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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19. 2021

네, 유럽에 혼자 왔습니다 3

2017.10.03 (이탈리아)

3일차


나폴리, 폼페이, 쏘렌토 를 보는 날이다. 패키지 여행이다 보니, '경험하다' 보다 '본다'는 설명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본다'도 충분히 의미있다. 스스로 의미있다고 여기면, 의미있는 일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나 좀 춥다. 씻고 가방 정리하고 1층에 6시 40분쯤 내려갔다. 조식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메뉴는 똑같이 크로아상, 커피, 요거트, 햄, 치즈. 여기 크로아상은 정말 최고다.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크로아상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앞으로 이탈리아에서 크로아상을 난생 처음 먹어봤다고 할란다. 이제서야 알았는데, 여기는 뵐프라는 동네라고 한다.

(이 여행기를 쓰면서 '...라고 한다.' 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쓰게 되는데, 어쩔 수 없다. 다 주워들은 내용이라. '그랬다고 한다.' , '그러더라.' 수준의 표현 밖에 할 수 없다.)


폼페이로 먼저 간다. 버스로 2시간 걸린다.



폼페이는 진짜 어메이징 그 자체다. 거의 2000년 전 사람들이었는데 구획 정리된 마을부터 도로, 목욕탕, 상점에 이르기까지 입이 딱 벌어지는 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빵집, 술집에 이르기까지 현대문명과 크게 다르지않았다. 수천년 전 사람들을 무시하면 절대 안된다. 오히려 개개인별로 보면 지금의 우리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가능성도 있다. 어떻게든 생존해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기계에 의지해 생활하지 않았을테니, 육체적으로도 더 튼튼하지 않았겠는가?

벽 속 배수구, 목욕탕, 사방 벽속의 온돌 등 입이 떡 벌어지는 신문물의 향연이다. 얼마나 넓은지, 지난 200년간 계속해서 발굴 작업을 했지만 이제 겨우 여의도 면적의 세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훨씬 더 많은 유적이 땅 속에 남아있다니 놀랄 일이다. 왜 발굴 작업이 느릴 수 밖에 없는가. 화산재와 물이 섞여서 만들어진 자연 시멘트가 유적을 덮고 있어서, 발굴이 '깨부수는 작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발굴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럽고 시간이 걸린다.

우리 한국의 조상들이 많은 기술로 문명을 나름 이루었다 하지만, 사실 유럽에 비하면... (죄송합니다 조상님들) 한 순간에 화산재로 덮여 사라진 문명에 경의를 표한다. 그 덧없음이란.



폼페이 관람 후 들른 폼페이 입구의 음식점. 단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피로연장 분위기의 그곳은 음식맛이 정말 최악이었다. 이젠 익숙한 고무줄 스파게티, 오징어튀김 세개, 샐러드라고 부르는 풀 몇조각에 사과 한 개. 이탈리아 음식 누가 맛있다고 했나. 음식을 먹고 무조건적으로 화장실에 들른 후 쏘렌토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살짝 걸어서 기차역으로 왔다.

쏘렌토는 기차로만 30분정도 폼페이에서 들어간다. 역시나 그렇듯 기차는 연착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만만디 필링을 벌써부터 느끼게 해주다니, 땡큐다. 다행히 날씨는 매우 좋다. 좋다못해 덥다. 역시 천혜의 땅이 맞는 듯하다.


기차는 거의 30분을 늦었고, 타고 가는 중간에도 수시로 멈춰서서 더욱 늦게 되었다. 중간중간 보이는 절벽의 지중해 덕분에 참을 수 있었다. 절경이다. 학교 끝나는 시간인지 중학생 수십명이 탔다. 어마어마하게 시끄럽다. 역시 전세계적으로 소년 소녀들은 말이 많다. 애들 표정이 밝다. 적어도 입시 스트레스는 없는 듯하다.


쏘렌토는 절벽위의 도시. 날씨도 좋고 해서 일단 걷는다. 걷는다. 나는 걷는걸 좋아한다. 걸어서 어떤 절벽으로 갔다. 뷰가 좋다. 사진을 찍었다. 이미 그 상황에서 어르신들은 그리고 가장들은 표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럴때 아니면 도대체 또다시 언제 지중해를 보면서 힘들다고 짜증을 낼 수 있을까?

지중해는 맑고 또 푸르다. 에매랄드 빛 바다 속으로 떼지어 헤엄치는 물고기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맑다. 하지만 난 수영을 못하니까, 배를 탔다 큰 크루즈다. 밖을 보면서 우아하게 가는 크루즈인줄 알았는데 창이 뿌옇다. 밖이 하나도 안보이네. 그래도 다시 걸어올라가서 기차를 타고 역방향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 배를 타면 카프리로 돌아갈 수 있고, 거기에 버스가 기다린단다. 한 20분 탄다고 한다. 배는 출렁출렁 에어컨은 안나온다. 덥다. 선내는 한국인 80%, 나머진 현지 가이드들이다. 나는 과연 쏘렌토를 본 것일까? 쏘렌토에 다녀온 것일까? 절벽 위에 도시를 건설해 살 수밖에 없었던 중세 사람들. 해적 침략을 피해 건설했다고 한다. 사람이 간절하면 이렇게 신기한 도시도 만들어지나보다. 덕분에 후세사람들은 관광수입으로 신났을 뿐.


카프리섬에 도착했다. 여기서 보트 투어를 한다. 보트 한 척을 빌려서 하는 섬 투어다. 비싸서 할까말까 고민했는데, 안하면 큰일 날 뻔 했다. 역시 카프리는 지중해의 미항이라고 불릴만하다. 어마어마한 바다색과 바위 동굴들 바닷 속이 훤히 다 보인다. (나는 인천 출신이라 서해의 탁한 바다 색에 익숙하다. 그래서 이렇게 투명한 바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애메랄드, 코발트 여러색이 보인다. 절벽 위의 고급 별장들이 별세계다. 페라리 오너 같은 사람들의 집이라니 말 다했지.

섬 주위를 도는 투어가 끝나고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카페에서 해물 피자에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어봤다. 카프리 섬에서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는걸까? 그렇지, 아무래도 기분탓이겠지. 먹고나서 바닷가에가서 지중해 바닷물에 잠시 손을 담궈봤다. 언제 또 올지 모르니까. 귀여운 아이가 할머니와 수영중이다. 여기는 삶 그 자체가 휴양이다. 이제 다시 배를 타고 나폴리로 넘어간다. 넘어가서 버스를 타고 다시 2시간을 이동해서 숙소로 간다. 다시 생각해도 카프리섬 보트투어 하길 잘한 것 같다. 돈을 쓸 때와 아껴야 할 때, 그 선택이 참 어렵다. 앞으로도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나폴리는 멋쟁이 항구도시로 알고있었는데 도시가 마치 홍콩 거주 지역을 연상케한다. 노후, 낙후 그 단어가 딱 어울린다. 1970년대 우리나라 같다. (실제로 겪어보진 못했지만) 빈부격차가 심해진 탓인지, 나폴리 마피아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관광객들도 들르지 않는 듯 보인다. 우리도 나폴리에서 배를 내려 바로 차를 타고 빠져나왔다 2시간을 달리면 어제의 그 숙소로 돌아간다.

그나저나 요며칠 피자, 스파게티를 너무 먹었다. 스파게티가 전식이라서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가이드님의 말은 거짓이다. 전식 뒤에 메인요리가 양도 적고 형편없으니 하는 말이 아닌가. 암튼 이탈리아에 왔으니 이탈리아 음식을 지겹게 먹어보는걸로 하자.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맞다. 그게 이런 여행의 매력이다.

아, 그리고 여기 아저씨들 굉장히 멋쟁이들이다. 기사님들조차도. 셔츠에 청바지에 구두가 멋스럽다. 음식점 지배인의 자켓은 글쎄 손목부분 단춧구멍이 진짜였다. 누구나 수제 수트를 입고 있는 도시.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호텔식. 저녁 메뉴는? 바로바로~ 스파게티. 오늘은 알리오올리오에 미트볼 4알이다. 흠, 맘에 안든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기사님 마리오는 그 스파게티를 산처럼 쌓아놓고 먹는다. 이탈리아 현지 스타일 스파게티인 듯하다. 아무맛도 없고 고무줄처럼 딱딱하고 뚝뚝 끊어지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느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현지의 느낌이다. 이걸 느끼려고 오지 않았던가.

아무튼 먹고 올라왔다가 마실거라도 살까하고 잠시 나왔다. 마트로 가서 스프라이트랑 과자 한개 사왔다. 여기 와보니, 마트는 역시 한국마트가 최고였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낀다. 올라와서 몇조각 집어먹다가 바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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