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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 Jul 29. 2023

우리 팀의 거북선은 무엇인가

광팔이의 해악


얼마전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거제 거북선 모형 해체에 대한 내용이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2/0001908439?sid=102


많은 국가 예산을 투입해 진행한 프로젝트 같은데, 결국 쓰레기로 전락하여 폐기처분 되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지 않은 일회성 이벤트. 거기에 하청업체의 부실제작과 그걸 묵인한 공무원의 콜라보레이션. 이젠 대한민국의 흔한 일상 같은 느낌이다. 결국 거북선 제작 및 폐기에 들어간 리소스는 쓸쓸하게 낭비되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위 기사를 읽고, 우리 팀이 겪었던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운영하던 제품 하나가 폐기되었다.

작년 말, 긴급하고 중요한 사안이라며 작은 시스템을 개발하라는 윗선의 지시가 내려왔다. 나는 '리소스가 부족하다. 우리 제품에는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거기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늘 그렇듯 임원은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최우선 순위 배정된 프로젝트. 팀 내 4명의 개발자가 3개월간 풀타임으로 진행하여 오픈한 서비스였다.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던 카운터 파트 쪽에서 갑자기 '이제 사용하지 않겠다'는 통보가 왔다. 오픈 후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써보니까 필요 없는 기능이라는 일방적인 고지였다.


우리 팀은 묵묵히 선셋을 준비했다. 여기저기 얽혀있던 로직을 정리하고, 삭제, 서버를 반납하는 등의 절차를 진행했다. 열심히 고생한 팀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서비스 중 하나는 거제 거북선 처럼 철거되었다.


우리는 저 소중한 리소스로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었다. '다른 일에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니다.' 라는 의견을 근거와 함께, 수 없이 올렸다. (당시 우리 제품은 잦은 장애로 인해 외부 고객들의 불만이 높았다. 리팩토링을 통한 기술 부채 해소 및 근본적인 구조 개선이 시급했다.) 하지만 묵살되었다. 'ㅇㅇㅇ님 지시사항' 이라는 간단한 문구, 암행어사 마패와 같은 문구의 위엄 앞에서 우리는 목소리를 낮췄다.


어떤 임원의 자리 보전을 목적으로 진행한 광팔이 프로젝트의 결과였다. 몇 개월간 해당 프로젝트로 열심히 윗선에 자기 자랑을 하던 임원은 이제 다른 이슈로 관심을 돌렸고, 이미 오픈한 우리 프로젝트는 더 이상 그의 임원계약 연장을 위한 무기가 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가 준비한 서비스는 '거제 거북선' 신세가 되었다.


거제에서는 ’충무공이 인기니까, 거북선 하나 비슷하게 빨리 만들어봐‘ 라고 지시한 누군가가 있었을테고.

이 회사에서는 ‘<글로벌 진출> 그런 단어가 사장님께 보고하기 그럴듯하니까, 해외 권역에 프로젝트 띄워서 통합 시스템이든 뭐든 만들어봐’ 라고 지시한 누군가가 있었을테지. 애초에 목적,가치,방향,인력,운영,유지보수 등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거북선도,

우리 서비스도,

결과는 둘 다 폐기처리다.



그 리소스를 다른 더 중요한 내부 개선에 투입했더라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허구한 날 장애가 터지고, 유저는 불편을 호소하는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는 소용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누가 책임질까?

그런 사람은 없다.

광팔이 프로젝트는 소중한 돈과 리소스만 날리고 마무리된다.

긴급하다며 이 건을 막무가내 지시했던 임원은, 다른 부서로 옮겨 또 이런 짓을 하고 있다.


오늘도 대한민국 어디에선가 가짜 거북선이 만들어지겠지.


우리 팀의 거북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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