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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 베드로 Dec 08. 2020

한수원 가는 길

오랜만에 찾은 경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2004년 전후의 무렵이었으니, 15년 전쯤 되었나 보다. 당시 모 레콘 생산 및 공급회사에 근무하던 나는 한수원에서 발주한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의 레미콘 공급 소장으로 이곳 경주에서 근무했었으니 짧지 않은 세월이 참 많이도 지나간 셈이다. '경주'라고 쓰인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도로로 진입을 하니, 커다란 한옥식 지붕 밑으로 아담하게 꾸며진 톨게이트가 우리를 반기고, 하이패스 구역을 통과하여 조금 지나니 확 펼쳐지는 들녘의 싱그러움이 코끝으로 스며든다. 오른쪽으로는 경주 남산이 그때나 지금이나 늘 모습 그대로이고, 모든 것들이 전보다 많이 세련된 느낌이 들만큼 깔끔했다. 최근 지진의 피해가 제법 된다 하였는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짱했으며, 관광도시의 면모를 보란 듯이 과시하고 있었다.


버스기사의 설명을 들어며 도착한 곳은 불국사 근처의 '김동리. 박목월' 문학관이었다. 역시 한옥으로 지어져 고도다운 냄새가 물씬 풍기고, 향토색이 베인 실내는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으며, 잘 보관된 유품들과 초고 원고들도 잘 정돈된 채로 우리를 맞아주어, 그분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글과 시를 쓴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아닐 텐데, 그 많은 언어들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다루어 우리들에게 깊은 감흥과 깨달음을 주고 있는 두 분의 맑은 영혼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가슴에 와닿는다. 성선설과 성악설을 놓고 볼 때 작가나 시인들의 그 순수성을 볼라치면 선설이 맞는 것 같은데,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의 악습을 보면, 또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여 도무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관장님의 간단한 문화 소개를 끝으로 우리는 그곳을 벗어나, 원래의 목적지인 한수원 본사로 향했다. 날씨는 청명했으며, 덥지 않은 태양은 빛나고 있었고 토함산 중턱을 향하는 버스의 엔진 소리도 경쾌하게들리며, 덩달아 우리들 마음까지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산 정상 쪽으로 약 십여분을 올라가니 초현대식으로 지어진 우아한 한수원 건물이 눈앞에 전개되며, 우리 앞을 막아선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S부장'은 홍보실에서 파견되었으며, 50 초반 정도의 초로의  멋진 신사였으며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가 매력적이었다. 근처에는 넓은 공원도 조성되어 있었어, 삼천 여명의 직원들과 그 가족들 또 인근 주민까지도 아우르는 휴식처로도 제공되어, 주위의 쾌적한 생활의 여유를 말해주는 듯했다. 건물 뒤쪽으로는 '어린이집'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어, 웬만한 도시의 사설기관보다 더 큰 규모였는데, 직원들이 아이들과 같이 출퇴근을 한다니 근무의 안정감과 함께 육아의 부담감을 들어줄 것 같아 참 좋아 보였다. 도시에서 아등바등거리며 육아와 일에 시달리는 워킹맘들이 참 딱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홍보관으로 이동하여 'S부장'의 익살스러운 멘트와 함께 그들이 그렇게 안전하고, 유익하다는 원전에 대하여 본격적인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과연 그들이 나를 설득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볼일이다. 사실 나는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긴 했으나, 그 자세한 내용은 모르고 있기에 궁금하기도 했고, 또 여타 시민단체나 환경단체에서 주장하는 원전 반대의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싶었기에 이번 방문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냥 안전하다는 그 말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설명하기란 한계가 있지 않나 싶기도 했다. 우선 설명하는 부분 중에 내 귀에 언듯 들어오는 문구는, 지구온난화와  온실가스 효과였다. 얼마 전 읽었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 책은 물론 우주를 기초로 한 천문학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었으나, 지구의 환경문제도 광범위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의 해박한 지식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S부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지고 우리들은 점점 그의 말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도무지 원전의 증설을 반대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는 안전하다는 몇 마디의   말과 그 안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냥 지나치고 있었고, 정부시책에 대하여는 여전히 한마디의 불만 제기는 없었다. 이 리치나 저리 치나 그 말은 그 정책 자체를 반대함이 분명했다. 하기야 한수원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의 설명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여튼 계속된 그의 원전 예찬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설명을 양념으로 슬쩍 넣으면서 거의 '예찬론'으로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 반론에 대한 해명이나 언급은 전혀 없는 채,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UAE의 어느 도시에서 건설한 원전 기공식에 참석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를 본 일행들의 야유와 원색적인 비방을 곁들이면서, 설명은 끝이 났다. 태극기 부대는 이곳에도 대부분으로 존재하고 있었으며, 참 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전의 편리함이나 경제적인 효과야,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처해있는 우리의 제반 여건을 감안하자면 증설을 반대할 이유가 없음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에 따른 반론은 들어주지도 않은 채, 일정이 빡빡하다는 인솔자의 요청으로 질문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증설을 반대하는 환경단체나 시민단체의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이 문제를 '박근혜와 문제인'의 논리로 몰아가고 있는 일행들의 어이없는 분위기가, 은근히 나의 화를 북돋우고 있었다. 모든 문제를 이분법으로 보고 있는 그들의 시각이 황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상식과 이념은 별개의 것임이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울컥 치미는 울분을 억누르며, 좀 더 진지하고 냉정한 자세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어, 애써 마음을 달랬다. 한번 잘못되면 거의 100년간의 재앙을 초래할 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모의 땅을 물려주어야 할지도 모르는 그 사실이,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 그에 대한 대책을 알고 싶고, 그 대책의 실효성을 우리는 알고 싶은 것이다.

현장시찰을 위한 버스 이동 중에, 저만큼 보이는 동해바다의 파도는 우리의 논쟁과는 관심이 없다는 듯 그냥 넘실거리며 천년 신라의 고도인 경주를 그윽이 바라보고 있었다.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도착한 입구 주차장은 평일이라서인지 한산했다. 국가 주요 시설인 관계로 출입절차가 쉬울 리가 없었으며, 지문감식을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늙은 피부는 영 반응이 없다. 시간은 지꾸 지체되고 갈길은 바쁜데 말이다. 할 수 없이 안면인식을 위해 원전까지 이동을 하여 몇 번의 시도를 다시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끝나면서 나를 포함한 일행 몇 명은 현장방문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이제는 기계조차 노인들을 괄시(?) 하나 하는 서글픈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중 원전을 보유한 국가는 30여 개국에 불과하다. 그 규모로 볼 때 미국이 단연 1위이며 그 뒤를 이어 러시아이고, 우리나라는 6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첨단과학을 선도하는 선진국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만큼의 반대급부가 항상 존재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 반대급부가 바로 '위험성'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알다시피 그동안 발생한 원전사고 중 3개의 큰 사고를 꼽는다면, 구소련(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미국의 'TMI', 그리고 이웃나라 일본에서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사고라 한다. 이 중에서 1986년의 '체르노빌'건은 발생한 지 30년이 훨씬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폐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고, '후쿠시마'인 경우 그 수습책조차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어 국제환경단체의 끊임없는 지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을 강행하려는 저들의 속셈은 은근슬쩍 '후쿠시마'를 올림픽에 묻어버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사고로 오염된 해수를 슬그머니 방류하려는 저들의 술책은, 옛날의 이웃나라들을 괴롭히고, 살육을 일삼던 그 침략의 근성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미국의 'TMI'사고는 비록 큰 규모의 사고는 분명 하나, 그 피해가 미미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탓으로 덜 알려졌다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미국의 시공능력이 그 진가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타 유럽의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탈원전정책을 추진해 옴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바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안전한 그 무엇을 대처한다 한들 100%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면, 1%의 가능성으로 발생되는 참혹한 재앙을 어떨게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해는 서편으로 방향을 잡았고, 우리는 석식을 위해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해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층 구조로 되어있는 조붓한 식당은 창가 쪽으로는 바다가 인접하고 있었으며, 눈앞으로 파도가 들쑥날쑥하고 있어 제법 운치가 그럴듯했다. 확 트인 동해바다의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며, 시원한 느낌과 함께 철 지난 피서를 온 기분이었다. 이미 준비된 식탁에는 곁들이찬 외에도 생선회 모둠과, 우럭구이를 포함한 푸짐한 먹거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들의 자리에 앉아 재담과 함께 저녁 만찬을 즐기며, 반주로 제공된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잠시 동안의 스트레스를  동해바다로 던져버렸다. 이렇게 우리의 일정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었다.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대금연주는 오늘의 휘 나래를 장식하기에는 고급스럽기는 했으나, 연주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의 즉흥적인 멋진 고전춤은 우리를 잠시 숙연하게까지 했다. 하루 동안의 한수원 방문을 마친 우리는 늦은 귀경길에 올랐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S부장'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고, 기회를 만들어준 두 친구에게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우리의 원전 문제는 이념과 정치적 논리로 따져 볼일도 아니고, 더더욱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서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돈으로 완전한 안전을 담보할 수 없을뿐더러 원전을 일찌감치 이용하고 있었던 선진국들의 탈원전정책 이유를 좀 더 눈여겨 살펴봐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부의 계획도 지금 당장 원전을 일시에 정리하는 것은 아니고, 수명이 다하는 것부터 줄여 나간다 하니, 그 기간은 50ㅡ60년이 소요된다 한다. 이미 그때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후손들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제3의 에너지를 찾아내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좁은 국토 속에서 오글오글 모여있는 우리의 원전 밀집도가 세계 1위라고 하니, 참 걱정스럽기도 하고, 후손들에게 큰 숙제를 떠 넘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 하였다.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바라본 경주는, 여전히 적요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저 멀리 산등성이에는 석양 다음으로 석훈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은 멀찍이 저만큼 떨어져 석훈이 떠나기를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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