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교장이 키팅 선생에게 말한다. 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가 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주지 말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희망이 있어야 단념도 할 수 있다.
2
도립 미술관에서 백남준 작가 전시를 하고 있어서 둘러보고 왔다. 전시관 벽엔 백남준 작가의 일기가 무늬처럼 적혀있었다. 내용이 자세하게 기억하지 않지만 한 문장만은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남겨졌다. ‘내가 만약 25살 때 47살에 뉴욕에 가난한 예술가가 될 줄 알았더라면’라는 문장이었다.
신기하게도 나오자마자 알았더라면 뒤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해낼 수가 없다. 인상적이라, 한동안은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잊은 것이다.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가거나, 백남준 작가 책을 읽으면 찾을 수 있겠지만 왠지 그냥 이렇게 모르고 있는 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잊어버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필연적으로 47살에 형편없는 인간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그렇다면 최선을 다한 형편없는 인간이고 싶다. 그 두 개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전자는 ‘아, 내가 최선을 다했더라면 형편없는 인간이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하는 큰 착각을 안고 살아갈 것이고 후자는 ‘그럼 그렇지.’라는 멋진 결론을 얻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 절대적인 결론은 쉽게 얻을 수 없다. 내일을 단념케 해줄 완벽하고도 철저한 결론을 얻기 위해 바쁘게 살아야 한다.
쉬는 것도 좋지만, 움직이는 것도 좋다. 포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포기조차 할 수 없다. 깡통도 던져야 소리가 난다.
3.
그날 미술관 앞 잔디에서 푸른 풍뎅이를 봤다. 겉에 무지갯빛이 감도는 멋진 풍뎅이였다. 자연계에는 파란색이 드물다. 파란 나비나, 푸른 풍뎅이는 기와지붕 같은 광구조로 실제 색과 다른 색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 색이 있다고 해도, 대체적으로는 푸를 테니, 꼭 그걸 트집 잡고 싶지 않다. 과학자들은 기발한 기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넌 네가 파란 줄 알고 있겠지, 하지만 아냐.’라고 해도 풍뎅이가 일말의 상처를 받을 것 같진 않다. 가볍게, 그리고 치밀하게. 들키더라도 상관없는 속임수를 끈질기게 지킬 것. 풍뎅이가 조언한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