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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Jan 09. 2022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스트레스성 공황장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빅포텐셜》에서 숀 아처는 자신의 우울증을 고백한다.



그 후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혼자서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버리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겠어.’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우울증을 겪는 동안 나는 빅포텐셜을 실현하기 위해 내 주변에 든든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전화했고, 먼저 도움을 청했다.




숀처럼, 내 상황과 증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외출을 시도했다. 혼자서는 여전히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남편과 가까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집 앞 편의점, 아파트 옆 동 식으로 매일 조금씩 집에서부터 먼 장소를 목표로 정했다. 늘 선글라스를 착용했고, 꼭 누군가와 동행해야 했지만, 나는 조금씩 현관문을 열고 나설 수 있게 되었다.(일상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가장 큰 공포는 현관문을 여는 그 순간이다)







관점을 바꾸자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커짐을 느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숲을 보려면, 숲의 가장자리로 가야 한다. 숲의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고, 가장자리나 더 높은 위치에서 숲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어야 더 큰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메타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때, 성장과 변화가 가능하다. 인지 왜곡하는 자신조차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때, 자신의 신경정신과적 질환을 인정할 때, 병의 치유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였고 내면의 숲에서 충분히 울고 충분히 슬퍼하였다.




처음 해보는 경험은 내 안의 숨겨진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가진 역할의 가면을 쓰며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되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한결 자유로왔고,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에게 주어졌던 역할들 때문에 스스로 제한점을 두고 선택하지 못했던 삶에 도전하였고 낯선 경험에 당황도 했지만, 만족감이 훨씬 컸다.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공간에 민감한 내가 새로운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두려움을 깨고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사소한 성공은 내 삶의 경계를 확장시켜 주었다. 삶의 모든 순간, 그 중심에 ‘나’를 두기 위해 노력하였고 진실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생을 선택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병원 진료와 약물 처방을 통해 '공황장애'를 스스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그. 러. 나. 머리가 인지하는 것과 마음이 백기를 드는 것은 달랐다. 바닥에 떨어진 나를 스스로 끌어올릴 힘이 생긴 그날, 지인들에게 내 병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괜찮지 않음을 타인에게 말할 수 있었던 그 용기야말로 나에게 찾아온 공황장애에게 졌다는 사실을 깨끗이 인정한 순간이었다.





괜찮지 않다.



애써 괜찮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주위에서 극진한 간호를 받는다고 해서 부상이 바로 낫지 않는다. 하물며 스트레스의 극단에 있는 트라우마로 공황발작을 경험하는 사람이 공감받고 보호를 받는다고 하여 바로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는 없다. 그 단순한 논리를 왜 부정하고 있었을까? 남편이 보살펴주고 있고, 지인들이 걱정해 주니까 나는 괜찮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있었다.



괜찮지 않음을 인정하고,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착한 사람이고 싶었다.



"괜찮아?"


"응, 괜찮아. 남편이 많이 도와줘."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백 번을 공감받고 천 번을 위로받아도 여전히 괜찮지 않았다. 트라우마는 번번이 나를 찾아와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여전히 악몽은 나를 찾아왔고 낯선 사람의 시선은 불안과 긴장을 증폭시켜 교감신경을 활성화했다. 백 미터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은 미친 듯이 나댔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손발부터 저리는 발작 증상은 어김없이 나를 덮쳤다.



더 많은 글, https://blog.naver.com/dool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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