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지는 것도 메타인지가 관건 아닐까
마흔이 되었다. 불혹이라고 하던가.
문득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27살 때 한 보험상담사가 전화로 말했다. "비과세 보험에 가입하시면 37살에 해지할 때 톡톡한 혜택을 받으실 수 있어요." 뭐라도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던 백수였던 나는 덜컥 매달 10만원씩 꼬박꼬박 입금했다.
복리의 마법을 믿었다. 10년 후면 1800만원 정도는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에 쥐어진 건 딸랑 1200만원. 이유를 묻자 초반에 급해서 몇 만원을 인출한 게 문제라고 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쉽게 쥐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미 그들이 짜놓은 판에 대책 없이 걸려든 것이다.
27살에서 37살로 넘어가는 10년 동안, 나는 그게 내 인생을 바꾸는 투자라고 믿고 묻어뒀다. 끝없는 긍정은 오히려 그 소중한 돈을 굴릴 수 있는 다른 기회들을 앗아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런 경솔하고 어리석은 모습이 돈굴리기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걸.
요즘엔 강남까지 가지 않아도 팽팽하게 당겨진 사람들을 쉽게 본다.
얼굴을 고치는 일이 더 이상 금기도 혐오도 불러오지 않는다.
기괴한 회복기를 거치고 나면 어딘가 모르게 세련된 곡선이 얼굴 윤곽을 바꿔놓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이제 길거리에 넘친다.
강남언니 앱만 봐도 귀가 솔깃한 마케팅 문구들이 즐비하다. "이 신상 레이저만 하면!", "초음파로!", "하이프로!", "고주파로!" 계속 들여다보면 나조차 의료인이 될 것 같은 분위기다.
실제로 성형외과 대기실에선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하얀 마취크림을 바르고 앉아있는 모습을 흔히 본다.
발달한 의학기술로 살아온 흔적을 쉽고 저렴하게 지울 수 있는 방법들이 참 많아졌다.
그런데 나는 외모 가꾸기도 메타인지력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 권유한 시술만 하면 20대로 환생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작은 상처가 나고 회복되는 시간처럼 쉽게 생각하며 한 번에 얼굴을 당기거나, 몸에 뭔가를 많이 넣거나 빼거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런데 그 돈을 들여서 그 사람이 정말 아름다워졌을까? 이상하게도 그런 케이스는 별로 없었다.
단지 개인의 살성 문제라면, 왜 모두가 목숨 걸어야 하는 수술을 이렇게 원하고 받는 걸까?
초음파 시술만 해도 얼굴 표피 아래로 에너지를 쏴서 조직에 자극을 가하고 회복을 기다린다. 실리프팅은 진피를 뚫고 들어가 피부를 묶어놓는다. 지방 제거 시술들은 캐뉼라가 피부 조직을 파고들어 진피층을 헤집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이렇게 상처를 내고 숨기면, 당장 겉표면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결국 인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대책 없이 돈을 묶어두고 기다리는 보험처럼, 지금의 젊음을 걸고 몸을 망치는 행위는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일 뿐 노력이 아니다.
노력도 전략적으로 해야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보고 이목구비가 어떻든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우리 DNA에 새겨진 빅데이터로 생명력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이 매력적이려면 생기가 있고, 활기가 차고, 기운을 가져야 한다.
나도 못생긴 여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필러도 넣어보고 레이저도 받아봤다. 하지만 환하게 아름다워지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 모를 무거움으로 중력에 당겨지는 느낌만 받았다. 이건 아름다움을 향한 좋은 노력의 방향이 아니었다.
요즘 SNS엔 사기가 너무 많아서 성형 후기조차 믿을 수 없다. 일반적인 비율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과도한 성형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은 드물 수밖에 없다.
그럼 아름다움의 본질은? 돈을 불리는 본질과 같다.
나에게 맞는 가치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내가 어디가 예쁜지, 언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메타인지력을 가져야 아름다워질 수 있다.
난을 기르듯 나를 소중히 여기며 꾸준히 돌봐야만 그 아름다움도 성과가 있는 것이다.
한 번에 째고 파고 넣어서 아름다워지는 요행은 절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