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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책임은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검색을 시작했다. 어디 비밥 뭐라고 했는데. 들었던 대로 쳐보자 ‘Beep’s Pastis’라는 칵테일 바가 나왔다. 후기를 보니,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여기가 아닌가.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 궁금불안증을 앓고 있는 윤 책임은 어떻게든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머리를 굴렸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일에서 손을 놓고 진실을 찾아 한참을 웹서핑하던 윤 책임은 무엇인가 깨닫고 손가락 스냅을 튕겼다.
‘그때 폐업했다가 부활한 재즈 클럽!’
윤 책임은 그룹웨어를 뒤져 현예가 상신했던 현장 실사 결과 보고 문서를 발견했다. 문서엔 재즈 클럽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Bebop in Pastel’
가게 명을 알아낸 윤 책임은 곧바로 모든 SNS에서 ‘Bebop in Pastel’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고는 곧 발견했다. Bebop in Pastel을 태그로 걸어둔 사진에 찍힌 현예의 모습을. 회사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희열에 가득 찬 표정으로 콘트라베이스를 움켜잡고 있었다. 성스러움마저 느껴지는 고고한 자세였다.
즐거움을 만끽하는 듯한 현예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묘한 신경질이 났다. 정시 퇴근해서, 이딴 거나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지금 업무하는 중에도 연주할 생각만 하고 있을 게 뻔해.”
“팀장님, 소상공인 보증 지원 심사도 다 마무리했는데, 오래간만에 오늘 저녁 회식 어떠세요. ”
오후 다섯 시 느닷없이 윤 책임이 예정에 없던 회식을 제안했다. 다른 팀원들의 표정이 썪어 들어갔다.
“나도 때마침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좋지. 다들 어때?”
“저는 일이 있어서, 참여가 어려울 듯합니다.”
현예가 공손하게 말했다.
“무슨 일?”
석 팀장이 선 넘는 질문을 했다.
“아, 신 선임, 그 뭐 재즈 연주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현예를 보며 윤 책임이 빈정대듯 말했다.
“신 선임이 무슨 연주를 해?”
팀장이 물었다.
“아 글쎄 제가 얼마 전에 인스타 보다가, 재즈 클럽 라이브 영상을 봤는데, 거기 딱 우리 신 선임이 나오는 게 아니예요. 깜짝 놀랐어요.”
박수를 치며 윤 책임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가봐야 합니다. 믿기 어려우시면, 저랑 같이 병원에 가셔도 됩니다.”
현예가 정색하며 말하자, 윤 책임 얼굴이 굳었다. 사람들 눈이 있어 차마 재즈를 한다느니, 투잡을 뛴다느니, 이야기를 더 꺼낼 수 없었다. 아무리 낯 두꺼운 윤 책임이라도, 패드립은 넘기 힘든 선이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조심히 돌봐드리게”
석 팀장도 언짢아 보였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정시가 되었고, 현예는 사무실의 모두를 남겨두고 유유히 떠났다.
“엄마, 죄송해요.”
“뭐가?”
“건강하시죠.”
“네 엄마가 건강 빼면 시체인 거 잘 알잖아.”
“건강 빼면, 사람은 다 시체예요.”
“재미없는 농담할 거면, 빨리 끊어.”
“농담 아닌데.”
“넌 참 재미도 없다.”
“사실…”
현예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자신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요.”
“참 빨리도 철 든다. 딸아. 힘들면 얘기 해. 엄마는 못 들어줘도, 아빠한테 일러는 바칠게. 너 징징 거렸다고.”
도무지 편이라고는 들어주지 않는 엄마였다.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아서, 기대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미친듯이 공부했었다. 스트레스로 눈뜨기조차 싫었을 때도 그것 말곤 할 게 없었다. 재즈 오케스트라부에 들어가기 전까진, 365일 중에 눈 뜨고 싶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둥둥 울리는 베이스 소리에 잠시 눈을 떴었고, 미국에서 결국 눈을 감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푸른 빛이 보였다. 눈을 감아도 보고 싶을 만큼 선명해지고 있었다.
두려워질 만큼 뚜렷하게.
“여튼 밥은 챙겨 먹고 다녀.”
“네. 엄마도 저녁 잘 드세요.”
“응, 너도.”
통화가 종료되었을 때, 현예는 재즈 클럽 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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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bop in Pastel’은 완연한 상승기류에 올라타고 있었다. 팔로워 수가 만 명이 넘었고, 몇몇 인플루언서들이 방문 인증을 하기도 했다. 포스팅을 보고 인플루언서들의 팬들이 따라 방문했고, 재즈에 매료된 소수의 사람들이 주변에 ‘Bebop in Pastel’를 알렸다. 속이 꽉 찬 재확산이 꾸준하게 이루어졌다. 그에 맞춰 수익도 꽤 늘었다. 그러나 아직 아소와 도한에게 합당한 개런티를 지급하기엔 모자랐다. 한 번 더 성장을 폭발시킬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이번엔 우리가 잼데이를 열자고요?”
서규가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지금까지 흥행을 한 층 더 증폭시키기 위해선, 다른 밴드와의 접촉이 필요해요. 잼데이에 다른 연주자들을 부르면, 그 연주자들의 팬도 우리 가게로 오는 거예요. 그때 저희가 그 팬들의 마음을 꽉 붙잡는 거예요. 떠나가지 않게.”
“구독자 가로채기 같은 건가요?”
“그렇죠.”
너무 당당한 대답에, 서규는 현예의 도덕성을 의심했다.
“그런데 그만한 팬을 가진 밴드가 저희 가게에 찾아올까요? 도너츠 잼데이라면 몰라도.”
“그러니까, 단순한 잼데이로는 안 돼죠. 밴드 대 밴드의 경합으로 가는 거예요. 여기에 안 오면 쫄보가 되는 걸로.”
“그런데 너무 유명한 사람들이 와서, 저희가 묻히면요?”
“그렇게까지 유명한 사람들은 안 오겠죠. 우리보다 조금 더 잘 나가는 수준의 밴드를 참여시키는 게 목표예요.”
“저희 팬들이 그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게 가만 둘 거예요?”
현예가 도발했다.
“절대 안 돼죠.”
“맞아요. 그렇게 나가야죠. 그럴려면…”
“특훈이 필요하겠네요.”
서규가 혀를 내밀었다.
현예는 못 본 척했다.
그동안 도너츠에서 공연했던 1년치 아티스트 목록을 기준으로, 현예는 팔로우 수가 중간값을 약간 상회하는 뮤지션을 추려냈다. 도너츠에 올라오는 뮤지션의 최댓값이 워낙 높은 탓에 평균값으론 부를 수 없는 아티스트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중간값이라고 해도 지소카도 밴드, 전겸효 트리오, 이토록 퀸텟 등 모두 쟁쟁한 이름들이었다. 이들을 불러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현예는 자신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서규와 도한, 아소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세 사람의 성장 속도는 자신이 2년 동안 연주에 전력을 다했을 때보다 훨씬 빨랐다. 부족한 점이 수두룩했지만, 그것을 상쇄할 잠재력이 연주 중에 튀어 나왔다. 변칙적이고, 결말을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연주.
선배와 둘이서 ‘Feelin' Fine’을 연주했을 때가 떠올랐다.
‘내가 튀어 나갈 것 같으면 네가 잡아줘야 해. 할 수 있지?’
아마 못한다고 대답했던 것 같은데, 용케 그 곡을 완주했었다.
‘그런데 오디션 테이프에 다른 악기가 들어가도 돼요?’
‘괜찮아 소벌린은 합주에 관대하니까.’
정성을 담아 쓴 정중한 콜드 DM을 보내고 나서, 현예는 기지개를 켰다. 이제 남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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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너무 빨리 치고 나가요. 트럼펫 솔로를 가릴 만큼 화려하고요.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건 좋지만, 혼자서만 흥분하면, 다같이 즐길 수 없잖아요.”
연습으로 곡을 한 번 돌릴 후 현예가 한 사람씩 피드백을 줬다.
“그야, 서규 오빠가 선비처럼 굴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들리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도한이 날뛰지 못하잖아요. 안 그래도 피아노 코드에 갇혀 있는데!”
“이건 아소 말이 맞아요. 신중한 건 좋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소극적이에요. C0와 C8까지 자유롭게 돌아다녀 보세요. 좋은 프레이즈는 중음역대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반대로 도한은 너무 아웃으로 나가요. 적당히 조절하면 더 나은 프레이즈가 나올 것 같아요.”
“소벌린에서는 이렇게 강도 높게 가르치나요?”
서규가 쏟아지는 피드백에 땀을 흘리며 물었다.
“아니요. 이것보다 훨씬 심하죠.”
“Not quiet my tempo?”
덜덜거리며 아소가 말했다.
“물리적으로 때리진 않아요. 오히려 자괴감이 많이 들죠. 그만큼 못 따라가는.”
담담하게 현예가 말했지만, 평소의 담담함과는 달랐다. 척에 가까웠다.
“저였으면, 1개월도 못 버텼을 거예요.”
도한이 고개를 저었다.
“왜 못 버텨, 끝까지 버텨야지!”
아소가 스틱으로 서규를 가리켰다.
“어떻게 내 생각도 읽었지.”
“그야 오빠는 아예…”
말을 하다, 아소가 입을 틀어막았다.
“아, 죄송해요…”
“아니야, 사실인 걸. 저 예고 다니다, 중퇴했거든요. 피아노도 완전 포기할 뻔했는데, 좋은 선생님 만나서 이렇게 재즈를 연주하고 있네요. 뭐든 지금이 중요하죠.”
서규가 밝게 웃었다.
“그래 죄송하게 되었지만! 더 나은 드럼으로 보답하겠어.”
서규의 미소를 보고 아소가 스틱을 쳤다.
“좋아요. 그럼 다시 갈까요?”
현예의 피드백을 머릿속에서 되뇌이면서 서규는 연주에 몰입했다. C0에서 C8까지. Prokofiev를 치지 않는 이상, 끝에서 끝을 오가면서 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운데 도를 벗어난 음을 상상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서 치는 프레이즈와 그렇지 않은 마음가짐에서 치는 프레이즈는 방향성이 달랐다. 자유로운 음의 도약을 그릴 수 있었고, 더 폭 넓은 연주가 가능해진다. 서규는 현예의 지적이 정확히 자신의 약점을 겨냥했다는 사실을, 연주를 하면서 깨달았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습관이었다.
아소와 도한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한결 부드럽고, 확실해졌다. 속도가 엇갈려 상승하던 흐름이 점차 박자를 맞춰갔고, 같은 지점을 바라보게 되었다. 피아노 뚜껑 사이 틈으로 현예가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정할 수 없는 즐거움이 얼굴 전체에 배여 나왔다.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표정, 그래서 더 아껴주고 싶은 표정이었다.
두 시간을 더 연습했고, 손가락 끝이 얼얼했다. 현예는 끄떡없는 듯했지만, 오늘 연습을 끝내는 데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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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으로 차례차례 답이 도착했고, 잔치를 벌일 정도의 밴드가 참여한다고 응답했다. 현예는 서둘러 출전자 목록을 넣어 포스터를 제작했다.
행사명은
“Pastel Jam Showdown 줄여서 PJS”
“드레스코드가 파자마인가요?”
서규가 물었다.
“그럼 전 박쥐 잠옷 입고 올게요!”
아소가 선수쳤고,
“전 우주 잠옷있어요.”
“가능한 검은 옷 입고 오세요.”
현예가 피로 범벅된 포스터를 보여줬다.
“누구 한 명은 피를 봐야 끝나는 날이 될 테니까.”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에 서규가 침을 삼켰다.
PJS 전날까지, 네 사람은 살기보다는 죽기에 가깝게 연습했다.
마침내 행사 날이 되었고, 클럽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결국 스탠딩 공연으로 바꿔야 했다.
“오늘 공연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PJS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서는 입장 시 제출해 주신 종이를 제비뽑기해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예는 박스 안에서 한 장을 뽑아 펼쳤다.
순간 현예가 얼어붙었다.
종이에는 굵은 펜으로
‘2OK 트리오’
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