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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우 Jul 12. 2018

정체성

졸업앨범

아들 하준이가 초등학교 졸업앨범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전날인 주일에 급하게 헤어컷을 해야 해서 미용실 마지막 손님으로 부랴부랴 도착했다. 깔끔하게 신경써주신 미용사분이 감사하다. 아들의 졸업앨범 사진을 찍는다고 하니 알아서 꼼꼼하게 정리해 주신 것 같다.

 교회 소풍을 온전히 즐기고 형들과 축구까지 한 다음 발목을 잠시 다친 것 외에는 아주 훌륭한 주일이었다고 자찬하면서 하준이는 일기를 쓰고 드디어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 되었다.

 생업에 바쁜 나와 아내는 아들이 앨범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저녁 늦게 퇴근을 하고 와서야 하준이의 졸업 앨범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하준아. 오늘 졸업 사진 찍는 날이었는데 잘했어?”
 “응. 잘했어.”
 “그래. 별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고?”

 늘 그렇듯이 ‘그냥 그랬지 뭐~’ 라는 식의 평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하준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앞으로 와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을 소개할 만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거든?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야구방망이, 글러브, 축구화, 축구복이나 악기를 가져왔더라고.”
 “그래? 하준이는 뭘 가져갔는데?”
 “나? 뭘 가져갔을 것 같아?”
 “올~~! 모르겠는데?”
 
 한 참 뜸을 들였다.  
 “야, 궁금하다. 얼른 말해줘~”
 “나는 성경책 가져갔지.”
 “어? 성경책? 멋진데~~!”
 “응, 그게 나를 표현하는 거 같아서 가져갔지.”

 그 말이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감동이 되는지 모르겠다.

 “우와. 대박인데 우리 아들... 그래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어?”
 내가 더 흥분한 것 같다.
 
 “다른 친구들처럼 책상 앞에 세워 놓고서 뒤에 내가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지.”
 주방에서 듣고 있던 아내도 이쪽으로 왔다. 참다못해 질문까지 한다.

 “진짜 멋지다. 우리 아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데.”
 “그냥 나를 소개하는 것이 성경책 같아서 그걸 가져갔지 뭐.”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하는 하준이다.
 아내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고, 하트 눈을 아들을 향해 발사했다.
 그렇게 기쁜지 알 수가 없었다.

 세상 모든 자녀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겠지만, 유달리 하준이가 멋지게 보이는 것은 우리 부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 줄 수 있는 것은 수도 없다. 돈, 명예, 건강, 가치관, 유산 등등...

 나와 아내는 그 모든 것보다 다른 중요한 것을 물려주고 싶다.
 나와 아내가 먼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신앙을 굳건히 지켜가는 모습을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기도하는 모습, 성경 읽는 모습, 전도하는 모습, 예배 드리고 찬양하는 모습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내가 잘해서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주님을 나의 자녀들도 알았으면 좋겠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았으면 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크기만큼 내 삶에 주님이 드러나게 살아가느냐를 물을 때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우선순위 제일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엔 변함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자녀들이 나와 아내의 신앙을 넘고 더 깊이 있는 믿음을 가진 자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영적인 사람으로, 늘 깨어있는 사람으로, 깊이 있는 자로써 성장한다면 나와 아내는 이 세상에서 할 일을 이뤄낸 사람이 될 것 같다.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돈, 명예, 건강을 물려주는 것도 소중한 일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제대로 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는 우리 크리스천 부모들의 숙명이다.

 하준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부부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이 기쁨의 마음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고, 아들이 자라서까지 자신의 자녀에게도 증거할 수 있도록 글로 남겨두고 싶었다.

 자녀들의 인생을 책임지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습에 얼마나 감격하셨을지를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감동이 끊이지 않는다.

 자녀의 모습에 우리 부모들은 일희일비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모습은 누구나 똑같다.

 신앙의 가정으로 주님을 가장으로 섬기는 것.
 본이 되는 가정으로 세워지길 기도하는 것.
 찬양이 넘치고 항상 주님을 위해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는 가정이 되는 것.
 이 모든 것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인생들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들이 풍성해져서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간증들이 넘쳐나길 기도한다. 아들의 모습에 나 또한 뒤돌아보게 되고, 항상 나 자신을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향한 내 정체성을 밝히는 사람으로 더 성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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