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화제작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한국에서 2016년부터 공연했다. 그러다가 2024년 11월 뉴욕 벨라스코 극장에서 영어 버전으로 초연 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뮤지컬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제는 홀로 남겨진 두 ‘헬퍼 로봇’인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그린 내용, 한마디로 독특하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순수한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따뜻하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풀어냈다.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깊다.
우리는 어디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결국 인간 본연의 정서에 집중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나는 이 작품에서 그 답의 실마리를 얻고 싶었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박천휴 작가와 윌 에런슨 작곡가는 뛰어난 호흡으로 대본과 음악을 구성했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같이 나온 걸 보니, 실제로도 진짜 친한 듯하다) 결국 그들은 제78회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뮤지컬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등 주요 부문 6관왕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쾌거다.
한국 국적의 창작자가 토니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례로 한국 뮤지컬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한 공연이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해, 결국 토니상까지 수상하다니, 이런 게 바로 성공신화가 아닐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이다. 종로5가역에서 가깝더라. 약 600석 규모의 중극장이다. 극장의 구조가,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 연기나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내 자리는 그 정도로 가깝진 않은 게 함정.
도착했다.
오늘의 캐스팅
역시, 사람이 많다.
전회차 매진이라고 한다.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티켓을 수령하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샀다. 공연장 밖에 서서 책을 읽으며 기다렸다.
커피컵 홀더 사진에 반가운 얼굴이 있다. 요새 김우빈 배우의 영상을 몇 가지 봤는데, 아주 예의 바르고 반듯한 사람으로 보이더라. 이런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편안하고 정화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요새 응원하는 배우다. 잘 되길 빈다. (뮤지컬 후기랑 상관없지만, 그래도 응원하고 싶었음)
포토존, 소박하다.
무대.
미래의 로봇 이야기라고 하길래, 좀 더 기계적인 구성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올드한 감성이다. 맘에 든다.
무대 연출이 기가 막히다. 아날로그 감성과 신기술을 영리하게 결합한 구성을 보여준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21세기 후반 근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위 사진처럼 무대는 강한 미래의 느낌은 주지 않는다. 주 배경인 올리버의 집에 LP판이나 잡지 등 아날로그적인 소품들이 배치된 게 대표적이다. 그런 아날로그적 연출이, 극 전반에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킨다.(최근 봤던, LED로 도배한 어떤 뮤지컬과 너무 비교가...)
제주도 장면 연출은 그 아날로그의 스펙터클이라고 봐도 되겠다. 정점이다. 폭발하는 감성을 대사 하나 없이 조명만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이 작품의 디자이너인 김하나 씨는 토니상 조명상을 수상했다. 창문을 여는 씬을 조명으로 표현하는 등, 천재성이 돋보인다. 어찌 보면 미니멀리즘과도 맞닿은 듯. 그래서 내 마음에 드는 건가.
다른 그 무엇보다 이야기의 짜임새와 완성도가 엄청나다. 뛰어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극을 보고, 박천휴 작가의 토니상 수상을 완벽히 납득했다. 나도 브런치에 이런저런 글을 쓰지만, 이 정도의 창작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는 짐작조차 안 간다.
더 대단한 건, 단순히 규모나 스타 마케팅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오로지 이야기의 힘만으로 이뤄냈다. 단지 3명의 배우와 5명의 오케스트라가 전부인 이 소품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는, 바로 서사의 깊이와 예술적 완성도 그 자체 덕분이다. 그게 이 작품의 힘이다.
요새 많은 한국의 뮤지컬들이 유명 원작을 각색하거나, 대형 라이선스 작품들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정도 쉽게쉽게 흥행을 깔고 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뮤지컬 계에 이런 참신한 작품이라니. 박수 쳐 마땅하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아 그리고. 제목이 왜 ‘어쩌면 해피엔딩’인지 궁금했는데. 보면 압니다.
저는 해피엔딩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어요.
오늘도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