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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0. 2021

네, 유럽에 혼자 왔습니다 4

2017.10.04 (이탈리아)

4일차


오늘은 새벽 4시쯤 눈이 떠졌다. 어째 자꾸 기상시간이 당겨지지. 시차적응이 잘 안된다. 이불 밖 내놓은 얼굴에 닿는 새벽 공기가 차다. 이탈리아는 난방에 인색한가보다. 아니면 내가 한국에서 너무 따뜻하게 살았던건가. 

오늘의 일정은, 5시 20분 모닝콜 , 6시 20분 조식,  7시 20분 출발이다. 이런 식의 극기훈련 스케쥴이 마음에 든다. 좋다. 아침은 또 스크램블, 크로아상, 커피. 오늘부터는 조금씩 먹기로 했다. 밀가루를 계속 먹으니까 속이 더부룩해서 대충먹었다. 유럽인들은 자식들에게 건강을 유산으로 물려준다고 한다. 자연식품을 경험하게 해주고, 그렇게 건강을 물려주려고 한다. 입맛을 잘 만들어준다. 식사는 먹어 치우는 개념이 아니다. 진정한 슬로우푸드다. 나도 우리 아이에게 그런 가치관을 물려주고 싶다.

대충 아침을 먹고, 공기가 좋은 듯 해서, 산책을 나갔다. 해가 막 떠오르는 거리가 예쁘다. 몇몇 청소부, 아침 카페 청소하시는 분들. 뭔가 유유자적 한적한 분위기가 좋다. 공기가 너무 상쾌하다. 얘들은 정말 복받았다.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새벽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이제 출발한다. 오늘은 로마를 하루종일 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도시, 로마로 출발한다.


어느새 내 한 손에는 두툼한 비닐 쇼핑백이 들려져있다. 올리브오일, 발사믹식초, 프로폴리스크림 샀다. 모두 다 해서 220유로다. 하아, 절대 패키지 여행에서 권유하는 상품은 안사려고 하는데, 당했다. 나도 어쩔 수 없나보다. 설명을 듣다보니 안사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드는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모두 먹고 바르는 소모품들이니 예쁜 쓰레기를 산 건 아니라고 위안해 본다. 다행히, 모두 실온보관이다. 프로폴리스는 자기전에 영양크림처럼 바른다. 명동성당에 들어와 있는 제품이라고 한다.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식초는 섞어서 매일 한숟갈씩, 토마토쥬스에 한숟갈씩 넣어서 갈아먹으면 좋다고 한다.


드디어 로마로 들어간다. 벤츠 택시로 이동하면서 보는 적당히(아니 굉장히) 럭셔리한 관광이다. 벤츠 택시는 영화에 나오는 검정 벤츠 밴 4대가 쉴드차량처럼 쫙 와서 우리를 태워서 유명 스팟들로 이동시켜준다. 교통이 지옥인 로마 시내에서, 이동에 소요되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줘서 매우 만족스럽다. (배낭여행으로 왔다면 이렇게 퀵하게 돌 수는 없겠지.) 세계 최대의 유적이 모여있는 도시, 중세의 심장, 로마 제국의 중심. 

로마 시내로 가면 갈수록 건물은 낮아지고 오래된 느낌이 난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쓰레기 천지다. 도대체 치우지도 않고 모두 아무데나 막 버린다. 국민성은 아무리 봐도 참 놀랍다.

오후엔 바티칸 가서 박물관(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이 있음) 성베드로 대성당(세계에서 제일 큼 제일 화려함) 갈꺼다.


콜로세움 외벽의 저 구멍들은 외장 대리석을 고정시키기 위한 앵커의 흔적이다.


오전 첫번째는 콜로세움. 여기서부터 벤츠로 이동이다. 

두번째는 대전차경기장. 그 시절에 스포츠라니,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세번째는 진실의 입으로. 영화 속 그대로다. 손이 안잘린거보니 난 진실한 사람인 듯하다.

그 다음 포로로마노(로마시내) 걸어올라가서 미켈란젤로가 만든 광장(황금비율의 건물배치) 그 다음 통일기념관(150년된 가장 젊은 건축물) 앞을 지나갔다. 초기유적지는 여기서 끝.



그 다음 바로바로 그 유명한, 트레비분수. 사람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사진이나 화면 속에서 봤을때는 작은 분수인줄 알았는데 무지무지 크다. 저런게 도시 한가운데 떡하니 있다니 역시 발상이 남다르다.

유명하다고 해서 젤라또 하나 사먹었다. 애플 딸기 맛있는데 금방 녹는다. 하나 먹고 인파를 꾸역꾸역 헤치고 내려가서 분수 물에 손한번 담궜다. '사람 정말 어마어마하네' 라고 중얼중얼 혼자 낑낑대며 사진찍고있으니, 멋쟁이 로마 아저씨가 찍어준단다. 땡큐.



다음은 스페인광장, 로마의 휴일, 영화 속 그 계단 잠시 앉아본다. 계단은 대리석으로 반질반질하다. 햇빛은 반짝. 노곤노곤 여유롭다.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본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누워서 낮잠 한 숨 자고 싶다.



덥고 힘든데 가이드분이 한군데 더 가자고해서 투덜대며 따라갔다. 바로바로 위대한 판테온 신전이었다. 맙소사 판테온 이라니. 건축학 수업에서 강의 내용으로만 들으며 환상을 키웠던 바로 그 판테온이다. 좁은 골목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타나는 거대한 판테온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감동이다. 만져보고 또 만져보며 눈에 최대한 넣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컸다. 어마어마했다. 라파엘로의 무덤도 그 안에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돔 형태의 건축물이라니. 당시 시민들이 경외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대학 전공수업시간에 사진을 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언젠가,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뚫린 천장으로 내부의 따뜻한 공기가 올라가며 지붕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비가 내려도 안으로 들이치지 않는다는 설명을 수업에서 들었다. 하지만, 아래 쪽에 배수구가 있더라.


점심은 한식 닭계장과 빈대떡이다. 한식에 목말랐던 관계로 게눈감추듯 밥말아서 뚝딱해치웠다. 나름 맛있었다. 식대가 얼마인지 정말 궁금하다. 밥먹고 이제 버스타고 20분, 바티칸으로 출발이다. 거기는 더 힘들다는데. 각오하란다. 줄서고 기다리고, 박물관 보고 성당본다. 박물관 내부에서만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 걸릴듯 하다. 그 다음 바티칸 내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갈 예정이다.


운이 좋아서 줄 안서고 바티칸 입장! 길 땐 3시간도 넘게 줄선단다. 이 뙤약볕에!

박물관은 한마디로 말해서 교황이 모아놓은 유물 컬렉션이다. 너무 많으니까 박물관을 만든 듯하다. 온갖 종류의 조각을 비롯한 출처를 알수도 없는 유물이 한가득이다. 거기에 교황의 욕심으로 만든 카페트 지도벽화 등등 한마디로 무한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의 힘이란 정말.

다만 그런 교황의 욕심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같은 걸작이 탄생할 수 있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천지창조 볼때는 조용해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떠드니까, 조용히 하라고 마이크에대고 쉬~~~하는게 신선하다. 여기서 교황선출식(문 잠고 하는)을 한다.


성배드로 대성당은 그냥 한마디로 엄청나다. 과연 바티칸 내부에 있는 성당답다. 22살, 어린 미켈란젤로가 만든 그것이 있다. 마리아가 안고있는 예수? 그걸 만들고 미켈란젤로가 '나는 궁극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22살에 이미 슈퍼스타였다니 나는 그 때 뭐했더라? 천재가 그 시기에 몰린 이유가 뭘까? 젊은이들을 우대해야 하는 이유인건가. 역대 교황들의 시신도 모셔져 있는 곳이다. 예배당쪽은 화려하다못해 현란한 조각들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이렇게 웅장하고 화려한게 과연 종교의 본질과 맞는지? 난 아무래도 수도원 스타일이 맞다고 생각한다.


나와서 버스에 탔다. 오후 6시가 다 됐다. 이제 숙소로 이동한다. 2시간 걸린단다. 가이드 아저씨 안녕. 로마소개 고마웠어요. 하루가 알차고 길다.


2시간 넘게 달려서 호텔에 도착했다. 프레지던트 호텔이다. 오자 마자 짐 올리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 전형적인 이탈리아 저녁으로 (여긴 현지인들 받는데란다, 실제로 레스토랑에 현지인들 많다.) 샐러드, 라자냐, 가지볶음, 피자, 야채스프, 파스타, 치킨, 케잌 이렇게 나왔다. 그 동안 관광객 대상 레스토랑만 가다가 현지인들이 식사하는 곳에 오니 분위기가 역시 다르다. 음식 맛도 좋고, 정성들여 갖춰진 느낌이 난다. 실제로 현지인들은 저녁만 몇 시간씩 먹는다는데, 이런 분위기에 음식이라면 그렇게 먹을 만하다. 맛있었다. 

굳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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