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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일 Sep 16. 2015

중국 이야기

중국인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게 된 이유: 홍위병

중국에 문화대혁명 시절 홍위병이라고 있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덩샤오핑을 비판하던 홍위병


여러 근원을  이야기하자면 복잡한데 초공권력을 가진 똘끼 충만한 집단으로 마오쩌뚱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숙청하고 다니던 애들이었다.

얘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즉결심판을 했는데 가령 농부가 비가 안 와서 투덜 되면 그것을 마오주석에 대한 도전적인 한탄의 의미로 해석해서 조리돌림을 하고 때려 죽이는 식이다. 이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에 죽은 인구가 수천만 명으로 마오쩌뚱을 영웅이상의 신급으로 추앙하는 중국 내에서도 이 부분만큼은 문제가 있다고 대다수 인정할 정도로 살벌한 시기였다.

천안문 광장에 모인 홍위병. 마오쩌뚱을 위해 모였지만 마오쩌뚱도 골머리를 앓았다.


이게 더 심각했던 것은 '내부감시'와 '고발제도' 였다.


워낙 홍위병들이 많았고 그 홍위병들이 대체로 어리고 못 배운 친구들이 많아서 (현재로 치면 중2병 환자들과 같아서) 수시로 가족들과 친구들을 고발하는 것이다. 

가령 아빠가 담배를 피우다가 한숨을 쉬어도 마오주석에 대한 불경죄, 엄마가 부엌에서 반찬이 모자라서 짜증을 내도 불경죄.. 심지어 맘에 안 드는 친구가 있으면 아무렇게나 불경죄를 씌우고 조리돌림을 하는 것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공포시대가  계속되었다. 

비유하자면 중세 암흑기의 신성불가침이나 혹은 마녀사냥이 가능한 시대였던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 믿을 수 없고 친구 간에 믿을 수 없는 공포의 시대가 바로 문화대혁명 시절이었다.

여기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고발을 당하지 않을 건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예 빌미를 없애 버리는 것이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셈이다.

함부로 말을 해서도 안되고, 한숨을 쉬어서도 안되고, 책을 읽어서도 안되고, 노래를 불러서도 안 된다. 어떤 것도 다 고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가지는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발을 당했다면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집안이나 학교에서 혹은 법정에서 죄를 뉘우치면 '용서' 또는 '정상참작'이 되어야 하는데 이 시대에는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순간 바로 '조리돌림'이 시작된다. 

인정하면 죽으니 죽기 전까지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인정을 하고 깨끗이 죽는 것보다 끝까지 '아니다'라고 부인하면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중국의 이 불행한 현대사가 지금까지도 (안 좋은 영향으로)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회 전반에 무조건 부인하는 습관이 바로 그러하다.

하긴 '나 위장 전입했다. 나 세금 탈루했다. 어쩔 건데...' 하는 우리 나라의 인사청문회보다는 나은 것 같기는 하다.

누군가 엘리베이터에서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고 있고 손에 담배를 들고 있어도 자기가 핀 것이 아니라고 우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자주 겪은 일이다)

소매치기가 지갑을 훔치다가 딱 걸렸다. 그 자리에서 다시 돌려 주었으니 훔친 것이 아니라고 주장을 한다. 물론 일반인 따위는 바로 칼로 찔러 죽을 수 있다는 잔인함을 가진 웃음과 곁들여서 말이다. (무시무시한 일이지만 이것도 직접 겪은 일이다)

비즈니스를 하는데 지정된 약속을 어긴다. 혹은 치트행위를 한다. 그러다가 걸린다. 증거가 있어도 아니라고 우기던가 혹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 인정을 하면 그것이 자기가 책임을 지어야 하고 그 책임은 곧 사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이 이 비즈니스 애튜티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연전연패했다.

물건이 고장 났다. AS기간이 남았다. 하지만 고객잘못으로 우긴다. 인정을 하면 배상을 해줘야 하니 끝까지 우긴다. (그런데 이 대목은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회자가 되는 어떤 기업이 문득 떠오르는구나....) 

집 임대 계약이 끝나 야진(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어떡하든 이유를 만들어 야진을 안 주던가 혹은 적게 돌려준다. 못 자국 하나 없는 깨끗한 벽에 문제가 있다고 핑계를 대서라도 말이다.

이런 일들은 내 스스로가 중국에서 10년째 살면서 나름 적응을 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울컥하게 된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해결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늘 여유를 갖는 것... (달리 만만디가 아니다)

다른 하나는 작은 거짓이나 치팅은 그냥 웃어 넘길 정도의 대범함을 갖춘 거인이 되는 것....

둘 다 내가 아직은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분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갖추고 싶은 덕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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