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시작된 나의 프리랜서 생활 이야기 1
통유리로 된 교실 벽 너머로 동료 선생님이 나를 향해 손을 크게 휘젓는다. 그리고 한 손에 든 핸드폰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내게 말했다.
'예지 쌤! 카톡! 카톡! 카톡 봐주세요!'
그날 내게 배정된 4개의 한국어 수업 중 마지막 수업을 거의 끝내가고 있던 찰나였다. 10분만 더 버티면 달콤한 퇴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카카오톡을 열어보니 다급한 메시지가 와 있다.
"선생님, 저 아무래도 코로나 걸린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보건소에 가야 하는데 제 수업 대강*해 주실 수 있어요?"
*대강은 대신 강의를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2022년이었다. 실내에서는 늘 마스크를 써야 했고 코로나 확진을 받으면 근 2-3일간 만났던 사람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해 보라고 연락을 돌리던 시절이다. 내가 근무하던 학원은 강남 신사동에 있던 한국어 어학원이었는데 판데믹 상황에서도 학생 수가 100명을 훌쩍 넘던 곳이었다.
다양한 레벨의 한국어 수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레벨테스트를 거친 새로운 학생들이 매주 월요일에 들어오던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우리 학원에는 전 세계에서 갓 한국에 입국한 학생들이 많았다. 기존 학생들 중에서도 매일 밤 홍대와 강남 클럽을 신나게 탐험하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많은 학생들을 대면해서 수업을 하는 강사들은 코로나 감염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날도, 갑작스러운 대강 부탁이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누가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피치 못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서로 돕는 것이 보통이었기에 흔쾌히 대강 부탁을 받아들였다. 10분 남은 수업을 무사히 끝내고 교무실로 가서 인수인계를 받았다.
선명한 두 줄이 남은 자가 검진 키트가 놓인 책상 앞에서 선생님은 수업 자료 ppt 40여 장을 빠르게 넘기며 목표 문법과 수업 활동, 숙제 등등을 3분 만에 알려 주셨다. 내게 남은 시간은 7분, 처음 보는 수업 자료를 후루룩 넘기며 수업 시간 3시간을 어떻게 쓸지 포스트잇에 정리하고 교실 컴퓨터를 세팅하고 나니 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학생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인터넷 창을 켜서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목표 문법에 대해 한번 더 공부했다.
세상 모든 일이 거의 다 그렇듯, 수업도 기세다. 선생님이 자신감 있고 에너지 있게 수업을 이끌어 나가야 학생들도 선생님을 신뢰하고 잘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수업을 시작했다.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지만.
당시 나는 한국어 강의 경력이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은 선생님이었다. 이제 겨우 교실이 편해지기 시작했을 뿐, 학생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툭툭 대답할 수 있는 노련미는 부족했다. 1시간짜리 수업을 하기 위해 5시간 동안 수업을 준비하는 날이 허다했다. 학생들이 관련 문법에 대한 질문을 할까 봐 가르치지 않을 것들까지 공부하고 외워서 교실에 들어갔었다. 그런 나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대강은 실은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나, 선생님은 보건소를 가야 하고 스케줄이 되는 내가 학생들을 맡아야지.
그날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학생들의 컨디션은 날씨 영향을 꽤나 받는다.) 학생들이 대답도 잘해주고 수업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어서 예상외로 수업은 아주 잘 흘러갔다. 수업 시간이 흘러갈수록 용기를 얻은 나는 10년 차 경력의 선생님으로 빙의해 여유롭고 노련해 보이는 표정으로 학생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수업을 마쳤다.
수업은 잘했냐고 묻는 동료 선생님의 카톡에 잘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장을 보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했다. 내가 한국어 선생님으로서 성장해가고 있다는 느낌, 나에게 맞는 직업 선택을 참 잘한 것 같다는 뿌듯함으로 8시간 연강의 피곤함도 잊은 채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뿌듯함도 잠시,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동료 선생님의 빈자리를 이렇게 쉽게 대체할 수 있다면, 나 또한 쉽게 대체될 수 있겠구나'
집에 도착한 나는 문득 불안해졌다. 나도 이렇게 쉽게 대체될까? 내가 오늘 수업을 모조리 망쳐버렸다 해도 학원은 돌아갈 것이고 학생들은 어떻게든 그다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단 10분 만에 수업을 준비하고 순조롭게 대강을 했다는 사실이 성장의 증거가 아니라 미래의 고용 불안으로 다가왔다. (맞다. 나는 생각이 지나치게 많고 상상력이 과하게 풍부한 편이다.)
내가 한국어 강사 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업이 시작되고 교실 문을 닫는 순간부터는 내 세상이라는 점이었다. 그 누구도 나의 수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나와 학생들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좋았다. 이렇게도 설명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강사에게 부여된 자율성 뒤에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내 수업의 가치를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 교실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얼마나 좋은 수업을 제공했는지를 나와 학생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1명을 가르쳐도, 18명을 가르쳐도 강사의 시급은 고정되어 있다. 긴 시간을 공들여 만든 수업 자료로 효과적인 수업을 하든, 충분한 설명과 예시가 부족한 기존 자료로 얼렁뚱땅 수업을 하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 막 강사 일을 시작한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행복했기 때문에 고정 시급에 대한 불만은 크지 않았다. 나는 아직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주니어 선생님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날 대강을 성공적으로 하고 나서 느낀 '나는 다른 누군가로 인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느낌은 매우 불쾌한 감정이었다. 친구들이 취업을 하고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감에 떨며 공부하던 지난 3년의 석사 생활이 억울해졌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밤 잡코리아, 원티드, 사람인을 뒤적거리다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