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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n 20. 2021

네, 유럽에 혼자 왔습니다 6

2017.10.06 (스위스)

6일차


5시 모닝콜, 5:30 아침 도시락 받아오기, 6:25 출발. 이것이 오늘의 스케쥴.

5시에 샤워하는데, 샤워 부스가 엄청, 되게 좁다. 허리를 못 굽힐 정도인데, 이것도 실용주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기는 무슨 진공청소기 헤드만 때어낸 듯 한게 벽에 붙어있다. (처음엔 이게 뭐지? 했었다.) 긴 호스를 들어보니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드라이기 맞겠지 뭐. 기능이야 내가 그렇게 쓰면 되는거 아니겠나. (혹시 다른 곳 건조하는데 사용되는 것이라면, 개그 에피소드로 쓰일 법 하겠다.) 

아침 도시락은 물, 빵 몇개(안에 치즈랑 햄) 사과 1개. 새벽이지만 오늘 따라 허기져서 후딱 먹었다. 

가방 챙기고 나왔더니 아직 깜깜하다. 공기가 역시 차갑고 맑다. 산 속이라 그런가. 더 놀라운건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쏟아질 듯 많다. 얼마만에 보는 별인지. 한국에서도 못 보던 별을 이탈리아에서 보는구나. 이런건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게 패키지 여행의 매력인가보다. 

모두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 탑승한다. 미취학 꼬마들도 의젓하게 엄마 손을 붙잡고 버스에 오른다. 저 아이들에게 이 여행은 좋은 추억이 되겠지. 다행히 늦은 사람은 없다.(패키지 여행은 팀플레이라서, 한 명 한 명이 약속을 지키는게 중요하다.) 어둠을 헤치고 스위스로 출발한다. 오늘은 이탈리아에서 출발해서 스위스를 거쳐 잠은 프랑스에서 자는 기기묘묘하고 신나는 일정이다.


여기 고속도로를 나름 많이 다니면서 유심히 봤는데, 세단이 별로 없다. 모두 해치백 작은거다. 신기하다. 이것도 역시 실용주의.


거의 모든 주요 관광지에 군인(경찰이 아니다 자동화기로 실무장한 군인이다.) 들이 상주해있다. 배낭종류는 거의 반입이 금지다. 아무래도 테러의 위협 때문인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난리구나.


중간에 스위스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에 가려면 1프랑인데, 동전을 넣으면 영수증을 준다. 그걸 1프랑 돈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화장실만 쓰고 가지말라는 것인듯하다. 이것 저것 쇼핑도 하고 가라고. 같이 여행하는 아저씨가 카푸치노 사줬다(4유로) 맛은 뭐 그냥 카푸치노 맛이다. (난 왜 커피맛을 못 느낄까.) 다시 출발한다. 이제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고타드 터널을 지나간다 (17km 짜리 터널이라니.) 융프라호 산이 있는 인터라켄이라는 마을로 간다. 3,500m높이의 기차역, 융프라요흐 로 가는거다.(유럽의 지붕) 기차로 올라가는데 2시간 위에서 2시간 관광, 내려오는데 2시간 소요된다. (신기한게, 스위스는 EU가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 조차 중립인건가.)


인터라켄으로 가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예의 바로 그 그림 엽서속 풍경이다. 동화책이나 아름다운 윈도우 배경 화면에서 본 바로 그.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산과 들 그리고 목조주택들. 날씨는 정말 최고다. 운이 정말 좋다.

한국처럼 좁은 땅덩이에 따닥따닥 모여사는 분위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산이 많다곤 하지만 산과 산 사이가 평지가 넓고 살기좋은 지역이다. 강원도 정도는 돼야 척박하다고 할 수 있지. 북유럽도 살기좋은건 분명하다. 이런데서 살면 정말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안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열고 나오면 호수랑 넓은 초원에 알프스 산맥이라니 말이다. 순간, 은퇴하고 이런데서 여생을 보내려면 자금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 라고 고민하려다 쓸데 없는 것 같아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경치에 집중하자.

그나저나 부모와 같이 패키지 여행을 온 자녀들은 초중고를 막론하고 경치엔 관심도 없이 자는데, 저 애들을 데리고 오는게 의미가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쟤들은 어디서든 그냥 이어폰 꼽고 잠만 자더라.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 같은건가. 나는 나중에 서현이랑 여기 와도 되는걸까?

산악이 70% 이상인 지형이다. 겨울엔 무지 춥다고 한다. 빵이 얼어서 퐁듀로 녹여먹는 동네니까.


점심 먹고 동네 산책


버스에서 내린다. 이제 유럽의 지붕으로 가는 기차로 갈아탄다. 점심은 융프라호흐 올라가는 기차역 바로 앞에 가게에서 무슨 크림소스 비빔밥 같은 것 후딱 먹고 동네 산책했다. (이제는 얼른 밥먹고 주변 걷는게 패턴이 됐다.) 이 산책이 너무 인상깊고 좋았다. 한적하다고 해야 하나, 평화롭고 나른하다. 잠깐 걸었는데도 이정도니, 여기서 며칠 살면 어떤 기분일까.

그나저나 높이 올라가는데 나 귀 괜찮겠지?? (그 약은 아까 밥먹을때 먹었다.)


첫번째 올라가는 기차는 15분 탑승하고 갈아탔다. 두번째 기차는 40분 올라간다. 마지막 기차는 동굴속을 30분 올라간다(내려갈땐 역순) 그렇게 몇번을 환승해서 올라가면, 드디어 인터라켄이다.

120m 짜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전망대는 정말 후달달이다. 조각동굴, 얼음동굴을 걸어서 지난다.

드디어 만년설을 밟으러 올라갔다. 

밖으로 나있는 문을 여는 순간, 뭐지? 얼굴에 누가 모래를 세게 집어던지는 것 같다. 눈이 안떠져서 선글래스를 꺼내서 꼈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솔직히 여기는 아이젠이라도 신고 올라가야한다. 너무 위험하다. 살짝 미끄러지면 진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정도로 눈보라가 엄청났다. 눈이 얼굴을 때리는게 무슨 총알같다. (에베레스트 등정하신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그리고 너무 춥다. 너무너무 추워 패딩 조끼에 패딩까지 겹쳐입었는데 귀랑 손을 생각 못했다. 게다가 발목이 너무 아파서 봤더니, 아 맞다. 나 발목 양말 신고 있었지. 머리가 계속 어질어질하고 숨이 차다. 여기는 매우매우매우 높은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무산소로 등정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10분간 버티고 내려왔다. 



신라면 하나 말아먹고 돌아간다. (정말 신라면을 팔더라) 내려가는 기차는 중국인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더 한심한건 남의 기차자리 앉아놓고 뻔뻔하게 앉아있는 한국인 중년 부부들. (원래 자리 주인이던 외국인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그냥 앉으라고 양보하더라.) 정말정말 아주 정말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왜 나이가 들면 염치없이 부끄러움을 못느끼는 한국인들이 많은 걸까. 어떻게하면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저녁은 아까 점심먹었던 바로 그 식당이다. 된장찌게에 밥, 그리고 반찬이다. 된장찌게는 여전히 묽은 된장국 느낌이고 , 밥은 햇반 안뎁힌거 같다. 반찬은 시금치는 누가 소화하던걸 뱃속에서 끄집어낸 듯 으깨져있고 김치는 사왔겠지. 하지만 이것 조차 스위스다. 불평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 경험을 기억하는게 중요하다. 밥은 추가 1유로 반찬은 추가 3유로 한식당이지만 이런건 유럽스타일로 운영한다. 여기선 이게 맞는거다.

밥 다먹고 버스타고 벨포트(프랑스)로 출발이다. 3시간 걸릴 예정이다. 

역 앞 호텔에 도착했다. 드디어 프랑스다. 정말 오늘 하루에 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 3개국을 지나왔다. (이게가능 하구나.) 호텔은 깔끔하다. 맘에 든다. 역시나 샤워 부스는 좁다. 바에 가서 맥주라도 먹고싶지만 들어오다 슬쩍 보니 바가 별로다. 안갈랜다. 굳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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