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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Jun 05. 2023

엄마아빠보단 잘 하고 싶은데요

과연, 현명하게 해낼 수 있을까?

중학교 3학년 여름, 아버지가 3-40대를 갈아 만든 큰 규모의 회사가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부유한 유년 시절, 갑자기 찾아온 어려움. 여기까지는 매일 보는 흔한 클리셰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 어려운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집에서 복닥거리며 잘 살아가고 있다. 15년 세월이 늘 아름다웠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온 가족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혼란한 가운데 서로를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낸 덕이다. 아빠는 본인의 좌절에 침잠하는 대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다 하기 위해 새로운 업을 찾았다. 엄마는 그 기간 동안 아빠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 무조건적인 믿음과 지지를 보여주었고. 두 사람은 성장기에 있는 두 예민한 자녀가 최대한 상처받지 않고 학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우선순위를 걸었다.


덕분에 나와 내 동생은 그 흔한 학자금 대출 한번 받지 않고 대학을 무사히 마쳤다. 그래봐야 결국 둘 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그게 어디야. 2-30대에 직장 잡는 게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서. 두 분의 사랑과 헌신 없이 우리는 절대 여기까지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아빠도 사람인지라 15년을 영끌하여 자식농사를 짓고 나니 너무 지치신 걸까. 늘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아빠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게 느껴진다. 아빠에게 기대어 부동산 투자를 망설였던 엄마가 지나간 날들을 매일밤 후회하는 게 보인다.


지칠 만도 하다. 경제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노년의 삶 앞에 우리보다 두 분의 허무함이 더 크겠지.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되면서도, 술과 골프, 텔레비전으로 침잠하는 환갑이 지난 아버지, 종교 활동에 심취하여 현실과 점점 멀어지는 어머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얼마 남지 않은 기회를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부모님이 한편으로는 답답하다.




부모님이 숨을 고르시는 동안, 내가 힘을 좀 더 내면 좋겠는데. 그게 또 참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20대 내내 이런 현실적인 불안에 이것저것 애매하게 시도해 보았지만 별 볼 일 없는 30대를 맞이한 탓일까. 주변에 결국 다 부모님의 경제적, 정신적 유산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인가. 자꾸만 나의 희망도 함께 사그라드는 것 같아 무섭다. 해보기도 전에, 기운이 빠지고. 시작도 전에, 못할 것만 같고.


남을 안타까워하는 일은 참 쉬운데, 그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직접 하루하루 나아가는 건 참 쉽지 않다. 엄마아빠보단 조금 더 잘 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좀 더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체면치레는 잠시 내려두고, 실리를 추구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실천은 또 다른 문제다. 주말마다 축 쳐져서 아빠 옆에서 TV 보다가 엄마 옆에서 잠에 빠져드는 이 무기력한 삼십 대를 어찌 일으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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