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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Jun 12. 2020

[심리] 호랑이 그림자를 한 고양이

공황, 오늘도 죽다 살아난 사람들

마음 여린 동생이 공황장애로 1년이나 넘게 힘겨워 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애지 간해서는 손해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 막내가 '남들에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자기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살아왔으리라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 가족인데, 형이 둘이나 있는데도 감춰야 했던데는 형들은 어쩌면 심지 약한 자신 탓으로 돌릴까 싶어 말도 못 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더 아팠다.


공감한다는 일이 꼭 위로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그냥 옆에서 들어준다는 일도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라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도 티 내지 않게 힐끔 표정을 살피는 정도 밖에 하지 못해 좀 더 잘 할 수 있도록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이 참 고맙다.

공포를 몰고 오는 호랑이라기보다 알고 보면 고양이처럼 길들일 수 있는 공황장애는 다양한 증상이 있으며 효과적인 심리적 대처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황장애가 생소한 사람에게는 '나도?'라는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한다. 10명 중에 3명이 직면할 수 있는 흔한 질환이다. 여기에 국제 진단 기준인 <DSM-5>에서 제시하는 공황장애를 자세히 소개한다. 진단 기준표가 앞쪽에 있었으면 비교하며 읽기 수월했을 텐데 편집이 좀 아쉽다.

  

"사람이기 때문에 연약하다는걸, 공황발작으로 드러난 평범함, 즉 인간으로서의 선천적인 나약함은 굴욕이 아니라는 걸 배워야 한다. 버거운 상화에서는 공황 상태에 빠지거나 무기력함을 느끼는 게 얼마나 인간적인지 인정해야 한다." p47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내 탓이 아니라는 걸 그런 일이 무력함이지 무능함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데 우리는 꽤 어려워한다는 걸 생각한다. 또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까지'와 '고작 그 정도를 가지고' 사이의 대립이 이보다 첨예할 순 없을 것 같다. (p 54)"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그저 예민한 수준으로 치부하면서 별생각 없이 던지는 말에 누구는 콧방귀를 뀌고 또 누구는 심장에 구멍이 날 정도로 아파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난 얼마나 많은 구멍을 내는 사람이었을까 반성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공황장애가 치료가 쉽다는 안도감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위태위태한 '점화'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하게 된다. 누구라도 심지는 있는 것이고 불이 당겨지는 순간 각성된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 심지에 누구라도 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위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정했든 아니면 무심하게 든 점화는 한마디면 족하다는 게 무섭다.

  

"진화의 힘이고 자연의 섭리이며 신체의 순리라는 것을 한 톨의 의심도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 납득하고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견디는 힘'이 생긴다." p82


그렇다. 그렇게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시간은 고작 10분이면 족하다. 충분히 버틸만한 시간이라는 걸 알지만 그게 또 당사자에겐 끝나지 않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다만 동생도 그럴 수 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공황장애에 덧붙여 유사하거나 혹은 상반되는 그래서 공황장애를 활활 타오르게 만들 수 있는 심리장애의 세 범주(정신장애, 성격장애, 정서장애)를 비교 설명하고 있는데 아주 유익하다. 이중성격장애를 겪는 사람 중 공황장애 발병률이 50%나 된다니 놀랍다.

아, 나는 C형 성격장애에 강박적 성격이었던가! 자주 화내고 다그치는 일들로 가족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종종 딸에게 "아빤 왜 그렇게 피해의식이 많아?"라는 말을 듣는다. 점점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말없이 있음으로써 성가시게 하지 않고, 바라지 않음으로써 화나게 하지 않고. 야무지게 도움으로써 부모를 흡족하게 하면 자신의 존재가 조금은 쓸모 있다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 것이다." p144


혹시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것들을 원했던 걸까. 마치 투명 인간처럼 있으되 존재감 없는 그래서 신경 쓰는 일이 없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화내고 다그치는 일들로 아이들의 심리가 저리 될까 싶어서.

불안한데 불안한 이유를 모를 때 더욱 불안한 이 미치고 팔짝 뛸 감정의 널뛰기를 이야기해봤자 이해하기 어려워 남들에겐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동생은 마음을 이야기해봤자 되려 징징댄다고 형들이 눈살 찌푸릴까 더 불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 먹먹했다.


이 책은 머리로 이해하기 그리고 가슴으로 깨닫기 그리고 감정, 생각, 행동의 자연스러운 변화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폭넓게 이해시켜주는 도슨트 같다. 또 다양하고 현실감 넘치는 상황 설명은 상상하기 쉽다. 공황장애를 질병적인 개념으로 접근한다기 보다 일상에서 누구나 언제든 갑작스럽게 겪게 되는 감정으로 쉽게 풀어낸다.


공황장애를 현명하게 대하는 방법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마음 자세로 10분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을 알려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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