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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Oct 09. 2023

<화란> 한국이 싫어서 네덜란드로 떠나려던 소년

300만원 때문에 얽힌 두 남자의 비극: 나와는 맞지 않았던 불행서사


<화란>은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공식 초청되며 각본과 연출로 데뷔한 김창훈 감독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연이어 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에 공식 초청되어 개봉 전 관객과 만났다. 송중기 배우가 시나리오에 매료되어 노개런티로 출연, 제작까지 맡으며 애정을 보였던 작품이다. 주연 배우와 감독이 모두 신인이라 송중기의 책임감이 남달랐음이 느껴진다.     


개런티를 받으면 영화의 신선함이 사라질 것 같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나서 자처한 일이다. 송중기는 이제는 중견 배우의 노련미로 눅진하고 찐득한 조직의 이인자 역할을 맡아 거침없는 연기를 펼쳤다. 피로감 쌓인 치건의 얼굴과 벗어나고 싶은 억눌린 자아로 승화했다.     


재앙과 난리가 가득한 화란(禍亂)     

십 대 연규(홍사빈)는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친아버지와 폭력적인 새아버지, 생활고에 시달려 무기력해진 엄마(박보경)와 네덜란드로 떠나기 위해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네덜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사는 모습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빈부, 학력 등에 차별이 심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곳이라면 뭐라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새아버지의 만연한 폭력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복동생 하얀(김형서)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아니라도 술 취한 새아버지에게 맞을 때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둘은 티격태격하며 막말을 서슴없이 퍼붓지만 서로를 향한 진심을 품고 있다. 그러던 중 큰 사건이 벌어진다. 학교에서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한 하얀 대신 돌을 내리쳐 응징을 가한 연규. 합의금 300만 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엄마, 새아버지 모두 손쓸 방법도 해결할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런 연규를 우연히 본 치건은 아무런 조건 없이 300만 원을 건넨다. 어릴 적 호수에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기억이 떠올랐던 걸까. 희망 없는 도시에서 아등바등하는 절망에 연민을 느꼈던 걸까. 이를 계기로 연규를 치건을 형, 또는 아버지처럼 따르며 지하 세계로 발 들이게 된다. 치건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유대감이 싫지 않았다. 매운탕을 직접 끓여 생선 먹는 법을 가르쳐 줄 정도로 가까워진다. 이미 큰형님(김종수)을 만났을 때 빈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으니까.     

치건은 조직의 중간 보스로 아물지 않고 버틴 기묘한 상처와 녹록지 않은 세월을 나이테처럼 몸에 지닌 인물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어울리는 상처 받은 영혼을 지녔다. 조직의 도구로만 살아왔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늪에 빠진 듯 희망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자라지 않고 멈춰버린 소년 같은 남자이자, 살기 위해 아이를 착취하는 비겁한 어른이다.     


어린 연규가 무서우리만큼 성장할수록 치건은 영양분을 빼앗겨 말라가는 고목 같다. 점점 더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착취하는 조직은 정치권과 결탁해 성장하려 하고, 더 큰 일에 휘말리게 된다. 둘은 함께 할수록 합의점을 이루지 못하고 뒤틀리며 엇나간다.     


출구 없는 닫힌 도시, 희망은 없나     

영화는 폭력적인 환경과 뒤틀린 어른들이 한 소년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과 휩쓸린 선택을 다루고 있다. 지옥 같은 명안시에서 나고 자란 두 남자가 우연히 가까워지며 서로의 상처를 알아차리는 이야기다. 과정이 위태롭고 행복한 결말이 아닐 줄 알면서도 잔혹한 세계를 걸어가며 위험한 상황이 펼쳐지는 정통 누아르 장르다. 보고 나면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출구 없는 곳에 떨어져 절망으로 가득한 마음을 갖게 된다.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하고 볕이 들지 않는 지하실까지 파고드는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은 듯 염세적이다. <파수꾼>, <거인>이 떠오르는 아픈 상처를 다룬 십 대를 주인공으로 한다.     


치건과 연규 둘은 많이 닮아 있었다. 한 번도 명안시 밖을 나가 본 적 없는 토박이로 가족의 불화, 얼굴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롤모델이 되어야 할 아버지도 부재다. 제대로 된 어른을 보고 자란 적도 없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구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발목 잡혀 허우적거릴수록 더욱 파고드는 덫에 체념한 상태다. 치건과 연규 모두 불행한 삶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연규의 마지막 행동을 통해 실낱같은 희망을 선사하려 했다. 지옥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연쇄적인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는 존재, 괴물의 탄생을 미성년으로 두어 의미심장하다. 300만 원으로 시작된 인연과 불행 서사는 보는 이에 따라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읽히기 때문일 거다. 영화는 시종일관 둘이 몸담은 도시, 조직, 가족은 음울하게 다룬다.      


송중기의 거친 분위기, 신예 홍사빈의 처절한 연기, 가수의 이미지를 버린 김형서의 변신에 반가움이 크지만 관객에게 공감을 일으킬지는 미지수다. 15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지만 폭력과 잔인함 수위가 꽤 세다. 그로인한 피로도는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다.          


https://m.blog.naver.com/doona90/22323204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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