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와 노점의 공존

가게와 노점은 함께함으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by 장혜영
6_201708부산_장전동_장전서점2.JPG 서점 앞에 재첩국을 파는 노점이 있다. 모퉁이 한쪽을 내어주며 공존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부산 장전동 장전서점 앞에는 재첩국을 파는 노점이 있고, 서울 상도동 성신의원 앞에는 붕어빵을 파는 노점이 있다. 부산 초량동 민생약국 앞에는 사과, 수박 등을 파는 과일 좌판이, 서울 낙성대동 구약국 앞에는 귀리, 보리 등의 곡물을 파는 좌판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유독 오래된 건물, 오래된 가게 주변에서는 분식, 잡화 등을 파는 노점을 쉽게 볼 수 있다. 앞자리에 홍보를 위한 입간판을 세울 수도 있고, 노점이 가게를 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공존하는 쪽을 택하는 오래된 가게들.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모퉁이 한쪽을 내어주며, 누구나 기댈 수 있는 작은 벽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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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에 홍보를 위한 입간판을 세울 법도 하건만 붕어빵, 야채, 과일, 곡물을 파는 좌판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포항 북부시장에 있는 현대조명 앞에는 이불을 파는 좌판이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1984년부터 가게를 운영하셨다는 현대조명 사장님은 원래 이곳은 담배를 파는 구멍가게였다고 하셨다. “이 담배 간판은 적어도 50년은 넘은 거예요. 시어머니께서 시작한 구멍가게에 있던 거니까요. 그땐 장사가 참 잘 됐어요. 구멍가게로 시작해서 이 집을 짓고 조명 가게를 하게 됐으니까요. 그땐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어요. 손님이 계속 오니까요. 여기가 우리 집이니까 늦게까지 할 수 있었죠. 요즘은 손님이 없어서 9시면 문을 닫아요.”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부부 사장님은 좁다란 터에서 시작했던 가게를 기억하며, 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가게 앞 모퉁이를 내어주신다. 요일마다 찾아오는 노점이 다른지, “일요일에는 이불집이 와서 앞에 깔고 장사를 해요.”라고 설명해 주신다. 작은 면적이지만 가게 앞을 공유하는 모습이 너무 따뜻해 보였다. 이불을 덮어주는 것처럼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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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파는 구멍가게에서 시작한 현대 조명. 요일마다 바뀌는 노점에 한 귀퉁이를 내어준다.


나에게 노점은 배고플 때뿐만 아니라, 마음이 허기질 때도 찾아가는 위로의 공간이기도 하다. 타지 생활을 하면서 지쳐갈 때 병원을 가듯 고향을 방문했고, 그때마다 수제비를 파는 노점들이 모인 포항 수제비 골목을 찾아갔다. 그곳에 가면 멸치로 육수를 내고 직접 손으로 뜯어 만든 수제비를 먹을 수 있는데, 사방이 뚫려있어도 후끈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요즘 집에서 수제비 하려면 힘들잖아.”라고 말하며 할머니부터 삼대가 나란히 앉아 푸짐한 음식을 먹는 것은 이곳의 흔한 광경이다. 2019년이 되어도 수제비 가격은 4천 원, 김밥 2줄에 2천 원으로, 온 가족이 다 나와 먹어도 부담이 없을 만큼 싸다. 기다란 일자형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뜨끈한 국물을 마실 때면, 나만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밥을 먹으면서 똑같은 하루를 견디면서 살아가는구나 싶어 진다. 이곳에서는 힘을 빼고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된다. 뭔가를 집중해 바라보고 옆 사람과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괜한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저 먹는 일 한 가지만 하면 된다는 것이, 쉬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노점은 분명 작고 허름한 공간이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가 긴장을 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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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201805동묘앞_동양장여관1.JPG 노점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거리를 생기 있게 만든다. 부담 없이 한 발짝 다가가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때때로 노점들이 통행에 불편을 주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기사들이 있지만, 구획 정리가 필요한 것이지 노점들을 없애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른 아침부터 파라솔을 펼치며 잡화들을 진열하는 노점들은 거리에 활기를 더하고, 노량진 컵밥, 광장시장 빈대떡, 남포동 씨앗 호떡 등 주변과 어울리는 품목을 판매하는 노점들로 지역은 특색을 갖게 된다. 그렇게 노점들과 상생하는 가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 그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게 된다. 실제로 노점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특성이 있는데, 2010년에 생긴 종로 꽃시장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버스를 타고 동대문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길가에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어떤 곳인지 궁금해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곳은 씨앗부터 꽃과 묘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물들을 파는 노점들이 모인 곳이었다. 원래는 종로 5-6가에 150여 명의 노점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너무 많아진 노점들로 통행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종로구는 보행권을 확보하고 동시에 노점들이 안정적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지금의 동대문역 인근의 한적한 도로를 정비해 시장을 만들었다. <정책 뉴스> 2012년 4월 16일 자 기사를 찾아보니, 위치를 옮긴 후 한동안 손님이 줄어 노점들이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꽃시장이 알려지고 시민들이 찾아오면서 주변 죽어있던 상권까지 살아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봄철 꽃시장에 가면 색색의 꽃들만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바람을 쐬는 사람들의 얼굴, 식물을 키우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상인들의 목소리에서도 생기를 느낄 수 있다.


뉴욕 패션의 중심지이자 예술가의 거리로 유명한 소호(SoHo) 지역을 관찰하며 소호를 소호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100가지 문법으로 정리한 <도시를 보다>(앤 미콜라이트, 모리츠 퓌르크하우어 지음, 안그라픽스 출판, 2012) 책에서는 노점상이 소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하나의 요소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람을 가장 많이 모으는 요소는 바로 사람이다.’라는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화이트의 말을 인용하며 유명 브랜드 매장이나 디자이너들의 샵만이 아니라 구석구석에 위치한 노점들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어떤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이미지로는 상점보다는 부평초처럼 떠도는 노점상이 더 강력하다.’(31쪽)라고 말하면서. 이처럼 노포와 노점들은 하나일 때보다 함께 있음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고 거리에 색을 입힌다. 참나무와 다람쥐의 관계처럼 서로 공생하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다람쥐는 참나무의 열매인 도토리를 먹기 때문에 자칫 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겨울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 땅 속에 도토리를 묻고 그 위치를 기억하지 못해 참나무가 싹을 틔울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노점은 가게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날씨가 덥죠.”, “떨이로 팔고 있어요. 2천 원에 5개 가져가요.” 시끌벅적하게 거리를 채우는 노점들은 아직, 도시가 살만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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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동대문_꽃시장6.JPG 동대문역 10번 출구로 나가면 도심 속의 정원처럼 자리한 꽃시장을 만날 수 있다. 꽃과 묘목을 파는 노점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주변 상권까지 같이 살아날 수 있다.


*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책에는 비록 수록되지 못했지만, 오래된 가게와 공생하는 노점의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가게들 사진을 찍다 보니 가게 앞에 작게 자리한 좌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가게의 업종과 전혀 상관이 없고, 가게 앞 미관을 해친다고 생각할 수 있음에도 모퉁이 한편을 내어주는 모습에서 아직 도시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책을 읽어주세요. 지역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하기를 통해, 더 많은 분들과 책을 공유해 주신다면 더더욱 감사드리겠습니다 :)


*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 책 소개

https://myip.kr/tZusU


2011년부터 오래된 간판에 매료되었고 필름카메라로 천천히 기록해 왔습니다. 사진가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이었던 제가 휴일마다 틈틈이 거리를 누비며 5천 장이 넘는 간판 사진을 찍었습니다. 왜 계속 기록했고 무엇에 그토록 매료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어 <버리지 않는 마음>, <사라지지 않는 간판들>이라는 책을 엮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겉과 속 둘 다가 아름다워서 반했던 것 같습니다. 폰트가 나오기 이전 간판 장인의 손글씨로 디자인해 수작업으로 제작한 간판들의 고유함이 좋았고, 또 생계를 넘어 사명감을 가지고 자리를 지키는 사장님들의 모습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오래된 가게와 사장님들께 존경을 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