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 중독이었던 1년을 고백한다

몸이 싫다는 걸 억지로 끌고 간 죄

by 달처녀

2015년 겨울, 나는 미쳤었다

팔뚝에서 분홍빛 용액이 새고 있었다. 버버리 코트에 번지는 붉은 자국. 소개팅 남자의 놀란 눈.

"괜찮으세요?"

괜찮을 리가 없었다. 3시간 전 팔뚝 지방흡입을 받고 온 몸이었으니까.


없음의 연속

그해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봐줄 만한 집안 배경도 없고 실수투성이 신입사원에 친구도 없고 통장 잔고도 없고

딱 하나 있는 건 '예뻐지면 인생이 바뀔 거야'라는 어리석은 믿음뿐이었다.


200만원 월급, 100만원 시술비

[시술 리스트]

허벅지 지방흡입 280만원

팔뚝 지방흡입 + 카복시 150만원

허리 지방흡입 180만원

냉동지방분해 10회 200만원

고주파 탄력관리 월 80만원

다이어트 한약 월 35만원

얼굴 경락 회당 15만원


매달 카드 명세서를 받을 때마다 손이 떨렸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SNS 속 그녀들처럼 되고 싶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

술을 마시고 가공식품을 먹으며 새벽 3시까지 핸드폰을 보는 생활은 그대로였다.

그저 돈으로 살 수 있는 아름다움을 믿었다.

결과는?

체중 -0.2kg (네, 0.2입니다)

피부 온도 2도 하락

진피층 유착 시작

얼굴 처짐 가속화

승모근 보톡스에도 불균형한 체형

가장 웃긴 건, 그 많은 시술을 했는데도 여전히 거울 앞에 서면 실망스러웠다는 거다.


숫자로 나를 정의하는 어리석음

48kg이면 행복할까? 24인치 허리면 사랑받을까? 체지방률 18%면 인생이 바뀔까?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질문들이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다.

보편적으로 '정상'이라고, '이상적'이라고 불리는 숫자들에 내 가치를 맡겨버렸다.


진짜 잃어버린 것

1년 동안 잃은 건 돈만이 아니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매력을 잃었다.

웃는 얼굴 대신 붓기를 걱정하는 얼굴 건강한 혈색 대신 창백한 피부 자연스러운 몸선 대신 유착된 조직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잃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2025년의 나는 시술을 전혀 안 한다고는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든 건 순리대로 할 때 가장 아름답다.

운동으로 만든 탄탄함 좋은 음식으로 얻은 윤기 충분한 수면이 준 생기 스트레스 관리로 찾은 평온

이것들이 만든 아름다움이 그 어떤 시술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그때의 나에게

"야, 그 돈으로 PT 받고 좋은 음식 먹고 여행 가고 책 사 읽어.

네가 정말 바꿔야 할 건 허벅지 둘레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야."



시술 중독이었던 1년. 그것은 내 몸에 폭력을 가한 시간이었다.

'싫다'고 소리치는 몸을 억지로 끌고 가며 '예뻐져'라고 강요한 죄.

이제야 용서를 구한다. 내 몸에게. 그리고 그때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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