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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목 Jul 01. 2020

[고전] 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기담이라는 제목이 우리 과거의 문화 속 가부장적 가족문화의 병폐나 은근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를 다뤘겠거니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읽는 즉시 빠져든다는 띠지의 말은 확실히 그랬다.


시작부터 '쥐뿔'내지는 '쥐좇'에서 시작한 구전을 야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로 해석하고 나아가 심리학적인 결론에 이르는 해괴한 장르적 이야기로 풀어 나가는 내용에서 헤어 나오기란 쉽지 않다.


"쥐뿔도 모른다"라는 말이 이처럼 예사스럽지 않은 이야기였다며 단순히 해학적으로만 피식거리고 넘길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 시스템에서 뚝 떨어진 권력을 등에 업고도 문제의 핵심을 대놓고 피하기만 했던 지질한 양반네의 모습은 단순히 "그땐 다 그랬어"라는 시대 남성우월적 지위에 대한 인정으로 얼렁뚱땅 넘기다 보니 지금까지 이 모양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남성이라는 혹은 지아비라는 지위로 여성의 아랫도리를 벗긴 채 뜨거운 가마솥 위로 올라가 쭈그려 앉힐 수 있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 작가도 말했지만 이런 짓거리들이 이야기니까 가능하지라는 건 천만의 말씀 만만에 콩떡일지 모른다. 오히려 현실에서 더하면 더했을 게 뻔하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고전 혹은 구전되는 설화 같은 이야기에서 드러나 있는 차별이나 불평등같이 묵과되거나 넘겨 왔던 다양한 일들이 이야기 속에서 담겨 있었지만 지나쳤던 것들을 드러내 짚어주니 독자는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홍길동 그놈이 왜 그리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려 애썼는지, 춘향이가 왜 기를 쓰고 지를 버리지 말라고 각서까지 받으려 애썼는지. 이야기마다 흥미로우며 충격적이다.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건 단 한편도 없다.

'열녀함양박씨전'에서 "어찌 과부라고 정욕이 없겠느냐"라며 이제는 그마저도 사그라져 더 이상 엽전을 굴리지 않는다며 눈물짓는 노모의 탄식에서 대만 작가 천자오루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중 한 문장인 "왜 장애인이라고 성욕이 없겠는가"라고 읽혔다. 심지어 동전조차 굴릴 수 없는 신체를 가진 장애인도 있다. 그들은 무얼 닳아 없애며 긴긴밤을 보내야 할까 싶었다. 정초 보신각이 내는 종소리 마냥 가슴에서 큰 소리로 뎅뎅거렸다.

가문을 위해 조작된 열녀를 만들어 내는 문화가 허용되는 그래서 자연히 만들어지는 무서운 습성 아비투스(habitus)는 그렇게 누군가는 움츠러들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고 수절을 위해 목을 매다는 열녀 이야기를 통해 설명한다. 그 상징 폭력은 예나 지금이나 무서울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알려주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길동 이놈도 역시 남자였던 것이다." p102


빵 터졌다. 작가의 탄식 어린 이 한 문장에 많은 감정이 담겨 있으리라는 짐작은 굳이 내용을 안 봐도 알만 해 한참을 웃었다. 적서 차별로 회자되는 '호부호형'에 대한 길동의 한이 기득권을 가진 놈들의 갑질이고 모자란 밥그릇 지키는 방편이 능력과 상관없이 차별로 계급을 만드는 문제가 자본주의의 병폐가 아니라 남성우월주의의 꼼수였다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신기하게 새삼스럽기도 하다. 여하튼 읽으면 읽을수록 속 터지고 답답한 불평등이나 차별의 퍼레이드인데 또 그게 술술 읽히고 재밌고 흥미롭다.

드라마에서나 보는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낙하산이나 줄타기로 승진의 기회를 잡고 탐한 자리에 앉자마자 권력을 행사하는 인간 군상이 벽성선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생긴 황 부인의 이야기가 찰떡처럼 맞아떨어진다. 과연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책은 이야기 속 문제의 본질을 비틀고 꼬아서 억지로 다른 시선으로 보게끔 만드는 게 아니라 당연함 속에 숨겨왔던 억압이나 불평등, 차별에 대한 본질이 있었음을 일깨워주는 기막힌 책이다. 그래서 기담일지도. 여하튼 한번 잡으면 결코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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