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쓰기’와 ‘쓰다듬기’

by 탁영민

‘쓰다듬기’는 쉬운데 왜 ‘쓰기’는 어려울까? ‘쓰다듬기’는 즐거운데 ‘쓰고 다듬기’는 왜 이리 힘들까?

나의 고양이 영원이는 지금도 ‘쓰기’를 하는 나에게 조용히 다가온다. 그러곤 책상 한 켠에 벌렁 누워서 ‘쓰다듬기’를 원하는 눈빛을 보낸다. 이렇게 또 ‘쓰기’에서 ‘쓰다듬기’로 흘러가버리는 걸까?


영원이가 내 옆에 오면 자연스럽게 쓰담 쓰담해주게 된다. 그런데 왜 글을 쓸 때는 글감이 내 옆에 스르르 와서 쓰담 쓰담하며 쉽게 써내려 가지지 않는지.


평소 길고양이를 보고도 귀엽다고 생각하며 먹을 걸 한 번 줘 본 적 없었다. 키워본 동물이라고는 어릴 적 작은 어항에 물고기 몇 마리가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고양이 두 마리 ‘사랑이, 영원이’.

고양이를 안 키워보고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조용히 내 곁에 다가와 함께하고 싶어 하다가도 어느새 가버린다. 참 묘한 동물이다. 부르면 오지도 않다가, 자기가 오고 싶을 때는 언제든 찾아오는.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쓰고 싶어 글을 부르면 오지 않고, 생각지 않은 때 갑자기 글감이 떠올라 막 적게 된다. 또 그 생각들은 순간 사라져 버린다.


글을 쓸 때면 가끔 내 곁으로 찾아오는 고양이를 보면서 ‘쓰기’와 ‘쓰다듬기’에 대해 생각해본다. 옆에 온 고양이도 쳐다만 볼 때와 ‘쓰다듬어’ 줄 때는 확실히 다르다. 쓰다듬어 주면 고양이 특유의 ‘그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계속 함께한다. 사람들은 그 소리에 취해서 고양이를 키우기도 한다는데. 흥미로운 감정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옆에 온 고양이를 그냥 쳐다만 보고 있으면 순간 사라져 버린다. 나에게 온 이야깃거리들도 그냥 쳐다만 보면 날아가버린다. 글을 쓰다듬어 줘야 한다. 한 번의 터치라도 하면서 쓰다듬어 줘야 한다. 하지만 절대 한 번의 터치로 끝나지 않는다. 마치 한 번 쓰다듬다 보면 계속해서 그르렁 소리와 함께 쓰담 쓰담해지는 것처럼.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분명 또 쓸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쓰담쓰담 글을 쓰다 보면 어느덧 꽤나 긴 글이 쓰여있다.


내게 온 고양이를 그냥 보내지 말자.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양이는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다가 그가 원할 때 다시 찾아온다. 떠오르는 글감은 기다려도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을 쓰기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할 때 오는 ‘영감’이 있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메모라도 해두자. 그 메모가 긴 문장이 되고 글이 된다.


절대 ‘쓰다듬기’처럼 ‘쓰기’가 쉬울 수는 없다. 붙잡아라. 내 옆에 온 고양이를 쓰다듬듯이, 나에게 온 이야깃거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