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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 진 Jan 07. 2022

지금 이대로는 안되겠어요,

스트레스성 공황장애, 치유의 글쓰기1


스스로를 상실한 사람은 자존감과 자신감, 자존심마저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를 지킬 한 줌 지푸라기마저 손으로 놓아버린 채, 침대에 누워 흐릿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잘 못 맞춰진 채로 낡아버린 카메라처럼, 반복적으로 바라보던 천장은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 가늠할 수 없도록 늘 같은 색으로 나를 누르는 것 같았다. 







"사람이 방에만 틀어박혀서 깜깜하게 커튼도 다 쳐놓고…….”


혼잣말처럼 들릴 듯 말 듯 말하며 남편이 방에 들어온다. 잠시 눈을 찌푸렸다. 열린 방문 사이로 햇살 한 조각이 들어오는 것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내고 난 후, 남편은 혼자서 맛없는 아침을 먹는다며, 걱정하면서도 답답한 속내를 감추지 못한다. 나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내 말만 한다.


“문 닫아...”

“하아... 배고프면 말해...”


축 처진 남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둠이 좋다. 나의 못난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상황, 기분까지 생각할 기운이 없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지만, 지금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발버둥을 치는지 아무도 모른다. 죽음의 늪에 빠져 헐떡이며 온몸으로 울부짖는 가엾은 내 영혼을.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죽음뿐이다. 삶이란 늘 그런 것이다. 고통의 연속. 그 처절함 속에서 잠깐씩 찬란한 행복이 스칠 뿐.



염세주의의 극단에 서서 나를 돌아본다. 고되다. 이제 충분히 되었다. 이제 쉬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얘기한다. 얼마를 더 버텨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통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어딘가에서 읽었지만, 생의 밑바닥을 넘어 땅을 파고 어둠 속으로 자꾸만 꺼져 들어가는 나에게도 고통의 한계가 오는 걸까... 이게 끝이겠지 싶다가도 계속해서 복병처럼 숨어 있던 새로운 상황들이 나를 습격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몸무게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8kg이 빠졌고, 누워만 있으니 근육이 사라지고 온몸에 기운이 없어졌다. 팔과 다리에 알 수 없는 멍이 수십 개가 생겼다. 그럴만한 에너지원이 없는 것 같은데도 하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도대체 이 많은 양의 피를 어디서 생산해 내는 걸까) 죽음의 신이 나에게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렇게 몇 달을 좀비처럼 가만히 ‘멈춰진 시간’ 속을 헤맸다.






생의 의지를 잃은 채 무심히 5개월이 흘렀다. 나의 시간은 멈추었지만 세상의 시계는 어느새 두 계절이 지나갔다.


뒤늦게 들은 말간 여배우의 죽음은 나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누군가가 생을 저버린 이야기는 온몸을 뚫고 단번에 영혼에 박혔다.


‘정말 원하는 것이 죽음이니? 정말 삶에 어떤 미련도, 여한도 없니? 지금 죽음을 택하려는 것은 도망치는 게 아니니? 주체적으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선택하지도 못한 삶인데, 괜찮니?'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아 보이는데. 다들 잘만 사는데, 나는 왜 그럴까?’


아니다. 모두가 아프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자신만의 아픔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내지 않거나 애써 자기 합리화와 타인 비난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매 순간 백조처럼 발을 휘저으며 노력하고 있었다. 삶은 그런 것이더라. 그래서 나에게 잠시 멈추고 쉬어가며 나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 ‘뜻밖의 질병’과의 동행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엄마는 언제까지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고사리 손으로 삐뚤게 쓴 편지에는 “엄마, 아프지 마요, 이제 말 잘 들을게요. 사랑해요”라고 쓰여있다. 아내의 병수발과 집안일, 육아까지 혼자서 해내고 있는 남편이 지고 있는 짐의 무게를 알고 있다. 그의 지친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일을 혼자서는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공황장애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가 처한 상황을 바꿔야만 했다.




-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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