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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19. 2021

네, 유럽에 혼자 왔습니다 2

2017.10.02 (이탈리아)

2일차


시차 때문인지 아침 5시에 눈이 떠졌다. 일단 일어났더니 잠도 안오고 해서, 뒤척거리다 짐 정리도 하고 씻었다. 7시에 맞춰서 로비의 식당으로 갔다. 조식 메뉴는 식빵, 햄, 치즈, 크로아상, 파이, 우유, 커피, 시리얼 그 정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다양하다. (딱딱한 빵에 커피 한잔이 유럽스타일 아니었나?) 맛도 그럭저럭 괜찮다. 핫초코는 너무 달다. 앞자리에 앉은 가족(한국 가족)의 아버지되시는 분이 가져온 김에 햇반을 하나 주셨다. 꿀맛.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배를 채우고 방으로 올라가, 잽싸게 짐을 챙겨 내려와 체크아웃 했다. 이동 범위가 넓은 패키지 여행은 어지간해선 한 호텔에서 2박이 없다. 거의 매일 새로운 곳에서 잔다. 밖을 보니 날이 흐리다. 슬쩍 나가보니 비가 한두방울씩 추적추적 내리고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추운 듯하다. 이제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한다. 3시간 걸린다고 한다. 르네상스의 진원인 피렌체로 출발.


이탈리아의 버스 운전기사는 법적으로 정해진 휴식시간이 있어서 (버스에 내장된 장치로 모두 기록하고, 체크한다.) 일정시간 운행 후 무조건 쉬어야 한단다. 그렇지, 노동자의 권리는 이렇게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렀다. 덕분에 휴게소에서 에스프레소 한잔 마셨다. 1유로로 싸다.(한국의 커피값은 정말 괴상하다.) 걸쭉하고 고소하게 맛있다.(물론 설탕 넣어서 마셨다.) 커피의 원조격인 여기 사람들도 다 설탕 넣어 먹더라. 청소년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에스프레소를 권하는 이탈리아 부모가 참 인상적이었다. 다시 출발.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 옆 넓은 들판, 얕은 언덕들, 누가봐도 비옥한 토양. 거기에 크게 변하지 않는 날씨까지. 이런 곳에 살면 좋을 듯하다. 센스있는 가이드님은 냉정과 열정사이 OST 를 플레이해 주신다. 그렇지, 우리는 두오모 성당이 있는 피렌체로 가는거지 지금.


피렌체. 누가봐도 정말 오래된 돌로 세워진 건물들.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온 듯하다. 진짜 얘들은 조상님들한테 감사해야 한다. 제사는 얘들이 지내야 할 듯한데, 엉뚱한 한국에서만 지낸다. 오래된 벽들의 감촉을 잊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손으로 만지면서 지나간다. 단테 생가는 생각보다 작다. 베아뜨리체 집은 으리으리하고, 둘이 이뤄질수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바닥에 단테 얼굴 부조가 있었다. 거기서 굳이 단테 얼굴을 발로 밟는 아줌마는 무슨 마음일까.


점심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와 고기 조림(장조림), 으깬 감자, 과일을 먹었다. 토마토 스파게티는 살짝 마르고, 고무줄같았다. 으깬 감자 위에 한국식 장조림 같은 고기를 올려서 먹었다.


그 2층 구조로 된 다리는 인상적이었다. 2층은 높으신분들이 썼어서 깔끔하고, 아래층은 삐뚤빼뚤 지어진게 재밌다. (혹시 그게 아니라 건축된 시기의 차이 아닐까, 나중에 지은건 조금 공들여 지었다는 등 말이다.) 넓은 광장 옆의 박물관은 줄이 어마어마하다. 박물관 주변에 피렌체의 유명인들 동상이 화려하다. 다빈치가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광장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동상(22살때 만들었단다. 천재들이란.) 을 비롯해 갖가지 조각들이 있다. 옷의 세세한 주름까지 묘사한 부분이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대리석이 무르다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인류의 천재들은 모두 르네상스에 등장했던 듯하다. 청동상을 만든 인물은 교황의 오른팔 자리까지 올라갔다니 대단하다. 예술가들이 그토록 인정받는 시대라니.


길가 건물에 예전에 말고삐를 걸어놓던 쇠말뚝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정말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구나. 감동이다.


두오모 성당은 크다. 일단 크다. 유럽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냉정과 열정사이 따위의 소재를 갖다붙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22년간 만들었다는 천국의 문. 27년은 황금인데 뭐더라, 아무튼 가까이서보니 어마무시하다. 메디치 가문이 어느 정도로 부자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피렌체에서 이런 천재들이 우수수 쏟아져나왔다는 건 그런 천재들이 마음놓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금전적 지원이 가능해서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메디치 가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좋은 작품 감상합니다."

두오모 성당을 보니, 지금 현대인들도 이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하는데 교황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을 그 당시에 서민들은 종교 앞에 얼마나 주눅이 들었을지 알만하다. 성당의 크기로 중세 도시 국가의 규모를 보여준다고 한다. 장사천재들 베니스, 피렌체.

좁은 골목을 걷고 또 걸어서 버스에 다시 탑승했다. 이제 로마로.


로마로 출발한지 3시간만에 식당에 도착했다.

한국단체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당이다. 웬 시골에 쌩뚱맞게 위치했네. 들어가보니 무지 넓다. 어제에 이어 또 된장국에 이번엔 제육볶음에 밥이다. 제육볶음은 1인분을 주고, 4명이서 먹으란다. (당연히 몇몇 사람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나는 그러려니 했다. 여기서 뭘 컴플레인하랴.) 후식으로 나온 사과는 맛있다. 유럽은 과일이 맛있는 듯하다. 대추 맛이 나는 사과. 농약 없이 키워 모양이 이쁘지는 않다. 여기 농부가 너도 먹고 나도 먹고 하는 마인드로 키운단다. (판매를 목적으로 키우는게 아니란 얘기) 상추도 크다. 양상추 친척인듯. 

호텔까지 다시 2시간을 더 가야한단다. 호텔로 출발. 이탈리아는 원전 포기 국가라 전기가 넉넉하진 않다고 한다. 그래서 중앙 고속도로임에도 불구하고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 친환경이 맞는 방향일까? 나는 어떤 환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일까?


호텔에 도착했다. 역시 생각보다 좋다. 깔끔하네. 유럽 호텔이 괜찮은거라기보단 2급 이상만 다녀서 그런 듯하다. 이미 밖은 어두웠지만 좀 아쉬워서, 짐 풀고 철주씨랑 잠시 숙소 밖으로 나왔다. (김철주씨는 여기서 패키지팀에서 만난 30대 남자분, 그 분도 역시 혼자 여행중이다.) 깜깜해서 식별은 잘 안되지만, 아주 시골도 아니다. 저쪽에 뭔가 엄청 시끄러워서 갔더니 이 동네 광장인 것 같다. 테니스장 두 개 정도 크기로 적당하다. 어린 친구들로 구성된 락 밴드가 신나게 공연중이다. 쿵쿵따다 쿵쿵따다. (밤 10시 넘었는데 동네 한복판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해도 된다고?) 실력이 좋다. 이탈리아 노래 부르는 듯, 모두 따라한다. (여기도 떼창이 있네.) 펍에서 주최한 듯하다. 

맥주랑 피자를 사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맥주 큰거 두잔에 5유로, 피자 두조각에 5유로. 맛은 괜찮다. 이게 이탈리아 피자 맛인건가. 음악을 들으며, 맥주 마시는데 너무 추워져서 숙소로 들어왔다. (유럽은 벌써 이렇게 추울줄 몰랐다. 패딩 점퍼를 가져간게 다행이다.) 숙소는 좀 춥다. 이 먼 곳까지 여행와서 감기는 곤란하다. 방법을 찾아야겠다. 일단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누웠다. 굳나잇. (뒤늦게 들었는데, 이 동네는 교황이 와서 물을 마시고 천식을 치료했다는 동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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