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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Dec 15. 2015

꼰대 되지 않기

 겨울비가 부슬부슬 흩날리던 며칠전 회사앞에서 택시를 탔다.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분이 운전하시는 보통의 평범한 택시였다. 택시기사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기분이 언짢았던 기억이 있던터라(이건 어디까지나 내 정치성향의 문제였다.) 이번에도 별 이야기 없이 목적지까지 가길 바랬다. 그런데 기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좀 달랐다. 현직 대통령이야기, 서울시 도시개발정책, 국회, 젊은이들의 진보\보수 성향이야기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걸쳐서 나누었는데, 정치성향의 문제를 떠나서,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육두문자를 적당히 섞은 거친말투였지만, 그래도 내용만큼은 수긍이 갈만한 상식적인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요새는 '상식적인' 어르신들을 찾기가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마치 종교인을 만난 듯한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상식적인' 어른이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으니 특별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당장 당신 주변에 얼마나 많은 꼰대들이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시길) 이건 어떻게 보면 '멋지게 늙기'와도 연관이 있는데, 내 기준으로는 '상식적인 어른' = '멋지게 나이드신 분' 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느껴지는 건, '상식적인' 어른이 되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상황'이 나를 '비상식적인' 어른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매우 슬픈 일인데, 그런면에서 높으신 분들이 대한민국의 프레임을 그들이 원하는대로 잘 짜놓았다고 생각한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비상식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규칙을 잘 만들어놓았다.


 어릴 때는 한살한살 나이가 들면 좀 더 사는게 편해질 줄 알았다. 선배가 되니까 편하게 행동해도 되고, 누구 눈치도 안보며 내키는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나이가 들며 신경써야 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하다못해 후배들과 차를 한잔 마시는 가벼운 자리에서도 계산을 해야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신경을 안쓸래야 안 쓸수가 없다. 그런 여러가지 '신경써야 하는 것들' 중에 내가 요즘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혹시 꼰대처럼 보이진 않을까?


그래서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다보니, 안그래도 소심한 성격이 더욱 소심해진다. 혹시나 '비상식적인' 어른(꼰대라고 부르고 싶다.)처럼 행동하는게 아닐까 두려워진다. (다시말하지만 이건 정치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 제대로된 '보수'가 있던가? 이건 어디까지나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비상식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애매할 때가 있는데, 그럴때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행동한다. 그때 사용하는 기준으로 가장 유용한것이 바로, '내 주변인들이 했던 행동'이다.(여기서 말하는 주변인은 단순히 연장자를 말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이어린 사람, 동년배 모두 포함이다.)



 유병재가 했던 말대로, 븅신들을 멘토로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 그 븅신은 어떻게 행동했지? 라고 대입해보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답이 딱 나온다. 아주 편리한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의 장점은 주변에 많은 '븅신'들이 있을수록 시스템의 진가가 발휘된다는 점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있다. 반대로 나도 모르게 내가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아래와 같은 얘기를 했다. 늘 마음에 담고 잊지 않으려 한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식과 경륜이 늘고 인격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무식이 늘고,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늘며, 성찰하지 않으면 뻔뻔함만 늡니다.
인간은, 스스로 퇴화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인간관계가 많이 서툰 나로서는 차라리 나 스스로에게만 신경쓰면 되었던 나이어린(낮은 직급의)상태가 좋았던 것 같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모른채 어른이 되어버린 까닭에 둥글둥글 원만한 인간관계가 참 힘든 요즘이다. 그래서 신문이나 잡지, 인터넷블로그에 '꼰대 판별법' 같은 테스트가 올라오면 잊지않고 꼭 해본다. 불행하게도 그 중 몇개의 테스트에서 나는 비상식적인 어른, 즉 꼰대에 부합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멋지게 나이든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어쩌랴, 인간은 모두 늙는 것을. 오늘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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