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여느 때와 좀 달랐다.
시끄러운 명절 분위기나 바쁜 이동 대신, 책을 읽는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여러 집안 사정이 겹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이번 연휴,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읽은 책과 생각들을 정리해 둔다.
모두 여덟 권이었다.
이번 연휴 동안 읽은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3권과 '기사단장 죽이기' 2권을 포함해서, 한석준 작가의 '말하기 수업', '초역 논어', 그리고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까지. 가히 책과 함께 보낸 추석이었다.
요새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시 탐닉 중이다.
어렸을 적 하루키 소설을 읽었을 땐 솔직히 재미가 없었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말들로 가득 차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기 힘들었다.(그래서 당시에는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어려운 숙제를 하는 느낌이었다. 문체가 '뜬구름 잡는 느낌'이고, '내용 없이 멋진 표현만 자랑한다'라고 생각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재즈, 비싼 위스키 같은 것들을 늘어놓으며 잘난 척을 한다고 생각도 했다. 그의 소설은 '내가 쿨하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차가운 장식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 같은 책을 일부러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참 어린 시절이었다.ㅋㅋ)
이제 나는 나이가 들었다. 이제와 다시 읽어보니 하루키의 세계는 정말이지, 흥미진진했다. 그의 소설은 어렵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흡사 '어른들을 위한 신나는 동화' 같았다. 물론 그 속에 '죽음에 대한 성찰'같은 깊은 주제도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텍스트는 그대로 일 테니 내가 바뀐 거겠지.
요새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불발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나는, 팬이 이렇게 많은 작가에게 굳이 노벨문학상 같은 상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톨스토이도 노벨문학상 못 받았다.) 그만큼, 요즘 나에게 하루키의 글은 어떤 유튜브나 넷플릭스 영상보다 재미있는 놀이다.
이번 연휴에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단연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그의 대표작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은 지 십수 년 만에 우연히 이 책을 접했다. 큰 기대 안 하고 읽기를 시작했다. 느닷없이 빠져들었다. 가슴 깊은 곳까지 슬픔이 밀려왔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흔한 신파나 뻔한 감정 자극과는 달랐다. (예전에 읽었던 '가시고기' 같은 것 말이지.) ‘이래도 안 울 거야?’ 식의 이야기와는 달랐다. 이 슬픔은 머리 뒤쪽이 찡해지는 애환에 가까운 감정이었고,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소설은 평범한 남자가 세상이 정한 '아름다움' 기준에 맞지 않는 여성(너무 돌려 말하는 걸까. '못생긴'여성을 뜻한다.)을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다. 겉모습만을 중시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남의 시선에 갇혀 자신을 미워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슬며시 건드린다.
한가로운 신파 감성 없이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따뜻하게 다뤘다. 특히 '예쁘다'와 '안 예쁘다'는 기준을 무너뜨리고, 사람 자체의 소중한 가치를 묻는 작가의 깊은 고민이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게 새벽 두 시쯤이었다. 읽으며 마시려고 가져다 놓은 커피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사회가 정해놓은 ‘아름다움’이나 ‘훌륭함’ 같은 기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과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SNS에서 남과 자신을 계속 비교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다가 결국 좌절하며 살고 있다.
어떤 삶이 진짜일까. 정답은 없었다. 애초에 '정답'이란 게 있을 리가.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깨달음에 조금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종교나 철학처럼 세상의 근본 원리는 마침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묵직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결국 또 부처의 가르침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과 '괴로움'의 일깨움과 아주 비슷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괴로움, 즉 외모 같은 변하는 기준에 자신을 묶어두고 남과 비교하며 생기는 슬픔은, 결국 '특별한 기준이나 생각'에 집착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아름다움이나 부, 혹은 우월함처럼 언젠가 사라질 현상(겉모습)에 큰 의미를 두는 순간, 실망과 좌절(괴로움)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박민규 작가는 소설을 통해 겉모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그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때 진정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이는 모든 것이 텅 비어있다(공, 空)는 불교의 깨달음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철학이든, 종교든, 아니면 소설이든, 사람이 가진 고민은 결국 하나의 진리로 모이는 것 같다.
혹시 내 이 글을 읽고, 박민규 작가의 책에 관심이 갈 분들을 위해 중요한 정보를 남긴다. 그는 표절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한 삼미 골수팬이 PC통신에 올린 실화 바탕의 글에서 소재와 사건전개를 그대로 표절했다. (단순 자료참고가 아니라, 복사, 붙여넣기한 수준이다. 찾아보면 인터넷에 정리된 글이 많다.)
박작가는 강하게 부인했다가 비판이 거세지자, 표절을 인정하는'듯한' 글을 공개했다. '아이디어는 본인 것이 맞고, 소재만 차용했다'는 투의 변명이었다. 최근에 개정판까지 출간한 걸 보면 반성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아마 지금도 꼬박꼬박 인세를 받아가고 있을 것이다. 참고하시길.
이번 연휴는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많은 책을 읽으며 내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는 생각의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성장했다고 느낀다. (적어도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생각은 확실히 바뀌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진 조용함 속에서, 책을 통해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에게 이번 추석은 다른 명절과는 달리, 독서 그 자체가 주는 행복을 느끼게 해 준, 내 마음에 새로운 길을 알려준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길었던 올 추석, 여러분은 어떤 책과 함께하셨는지 궁금하다.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