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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디자이너 Dec 18. 2021

석사 졸업 대신 네 번의 이직

4. 대기업 계열사에서 스타트업으로

이 이야기는 쓰다가 너무 길어진 나머지 네 개의 글로 쪼개어 업로드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석사를 예상치 못하게 휴학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이직만 네 번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직은 대기업 계열사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여정이다. 지난 5월부터 나는 건자재 제조 대기업 계열사에서 트렌드 리서치 및 공간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내년 1월, 나는 이제 그곳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앞두고 있다.


무엇이 이직의 계기였을까?


사실 8-9개월의 경험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 어떤 부분들이 아쉬웠는지, 왜 전혀 다른 결정을 했는지 스스로 정리하고 싶었다.


성장 : “내가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고 있는가?”


건자재 기업에서의 트렌드 리서치 업무는, 업무명과는 다르게 정체되어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업무 자체는 건자재, 홈 인테리어에 대한 소셜 데이터, 인테리어 디자인 트렌드를 리서치하고 그를 외부에 발행하는 역할과 월간, 주간 디자인 이슈들을 사내 또는 외부에 발행하는 업무였다. 매년 트렌드 세미나를 개최해 인테리어 트렌드와 주거 공간을 외부에 공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전 공간 디자인 에이전시 경험에 비하면 훨씬 몸이 편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너무 좋아서, 따로 개인 시간에 부업을 해도 될 정도였다. 네임 밸류, 워라밸, 연봉이 만족스러웠으며, 회사 이름의 앞부분만 말해도 주변인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회사였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안정적이고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나 혼자 고민이 많아졌다.

나에게 있어 회사를 다니는 의미는 “경쟁력을 쌓아간다, 자산이 될 경험을 하고 있다.”였다. 하지만 당시 회사에서 그런 느낌을 받기는 힘들었다.

나는 살면서 평생직장은 없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었고, 직장에서 어떠한 경쟁력을 쌓고 있다는 확신이 없이 시간만 많아지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들을 헤치고 개인 시간에 구직자 대상으로 강의도 했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인테리어 관련 도면 부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일주일에 5일을 몸 담고 있는 직장, 그 사이에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소통과 자극들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부분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함께 일하는 팀장님 또는 누군가에게서 어떠한 미래의 영감을 얻기는 힘들었다. 마음 한 구석에 어딘가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앞으로 계속 이 길을 가는 게 맞는 걸까, 어떤 경쟁력을 개인적으로 쌓아야 하나, 다르게 가볼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하는 고민만 쌓여갔다.


조직문화 : 주 5일, 최소 40시간, 내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당시 회사는 안정적이며 워라밸이 지켜진다는 장점 외에는, 조직문화가 경직되어 있고 폐쇄적인 형태의 직장이었다. 들어간 지 몇 달만에 아무리 연봉과 워라밸이 좋다고 해도 내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독서실과 같은 사무실 분위기, 업계 내 선도하는 작업을 하고자 하는 마인드셋보다는, 조직 내에서의 입지만을 생각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사회생활하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압존법을 써달라는 강요나, 팀장님께 컨펌받으러 자리 옆자리로 오기 전 메신저로 사전 보고를 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건설사 세미나에 참석하며 직접 강연을 하는 사수를 위해 장표를 넘겨드리는 업무를 하러 외근을 다닐 때마다 몇십 년 전에 고착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었다.



퇴근길에 보이던 한강뷰, 퇴근하면서도 생각이 많아지던 2021년 하반기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내가 안 좋은 상태가 될 것 같았다. 계속 번뇌와 내적 고민은 이어졌고, 다른 회사와 환경들을 알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결국 "성장"과 “조직문화”가 안 맞는다는 것이 이직을 생각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첫 번째 던졌던 질문은 아래와 같다.

"이직을 한다면, 나는 이직하는 곳에서 어떤 경험을 자산으로 쌓고 싶은가?"


워라밸과 연봉과 같은 물리적인 요인들만이 회사를 다니면서 중요한 자산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경험을 쌓고 싶은지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 창작 (멋지고 현명한 문제 해결이 담긴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기)

대학 시절부터 디자인 전공을 공부하고,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렸던 환경 덕인지, 내게 가장 부러움을 사는 사람들은 '창작'을 통해 세상을 낫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대체로 나에게 반짝 거리는 순간들은 시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완성했을 때였다. 또 방대한 리서치를 토대로 보이던 문제들을 사람 중심의 아이디어로 짠 하고 해결하던 순간! 멋지고 현명한 문제 해결이 담긴 디자인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일이 재밌어지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올라가는 경험을 자산으로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참여한 디자인이 시장에 나오고, 업계 내 좋은 반응을 얻는 광경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보람과 의미가 두 배는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좋은 포트폴리오와 경력 관리가 될 것이고, 곧 몸 값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람 (실력 있고, 똑똑한, 일 욕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극받기)

내 기준에서 회사에 다니는 보상으로 연봉이나 워라밸보다 중요한 것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실력 있고 일 욕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성장에 대한 자극을 받고, 미래에 대한 영감을 받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분위기나 주변 사람들에게 에너지와 영향을 많이 받는 성향 때문인지, 귀감을 보여주는 리더분이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환경, 일에 대한 열정이 뿜 뿜 하는 이들과 일하는 경험들만으로도 일하고 싶은 마음이 두 배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조직문화 (수평적, 자율적, 창의적 조직문화)

직급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일 자체를 잘 추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뭉친 조직 내에서 일하는 것, 또 팀원들을 믿는 것을 바탕으로 한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갖춘 곳.


글로 세부적으로 작성을 하고 나니 이미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를 바탕으로 회사나 환경들을 서칭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직을 생각하게 된 계기, 현재 회사의 장점,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여러 생각의 갈무리를 마치고 한 문장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작성해보았다.


"나는 일에서 성장, 의미(창작)가 중요한 사람이고, 앞으로 나의 인생을 생각해볼 때, 건자재, 인테리어 업계에서 IT 업계로 바꿔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가 에너지를 얻는 사람과 조직을 만날 가능성이 적어질 것이고, 내 삶의 전체적인 행복도 또한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다닐 때 잠시 UI 분야의 인턴을 경험하기도 했고, 평소에도 IT업계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터였지만, 내가 가진 경력으로 분야를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런던에 다시 가서 IT 관련 전공으로 석사를 마무리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선택지는 또 다른 리스크가 존재했다. 런던에서 잠깐 생활하면서 이민과 타국에서 일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떤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한국에서 공간 관련 일을 하면서 어떤 분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는 이직으로 느꼈던 바와 같이 찾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인테리어 디자인 + IT 를 결합한 스타트업에서 면접을 보기도 하고, 건설 업계의 다른 회사의 선배에게서 주거공간 브랜딩 관련 자리를 소개받기도 했다. 결국 여러 선택지들 중에, 나는 지인이 일하고 있는 부동산 + 테크 (프롭 테크) 업계의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내가 직무를 바꿔보는 경험을 안정적으로 하면서 성장과 의미 위주의, 내게 부족했던 부분들을 채울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다른 직무를 경험해보면서 현재 받고 있는 물리적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현재보다는 훨씬 주변에서 자극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업의 환경은 지금 있는 안락한 환경보다 확실히 무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나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어디에나 나와 맞지 않는 환경은 있을 수 있으니, 그 환경 자체에서 장점을 찾아보는 시안을 길러보자는 것. 쉽게 온 기회는 아니기에, 인내심 있게 한 과정의 결과까지 지켜보는 훈련을 해보자는 것. 험난함 속에서 옆의 동료와 힘을 합치며 회사를 키워나가는 지구력을 기르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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