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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Nov 03. 2019

[지극히 사적인 전시회 답사기](17)

(17) 일 년을 기다린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신인 발견의 공간

9월 29일은 2019 KIAF(한국국제아트페어)의 마지막 전시 날이었다. 그냥 쉴까? 그래도 궁금한데 가볼까? 이틀 전에 방송을 마쳤고, 하루 푹 쉬었는데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프로그램 한편 제작을 하고 나면, 밤을 새지 않았더라도 기가 빨린다. 마음 속 ‘밀당’을 한참 하다가 ‘끙차’ 힘을 냈다. 그래도 일 년을 기다린 전시회니까.         

 전시 마지막 날이라 관람객이 붐빌 것을 예상하고 개장 시간에 맞춰 갔는데도 이미 표를 사기 위해 선 줄은 길었다. 이렇게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문화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낮을까 잠깐 고민도 해봤다.     

  코엑스 내 17,658제곱미터(5,300여평)의 공간은 국내외 갤러리와 작가들이 선보이는 1만점의 그림들로 채워졌다. 마치 편집숍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유튜브가 트렌드인 세상에서 아직 TV가 매력적인 이유는 우연히 마주치는 TV프로그램에서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윤형근 작가, 관람 기회를 놓진 베르나르 뷔페 같은 유명 화가의 그림은 물론이고 신인작가들의 작품을 만나수 있는 우연성이 있기에 이런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전시회를 좋아한다.      


  

이런 공간에서 그림을 마주하면, 평소 미술관에서 본 유명 작품들도 다르게 보인다. 그림을 비추는 하이라이트 조명도 없이 가벽에 걸린 그림들. ‘조명빨’,‘벽지빨’ 없이 다닥다닥 걸려 있는 그림들은 솔직히 말하면 한 작품 한 작품 존중받는 느낌은 아니다. 마치 오디션 무대에 오른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정정당당하게 심미안을 겨루는 느낌이다. 겨룬다는 말이 예술을 말하기에는 천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아트 페어가 그림을 사고 파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대형 갤러리 소속 혹은 유명 작가라는 스펙을 떼고 많은 그림들 속에서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이랄까.      


 덕분에 신인과 무명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미적 경험은 더욱 확장된다. 방송 제작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 미술품 관람을 하다보면 소규모 갤러리들은 아무래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다. 국내외 유명작가나 대형 전시를 우선으로 찾게 된다. 때문에 이런 공간이 소중한다.      

전북에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 문 민 작가의 ‘me’, 2019년 작


 커피 한잔으로 점심을 대신하면서까지 의욕을 부려봤지만, 1만여 점의 그림을 하루 만에 찬찬히 감상하기는 어려운 일. 그러다보니 작품을 스윽 보고 마음에 들면 해당 갤러리의 작은 전시 공간에 들어가서 미술품을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작품 자체에 더 주목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취향에 맞는 그림들 앞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자신의 취향을 알아간다.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한 최소영 작가의 <백구집을 찾아서>, 2018년 작

한참을 관람하다 알게 된 점 하나가 있다. 전시 홀의 중심 복도는 국제 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바톤 갤러리 같이 내노라하는 유명 갤러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소규모 갤러리들은 변방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그림을 걸어 놓았다. 특히 광주나 대구, 창원 등 지역의 갤러리들은 한산했다. 필자도 폐장 시간이 가까워지자 조급한 마음에 작게 붙어있는 갤러리의 팻말을 보고 지역의 소규모 갤러리면 그냥 휙 지나쳤다. 무의식적 행동을 인지하고 아차 싶었다.      


 지역 예술가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7년 전에 지역 총국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하다가 만난 지역 화가와 조각가들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은 지역 내에서도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건축법에 따라 조형물 설치가 의무지만, 공모전에 출전해도 알음알이 인맥에서 밀려 결국은 선택받지 못하는 가난한 예술가들이었다. 그곳에서도 스펙과 인맥이 중요했다. 그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지역에서 예술가로 활동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고립되는 상황이었다.      


 제작을 마치고 음악 감독과 술 한 잔을 한 적이 있는데, 지역 예술가들의 고통을 전한 적이 있다. 예술계 종사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더 쎈 아이템‘ 뒤로 밀리게 되고, ’아름답고 고귀해야 하는 예술‘에 가려 지역 예술의 이야기는 또 묻힌다.    

   

 키아프 행사에 어떤 셀럽이 방문했고, 어떤 유명인이 어떤 그림을 샀고, 방문객이 얼마가 증가했다고 축포를 터뜨릴 때, 소외된 신인 작가들과 중소 신생 갤러리의 어려움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싸한 배경 없는 스펙의 고단함, 서울 집중이라는 양극화, 해외라면 일단 좋게 보고 들어가는 시선은 미술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혼자 신이 나서 다섯 시간을 돌아다니면 관람한 전시회지만, 뒤늦게야 전시 공간들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었다는 사실에 어찌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끼고 온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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