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 Jun 20. 2021

네, 유럽에 혼자 왔습니다 5

2017.10.05 (이탈리아)

5일차


오늘의 스케쥴은 아침 6시 기상, 7시 조식, 8시 출발. 우리끼리는 678로 부른다. 이제 어느정도 패턴이 잡혔다. "내일은 678입니다!" 라고 하면 다 알아듣는다. 패키지 여행은 이런식의 잔잔한 팀웤이 정말 중요하다. 약속된 짧은 의사소통을 통해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건, 실제 IT조직에서도 필요하다. 회사에 돌아가면 678소통을 팀원분들께 설명드리고 우리 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눠봐야겠다.


아침은 빵, 햄, 치즈, 커피, 요거트(얘들 요거트 엄청 먹는다) 요거트가 맛있다. 바나나, 딸기 두개 먹었다. 크로아상은 젤 별로였다. 한국에서 많이 먹던 작고 뭉쳐있는 오래된 느낌의 기름에 쩔은 크로아상이었다. 하나 먹고 그만. 거기에 청포도까지. 아침을 이렇게 먹으면 건강할 수 밖에 없지.


먹고 부랴부랴 올라와서 짐 정리하고 출발한다. 매일 느끼는 거지만 아침 공기가 너무 좋다. 시원하고 깨끗하다. 한국은 정말이지 너무한 동네다. 하긴 얘네가 공산품 공장을 전부 중국으로 보내서 벌어진 일이니, 유럽인들 탓을 해야하나. 참 어려운 문제다.


여기서 버스타고 2시간을 이동해서 피사로 간다. 맞다. 피사의 사탑이 있는 바로 그 피사다. 성당의 종탑인 피사의 사탑 과 두오모 성당을 보러간다.

패키지 여행은 버스 이동이 거의 절반이다. 그래서 창 밖 풍경도 즐기고, 음악도 듣고, 휴식도 취하는 등 버스에서 행복을 찾는 것도 나름대로 중요하다. 오늘은 이동간에 버스에서 틀어준, 오디오 강의가 인상깊다. 김태희,비 주례선 신부가 한건데 나중에 다시 찾아서 들어보자. 너무 좋은 강의다. (내용은 왜 기억이 안날까.)



피사의 사탑은 14,000톤의 대리석으로 건축한 석탑이다. (대리석 부자 나라의 위엄) 탑이 자꾸 기울어져서, 기울어진 걸 보수해서 똑바로 세웠다가 관광객이 끊어지니까 다시 기울어지게 공사했다는 게 좀 개그였다. 아닌가 현명한 건가. 관광 수입은 놓칠 수 없지. (바닥에 7000톤 납을 땅속에 넣어서 기초공사)


피사의 사탑은 듣던대로 '탑을 떠받치는 모습으로' 사진 찍는 포즈의 사람들로 난리통이다. 그냥 사진찍으러 오는곳인듯 하다. 사탑 주변을 계속 돌아보다보니까, 도대체 얘네는 대리석이 얼마나 남아돌길래 이렇게 대리석으로 떡칠을 하는거지? 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한국에서 대리석은 '고급진 인테리어'의 대명사 아니던가.

별로 감동은 없다. 오, 이게바로 피사의 사탑이구나 하는 정도? 하지만 집에 가면 또 생각나겠지. 사람 마음은 참 알 수 없다.


점심은 바로 앞 중식당에서 계란볶음, 양배추무침, 생선조림 등등을 쌀밥에 먹었다. 패키지 여행에서는 식사할때 같은 식탁에 앉게 되는 사람들도 잘 만나야 한다. 보통 4명이 같이 앉는 테이블이니까.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이 테이블, 저 테이블로 옮겨진다. 가이드님의 고충을 알기에 군말 없이 시키는대로 앉는다. 그런데 오늘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패키지 같이 온 한국 분이 고기볶음(그나마 가장 먹을만 한 것)을 자기 두 아들(중학 1,3년)에게 모두 죄다 덜어주는 꼴에 밥맛이 떨어졌다. 심지어 큰 아들놈은 볶음에서 고기만 쏙쏙 빼서 지 접시에 덜어놓는 꼴에 정내미가 떨어졌다. 다 같이 먹는 식사에서 저런 식탐은 꼴사납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이게 바로 패키지 여행의 매력인건가. 정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다.


다음은 밀라노로 버스 5시간을 간다. 버스 안에서 로마의 휴일을 틀어줬다. (한국어 더빙 버전인게 묘하게 웃겼다.) 이탈리아 마지막 휴게소에 들렀다. 에스프레소 한잔 1유로 (커피 진짜 싸다. 한국은 폭리도 이런 폭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1936 포테이토칩을 한봉지 사서 먹었다. 안짜다더니 짜네. 반쯤 먹다 남겼다.


이탈리아 북부로 올라갈수록 하늘이 흐리흐리해진다. 비가 오려나.


다빈치공원. 글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 근처 출신이란다.

두오모성당. 여기는 무슨 대리석 조각이 죄다 실물크기다. 인간 모습을 1,000개도 넘게 만들어서 건물 전체에 둘러놨다. 이건진짜 대리석 낭비 아닌가. 보면 볼수록 대리석 부자 나라의 위엄이다. 두오모 광장 앞 타악기로 공연하는 젊은이가 마치 김흥국씨 같다. 타악기 연주를 10분 정도 듣고 1유로를 드렸다. 부디 앞으로도 행복하게 공연하길.

빅토리아 엠마뉴엘 2세 갈라리아 에는 쇼핑몰처럼 서점에도 들러봤다. 서점 냄새는 언제 맡아도 좋다.

밀라노는 사람들 옷입는게 뭔가 꽤 신경을 쓴 듯하다. 과하지않고 세련됐다. 특히 남자들 수트는 너무 근사하다. 체형부터가 남다르다. 명품은 보여주기위한 것이 아니고 오래입기 위한 것임이 확실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명품이 어울린는 사람이 될까.


저녁은 두오모 대성당에서 걸어서 근처에 이탈리아 식당으로 갔다. 피자 돈까스같은것 먹었다. 거기에 추석이라고 와인을 한 잔씩 마셨다. 나는 술 맛을 잘 모르지만, 괜찮았다.

이탈리아, 이제 안녕. 이제 차로 한시간정도 걸려서 이탈리아 끄트머리 어떤 호텔로 간다.


씻고, 자기전에 잠깐 나와서 호텔 바에서 아메리카노(2유로) 한잔 마시면서 책(히가시노 게이고 '학생가의 살인')을 한 시간 정도 읽었다. 바에는 백인아저씨 한 명이 맥주를 마신다. (그는 두 잔 마시고 들어갔다.) 나는 바에서 마지막까지 책 읽다가 11시쯤 방으로 들어갔다. 자기 전에 TV를 틀어봤다. 그런데, 이탈리아 방송은 너무 시끄럽다. 억양이 시끄러운게 왜 그럴까.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바라보는 느낌도 이런 식일까. TV를 끄고 잠을 청한다. 이불이 얇아서 덜덜 떨면서 조금 자다가 깼다. 혹시나 해서 옷장을 열어보니 솜이불이 있다. 감사합니다. 덮고 따뜻하게 잤다.




https://brunch.co.kr/@dontgiveup/17


매거진의 이전글 네, 유럽에 혼자 왔습니다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