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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 Jan 30. 2019

<두번째 도서관>

2. 내 인생의 가장 의미있는 날짜

 13년 전, 5월 1일은 내가 뜬 눈으로 밤을 샌 날이다. 고민이 있어서도 아니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내일이면 아기가 태어난다는 생각에 산부인과 입원실에서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깨어있었다. 나는 뱃속의 아이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다는 생각으로 흥분되고 긴장되었는데, 옆에선 남편이 쿨쿨 자고 있었다. 간이침대가 불편해서라도 잠을 설 칠만 한데, 마음 편히 자는 남편을 보며 감성도 없는 남자라고 속으로 욕하기도 했다. 아기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 아기도 다른 신생아들처럼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터뜨릴까? 내일부터는 나의 2세가 생기는 건가?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려나.     


 계획대로라면 그 날 아기를 낳을 예정은 아니었다.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의사 선생님이 자궁 속 아기의 위치 때문에 내일이라도 아기를 꺼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를 한터라, 성격이 급해 무슨 일이든지 빨리 결정하는 나는 그날 오전 바로 입원을 했다. 덕분에 진통 때문에 어떤 정신으로 아이를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다른 산모들과는 달리, 출산에 대한 무용담은 없다. 이런 저런 검사를 마쳤고, 양가 부모님들께도 내일 아기가 태어날 것 같다고 소식도 전했다. 직장에 전화를 걸어 인수인계 내용을 설명을 했더니, 선배들은 아기가 우선이지 회사 일은 걱정 말라며 순산을 기원해 줬다. 모든 것이 잘 진행되는 방송 프로그램의 녹화 큐시트처럼 순조로웠다. ‘아기 낳는 것,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그날 저녁부터 어두운 병실에 누워, TV도 라디오 소리도 없이 적막 속에서 여덟 시간을 아기를 기다리며 보냈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SNS로 소식을 전할 수도 없었고, 뉴스나 웹툰을 검색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살면서 늘 새로운 것을 마주하지만, 그 날처럼 맑은 정신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기대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한 밤중에 여덟 시간 정도를 혼자 깨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병실은 분주해졌다. 나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산모들 때문에 의사와 간호사들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보다 늦게 병원에 와서 먼저 출산한 임산부도 있었다. 그렇게 나의 아기는 느린 걸음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에게 다가왔다. 응애응애. 드디어 아가의 탄생.     


 그 날 이후 13년이 지난 지금. 우리 딸은 여전히 느리다. 성격이 급한 나는 때로는 그런 딸을 다그칠 때가 많다. ‘엄마, 나는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엄마가 먼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답은 이거야 라고 말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안 될까?‘ 하고 얘기할 만큼 자란 우리 딸. 이제는 키도 나를 따라잡을 것 같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 때문에 툭탁거리는 횟수도 늘고 있다. 2007년 5월 1일 기다림의 밤이 있었기에 너를 만났고, 덕분에 엄마의 인생이 충만해졌다고 고백하면 딸아이는 오글거린다고 하겠지. 올해 딸아이 생일에는 낯간지럽지만, 고백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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