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연습생으로 1년

완성보다 연습을 믿게 된 해

by 레옹

작년 오늘,
넘사벽처럼 느껴지던 브런치에
네 번째 도전 끝에 작가로 승인받았다.

세 번의 작가 신청 반려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정말로 쓰고 싶은가’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무엇을 쓸까, 낙서라도 쓸까.
아무튼 말로 하지 못한 표현을, 글로는 조금 더 솔직하게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발행 글,
글머리에는 작가 신청서에 썼던 문장을 그대로 옮겼다.

“이제 나는 생일이 필요 없고, 코끼리만 한 키스를 보낼 딸은 없지만
읽고, 듣고, 느끼고, 쓰고, 나누기를 필요로 하는 나를 찾았습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의미였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 남긴 메모였다.

그동안 내가 써온 글들을 돌아보면 어떤 계획에 따라 정리된 결과라기보다 그때그때 나를 통과한 감정과 내 안의 질문에 대한 기록에 가까웠다.

음악을 소개하며 삶의 장면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마틸다처럼, 레옹〉
시와 노랫말, 단편소설을 넘나들며 습작에 가까운 글들을 쌓아 올렸던 〈마틸다처럼, 향기로운 숨결〉
작사를 하며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경험을 처음으로 깊게 배웠던 〈레옹의 콜라보 – 노래를 선물합니다〉
사랑을 이해하고 싶어서, 혹은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써 내려갔던 〈꽁냥사랑학〉 조금은 과감했던 〈꽁냥으로 세계정복〉
과거의 첫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보았던 〈첫사랑〉
삶의 끈을 놓고 싶었던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게 했던 〈레옹의 해피셀〉
그리고 솔직히 말해 별로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써야 할 것 같았던 〈줄 타는 레옹〉까지.
최근에는 조금 더 깊은 사유를 위해 〈빛의 시학 – 공동실험실〉이라는 이름으로 나 자신을 실험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언젠가 나를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레옹의 가사집〉을 천천히 만들어가고 있다.

이 모든 글들은 형식도, 장르도, 온도도 제각각이지만 돌아보면 하나의 결로 이어져 있다.

나는 언제나 사랑을 이해하고 싶었고, 삶을 놓지 않기 위해 쓰고 있으며, 혼자 견디는 대신 나눌 수 있는 언어를 찾고 있다.







지난 1년은 글을 쓴 시간이라기보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의 접점 속에서 내가 얼마나 변해왔는지를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1월 중순 황보름 작가의 ‘휴남동 서점’이 2025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설 속 영주 씨가 서점을 오픈하며 좋아하는 음악을 트는 모습이 떠 올랐고,
그날부터 나는 음악을 소개하는 [마틸다처럼, 레옹]을 발행했다.
그리고 몇 달 뒤, 소설로만 만나던 황보름 작가의 온라인 독서 모임에 직접 참여하는 시간도 생겼다.

글 벗의 짧지만 밀도 높은 글을 읽고 의도치 않게 시 한 편을 쓰게 된 적이 있다.
그 시는 조악했고, 솔직히 말해 유치했다.
그런데 그 문장은 노랫말이 되어 멜로디를 입고, 다시 내게 돌아왔다.
글이 시가 되고,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다시 관계가 되는 순환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막연하게 품고만 있던 ‘언젠가 내 노랫말을 짓고, 그 노랫말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바람이 그 순간부터 막연한 꿈이 아니라 지금 내가 열중할 수 있는 방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내 첫 콜라보의 출발점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4개월 동안 100 곡이 넘는 노랫말을 썼고 sunoAI로 멜로디를 입혔다.
지금 저장되어 있는 음원만 800개가 넘는다. 이 많은 곡들이 언제 정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몇 곡은 저작권 등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후회했다. 고칠 수 있는 문장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래서 요즘은, 완성보다 연습을 더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은 고칠 수 있는 문장이 더 많다는 쪽이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진다.

녹음이 짙어지던 어느 날 한 작가님의 글을 읽다 고흐의 외로움과 마주했다.
그의 고독이 내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나는 [고흐에게]라는 시를 썼다.
그 이후에 그 작가님의 글 속에서 고흐의 작품을 다시 만났고, 조심스러운 댓글 하나를 남겼다.

고흐는 상상을 그린 화가라기보다, 끝까지 응시한 사람이었다고.

그 엉뚱한 댓글은 논쟁이 되지 않고 대화가 되었다.
그 대화는 나를 원로 시인이 진행하는 시 스터디 자리로 이끌어 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정말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스터디에 참여할 수 없지만 시인의 시선을 잊지 않고, 그들처럼 세상을 바라보려 애쓰고 있다.

시인은 늙지 않는다.
나이와 무관하게 언어 앞에서 계속 떨릴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내게는 큰 위로였다.

얼마 전 구독 작가님의 글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만났다.
나는 세 단어를 적어 보았다.

관조, 여백, 기다림.

서두르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태도.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
결과보다 시간을 신뢰해 보겠다는 다짐.
내가 나를 설명한 세 단어인데, 나를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지난가을, 나는 새로운 창업을 했고 전혀 예상치 않던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나는 잘 지켜보고, 배우며,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단단해질 것이다.
그건 아마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브런치에서 활동하면서 내가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 아닌 경탄이었다.
이곳에는 각자의 리듬으로 우아한 포인을 그려내는 작가님들이 참 많다.
그 곁에서 나는 아직 막춤을 추는 연습생에 가깝다.
동작은 서툴고, 리듬은 자주 엇나간다.
그럼에도 같은 무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많이 배우고,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지나왔다.
우아한 포인의 멋진 작가님들을 알게 된 것만으로 올해는 내게 더없이 좋은 한 해였다.

한 해 동안 자기만의 언어로 춤을 춰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올해를 돌아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충분히 행복했기를,
그리고 내년에도 우아한 포인으로, 혹은 용감한 막춤으로 계속 건 필하시길 바란다.

나는 아직 연습생이다.
오늘도 연습실의 거울 앞에 서 있다.
아직은 막춤에 가깝지만, 언젠가 포인 할 그날을 조용히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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