독자가 되고 싶었나 봅니다. 문장을 사랑하고 음미하는 성향이 독서량의 영향인지 태생적 기질인지 모르겠습니다.



2. 글쓰기

 독서를 시작한 계기 중 '글쓰기'의 비중이 상당했습니다. 브런치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고 글을 잘 쓰는 방법에서 독서가 빠지는 포스팅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우선 글쓰기의 방향을 두 가지로 나눴습니다. 첫 번째는 시, 수필, 소설 등입니다. 수필만 조금 써봤을 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감수성 이슈도 있겠지만 문학은 엄청난 독서 내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소설만큼은 재능의 영역이란 느낌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비소설입니다. 이 부분은 독서가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이제는 책을 읽어야 글감이 생깁니다. 뉴스와 유튜브를 보아도 글감은 떠올랐지만 장문의 댓글에 가까웠습니다. 미디어가 제시하는 사례와 근거는 책 10장 분량도 안되더군요. 농축된 관점은 나무만 선명하게 만들고 숲을 못 보게 합니다.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을 보면 부끄러운 점이 많습니다.


 "소설도 아닌데 어떻게 하고 싶은 말로만 책 한 권을 채우지?" 비소설은 생각보다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주장이 1할이면 근거가 9할이었습니다. 주장만 나열한다면 대부분의 비소설은 A4 몇 장으로 요약됩니다. 독서를 하기 전에는 주장만으로 채우려 했습니다. 여전히 어려움은 있으나 의식해서 근거를 넣습니다. 비소설은 자료조사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독서도 자료조사의 일종입니다. 자료조사가 필력으로 직결되지는 않겠지만 설득력 있는 글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다고 주장합니다.


 독서가 글쓰기 능력을 높여준다는 믿음은 유효하지만 아직 체감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적극성의 차이라고 봅니다. 독서를 할 때 글쓰기와 필사를 병행하며 의식적으로 적용시킨다면 빠른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문장을 시험해 보고 주변에 보여주는 등 적극성의 유무가 많은 차이를 만든다고 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독서와 글쓰기의 관계는 내재된 감각의 발현이 아닐까요? 무의식적으로 쌓이는 어휘와 문장 감각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최소 3~5년의 독서 경력이 쌓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서와 글쓰기


3. 성공 - 경제적 자유

 수많은 자기 계발 콘텐츠는 독서를 강조합니다. "책에서 돈을 뽑는다.",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독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책을 읽어라!"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인류의 보고는 책 속에 있으니까요. 당연한 소리를 특별한 것처럼 말하니까 혼동이 옵니다. 시도도 안 해보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독서를 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브런치만 하더라도 독서 500권 1000권 후기가 적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서만 100권 넘게 읽은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들 중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행복 = 돈' 공식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와 마케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봅니다. 최근 성공팔이 관련 코칭 사업이 비판받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행복을 돈으로 묘사한 판매자의 잘못일까요? 아니면 경제적 자유만이 행복이라 여기는 구매자의 탓일까요? 저는 사회 문제로 봅니다만 어느 쪽이든 답답합니다.


 독서와 성공이 무관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필수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겁니다. 책을 한 권도 안 읽고 성공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기 계발서는 1권이면 충분합니다. 동기부여를 받고 각자의 방향에 부합하는 99권을 읽으면 됩니다. 읽어야 할 책 1권을 읽기 전까지 자기 계발서만 99권 읽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부 자기 계발이 '성공 포르노'로 불리는 이유는 동기부여의 달콤한 중독 때문입니다. 응원과 위로는 칭찬받는 것만큼 기분이 좋으니까요.



4. 배경지식

 독서로 부족한 지식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읽는 만큼 채워지긴 합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역사책을 20여 권 읽었지만 자신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대본 없이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독서를 하면 저렇게 되겠지?"라고 기대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기초지식이었습니다.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수능 위주의 정규 교과 과정을 충실히 수행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반 상식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책을 읽더라도 효율 차이가 심합니다. 저의 지식수준은 중3~고1이었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원리인데 독서의 환상이 컸던 것 같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수능에서 인서울 정도의 성취를 이루고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독서의 효율이 굉장히 높을 겁니다. 특정 분야에 오랜 기간 관심이 있는 경우도 만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은 새로운 영역과 전문 지식입니다. 새로운 것은 배경지식이랄 게 없으며 전문 지식은 누구라도 처음부터 배웁니다. 문학, 철학, 역사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 인문학 소양을 키우겠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만 판다면 50권 내외로 준전문가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늦게 시작한 독서는 선택의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꾹 참고 인문학 소양이 쌓일 때까지 견디느냐. 아니면 하나만 파서 결과를 빨리 보느냐.



5. 푸념

 가끔은 IQ와 조기교육 탓도 합니다. 저는 같은 책을 읽은 사람과 대화를 할 때마다 위축이 됩니다. 고유명사가 기억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억력, 즉 IQ가 낮은 겁니다. 나이 탓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힘이 빠집니다. 읽는 속도도 제가 훨씬 느립니다. 공부는 범위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따라갔는데 독서는 범위도 없습니다. 멀어지는 상대보다 느리게 달리는 느낌입니다. 교양 있어 보이고 싶은 욕구가 허영임을 알지만 사람이 그렇게 정직해지기는 쉽지 않더군요.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책을 읽었어야 합니다. 늦게 시작한 독서는 서른에 시작한 피아노와 닮았습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배우기 힘듭니다. 인간은 읽는 DNA를 타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기에 읽기 훈련이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영어공부를 충분히 해 놓은 사람은 어떤 미드를 보더라도 영어 실력이 늡니다. 반면 영어 기초가 없는 사람은 프렌즈와 빅뱅이론 모든 시즌을 보아도 제자리걸음입니다. 20살 이전에 100권을 읽은 사람이 30살에 300권을 읽은 사람보다 읽기 능력이 월등할 겁니다. 푸념은 푸념이고 묘수는 없습니다. 독서는 하루라도 먼저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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