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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19. 2021

네, 유럽에 혼자 왔습니다 1

2017.10.01 (이탈리아)

1일차


캐리어에 자물쇠를 걸어야 한단다. 

그래야 안전하다네. 부랴부랴 인천공항 다이소에서 자물쇠를 샀다. 캐리어에 야무지게 걸었는데. 웬걸, 자물쇠가 몇번 힘을 주자, 툭 부러져버렸다. 난처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다른 자물쇠를 찾아봐야겠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야 제맛 아닐까.(라고 정신승리를 해본다.) 목이 말라 물 사러갔다가 티켓팅 줄에 조금 늦었다. 인천공항 사람 참 많다. 티켓팅에 한시간 반 걸렸다.


터키항공, 인천-이스탄불, 12시간 소요. 자리는 좁았지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괜찮았다. 영화만 볼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 닭가슴살 버터구이 , 에그 야채 볶음 두번 기내식 , 맛있었으나 느끼했다. 커피 한잔, 콜라 한잔 마셨다. 화장실도 한번 다녀오고. 


영화는 밴 애플릭 '회계사' , 우주괴물 나오는 '라이프'. 그리고 우주로 이민가다가 사고나는 '패신져스'. 난 sf를 좋아하는 듯하다. 아니면 해외여행이 나에겐 우주로 가는 느낌인걸까.

이스탄불 공항, 5시 반에 떨어져서 다음 비행기 10시 반꺼 기다렸다. 새벽 공항은 묘하게 조용하면서도 번잡하다.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다 자물쇠를 샀다. 두개 14유로, 좀 비싸지만 튼튼하다. (역시 독일제) 

사람 아무도 없는 대기실에서 책을 읽었다. 가이드는 참 힘든 직업인 듯 하다. 노인분들이 잘 못 따라오신다.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정이니까 그럴수 있다. 아 그리고 귀 약이 효과가 있는지 착륙할 때 하나도 안 아팠다. 앞으로 비행기 탈때는 무조건 약 챙겨야겠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가져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생가의 살인'을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빨리 읽는 것 같아서 접어놨다. 아직 남은 날이 많은데 읽을 책이 없어지는건 대형사고다. 아껴서 읽자. 환승했다. 베니스로 가는 비행긴데 옆자리가 비었다!! 럭키! 비록 두시간이지만 편하게 갈 듯하다. 비내리는 이스탄불 안녕. 또 보자.


베니스 도착.

토요일이라 입국심사를 세명이서 하고있다. 사람은 수백명인데. 역시 노동자 중심국가답다. 덕분에 입국심사에 백만년 걸렸다. 베니스는 흐리지만 다행히 서늘하지는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구상 최악의 국가로 평했던 이탈리아를 만나러간다. (이미 입국심사장에서부터 서서히 느끼고있지만) 손목시계의 국가 코드를 로마로 바꿨다. (지샥 5600은 언제나 내 여행의 친구다.)


베니스는 물의 도시답다. 온통 물이고 운하다.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는 가방을 앞으로 맨 탓인지 별일 없었고(있었다면 큰일이었겠지만) 산 마르코 광장은 좁아터진 매립지에 그렇게 큰 광장을 만든 배네치아 사람들이 얼마나 부자였는지 대인배의 풍모가 느껴졌다. 광장에 오고나서 비로서 여행을 왔다는 것을 느꼈다(뜻모를 감동) 광장이 인간에게 주는 감동이란. 산마르코 성당은 공사중이지 않은 정면의 모습을 보게되는 행운을 누렸다. 금박의 모자이크타일 벽화 대리석 조각 등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져서 각종양식이 뒤섞인 묘한 건물이다.

산마르코 광장의 유명한 플로랑스 카페에서 세계 최초의 핫초코를 먹었다.(끝까지 들어가 바에서 먹으면 5유로) 헤밍웨이등 유명한 사람들이 마셨다는데 맛을 넘어서 그 곳에서는 뭘 먹어도 감동이었을 것 같다. 물론 세계 최초의 핫초코라는 게, 공인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역사를 가진 곳에서 차 한잔이라니. (광장테이블에서 먹고싶었지만 자유시간도 적은 관계로 참았다) 너무 진한 느낌은 마치 초콜렛을 그대로 녹여놓은 듯 하다. 이 나라는 화장실이 모두 유료라 플로랑스에서 화장실도 해결했다.



소운하를 곤돌라로 돌았다. 집 사이사이의 수로를 곤돌라로 돌아보는데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바로 그 뷰였다. 골목길을 배로 이동한다는 발상은 정말 대단하다. 예전보다 많이 가라앉아있는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그나저나 기둥이 나무라던데 물에 안썩는건지? 수많는 곤돌라 행렬을 보며 이 곳은 절대 관광수입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수면이 상승해서 도시가 물에 가라앉지 않는 한) 수백년을 버텨낸 물 위의 건축물들 사이를 곤돌라로 지나가며, 일부러 건물들을 손으로 만져봤다. 그러면 타임머신을 탄 느낌이다. 과거를 만지는 기분. 수백년의 시간을 손으로 느껴본다.

 


수상택시는 모터보트를 타고 대운하를 빠르게 유람하는 액티비티다. 탈까 말까 고민했다. 만만찮은 가격이어서. 그런데, 안했으면 후회할 뻔했다. 이걸 타고 한바퀴 도니, 왜 베네치아가 살고싶은 도시 1위인줄 알게되었다. 환상적인 뷰와 유서깊은 건축물들(가이드분이 엄청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는데 몇가지밖에 기억이 안난다 ㅠㅠ) 가장 부자의 건물, 최초의 건물(지금은 기울어져서 안살고있음) 구겐하임미술관, 조지클루니가 결혼한 호텔, 세계최초의 은행(뱅크라는 단어의 기원이 된 지금은 카페) 등등. 이 어찌 감동하지 않으랴.


베네치아 골목에 각종 명품샾들이, 그 오래된 건물들에 주르륵 입점해 있어서 놀랐다. 쇼핑의 욕망은 역사를 가리지 않는 듯하다. 쓰레기를 그냥 아무데나 버리고 담배를 맘대로 아무데서나 피워대는 모습은 아무리봐도 적응이 안된다. 역사의 유구함과 국민성은 비례하지 않는것일까.


베네치아 투어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20분 걸려서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비빔밥을 먹었다. 거기에 정체 모를 된장국. 이건 도대체 무슨 맛일까. 이 된장은 얼마나 머나먼 여정을 거쳐 이역만리 타국으로 오게 됐을까. 이탈리에아서 먹는 비빔밥이라니. 비빔밥을 서빙하며 연신 그라시아를 외쳐댔던 이탈리아 아저씨는 사장님이었을까? 물어볼껄 그랬다. 


40분을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숙소로 왔다. 유럽 호텔이라 살짝 긴장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유럽의 오래된 호텔은 음산한 중세시대 벽돌 건물로 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건 패키지 여행이잖는가. 좋은 호텔에 투숙시킬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품 설명에 분명 2급호텔 수준이라고 했던 듯) 하지만, 생각보다는 깔끔했다. (당연히 고급은 아니고, 깔끔한 모텔급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로비 엘리베이터가 한대인게 안타까웠다. 덕분에 엘리베이터 대기 줄이 꽤 길었다. (나는 2층이라서 그냥 걸어서 올라갔다.) 첫날 숙소는 202호.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하나 사다먹을까 했지만, 여행 시작한지 30시간이 넘게 제대로 누워본적이 없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그냥 쓰러져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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