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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 베드로 Nov 19. 2020

毒舌

촌철살인(寸鐵殺人). ‘작은 조각의 쇠붙이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란 뜻이다. 상시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우리들의 언어인, 말 한마디도 이에  못지않을 만큼의 위력을 지니고  있어,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오직 했으면, 세치 혓바닥이 사람  잡는다 라고 했을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것과 ‘말이 씨가 된다’ 와는 그 전하는 뜻이 서로 같지는 않지만,  한마디의 말의 강도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우리에게  잘 말해 주고 있다.


이처럼 입으로 전해지는 ‘말’로 인하여 유 불리의 영향을 끼치는, 우리들의 일화는 이 외에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입은 하나인데, 귀는 두 개인 이유는 내 말은 적게 하고, 남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충고 또한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살아가는 인생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인연들과의 관계에서, 누구나 몇 번쯤은 타인의 말 한마디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또 누군가로부터는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을 듣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영원히 잊힐 것 같지 않았던 말의 큰 상체기도 흐르는 세월에 따라, 뇌리에서 사라져 가기도 하지만, 까맣게 잊고 지냈던 과거에 누구에게 들었던 말의 상처가, 느닷없이 되살아나 우리의 밤잠을 설치게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점은 바로 易地思之의 정신으로 나를 한번 되짚어 볼 일이다. ‘나는 과연 타인에게 좋은 말만 하며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보통 내가 남에게 배 푼 것은 잘 기억하지만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쉽게 망각해 버린다고 한다. 바꾸어 얘기하면 내가 타인에게 준 상처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내가 받은 상처는 그렇지 쉽게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oo야!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이때까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 한마디에 함축된 우리들의 평소 생각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필부이고, 범부임으로 내가 받은 상체기는 먼 과거의 기억이지만, 그 상흔만큼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가슴에 옹이가 되어 남아있다. 그것도 위로를 받아야 할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였기에 더더욱 그렇다

.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형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나는 급히 고향 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평소 나와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둔 아버지를 딱히 외면하기란 자식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죽음이 아버지와 나를 갈라놓을지라도 나는 결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설사 나중에 후회할지라도 당시의 내 심정은 참으로 냉정하리만치 아버지에게는 비감했다.   

  

평소 아버지는 당신만을 생각하며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2년을 더 살아오시면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배우자인 어머니에게 살아생전 행했던, 모든 악행을 뉘우치기는커녕 , 최소한의 미안함도 없는 듯 당당하게 살아오셨다. 이를 쭉  보아은  나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아버지의 약점을 파고들며, 때로는 신랄하게 이를 따지기도 했다.그러나 당신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그렇게  보내 오셨고, 이제 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이러한 아버지를 효도란 이름으로 묵인(?)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폭력과 타 여인들과의 질탕한 행위 등을 보면서 자라온 나는,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악행과 폭행을 막으며, 엄마를 보호하고자 했다. 그야말로 눈물바람으로 보내신 어머니의 일생을 생각하면,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생전에 어머니의 애간장을 태웠던 어느 여인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아버지가 다시 만난다는 소식에 내 인내심은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고, 이를 빌미로 나는 아버지의 치부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아버지에게 대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하면서.

     

내려가는 열차 안에서 아내는 이러한 나의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이 나에게 부탁 아닌 애원을 했었다. 제발 아버지를 조용히 보내드리자고. 당신의 그 뜻은 알지만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용서해 드리라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아내의 말을 경청하며, 이를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실의 분위기는 자뭇 무거웠다. 그러나 죽음과 가장 가까이 근접한 아버지는, 이상하리만치 말짱했다. 도저히 죽음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그렇게 보였다. 눈은 다소 휑했으나, 누구를 쏘아보는 그 눈초리는 여전했고, 내가 병실로 들어서는 순간 나를 보는 그 눈빛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다소 경직된 자세로 아버지에게 다가서는 내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웠고, 아버지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평소 나의 못 마땅한 행동에 맞서 독설을 뱉어내시던, 당신의 그 입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래, 이놈아! 너는 네 멋대로 살아봐라!”     

임종을 앞둔 노인의 소리라고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소리를 아버지는 내 지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아버지는  길을 떠나가셨다. 나의 마지막 명도 듣지 않으신 채.

    

아버지의 그 마지막 소리는 내 귀를 거쳐 나의 패부에 깊숙이 박혀 지금까지 살아 움직인다. 돌아가신 지 8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나는 아버지에게는 용서받지 못한 패륜아로 낙인이 찍혀 오늘을 살고 있다.   

  

내 나이로 본다면, 이제 곧 멀지 않은 장래에 아버지를 뵙게 된다. 그때 과연 나는 어떤 인사로 아버지를 대하여야 할지를 지금부터라도 신중히 생각해 봐야겠다. 옆에 계시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훈수라도 해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2020. 깊은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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