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Jan 20. 2024

<시민덕희> 보이스피싱범 때려 잡은 소시민 실화 영화

실제 이야기는 더..씁쓸..

<시민덕희>는 화성에서 일어났던 유명 보이스피싱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보이스피싱은 이제 남녀노소 가리지 않으며 꾸준히 진화하며 더욱 치밀해졌다. 보이스피싱은 무능하고 어리석어서 당하는 게 아니다. 이 때문에 언제 어디서, 나도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절박한 심리를 악용하며 상황을 파고들기에 누구라도 걸려들고야 만다.      


최근 영화 <보이스>가 느슨해진 보이스피싱 범죄에 경각심을 세워졌다면, <시민덕희>는 여전하고 보이스피싱의 고도화된 방법을 소개한다. 총책, 본거지 등은 사건 당사자부터 시작해 기자, 경찰학자, 범죄분석가 등을 만나 꼼꼼하게 고증된 결과다. 취재, 인터뷰, 자료조사를 통해 디테일을 더하고 사실감을 높였으며 마지막으로 상상력을 더했다.     


그놈에게 걸려 온 SOS 전화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어느 날 주거래은행에서 손대리(공명)라는 남성의 전화가 걸려 온다. 마침 김덕희(라미란)는 세탁소 화재로 대출 상품을 알아보던 때라 합리적인 상품 제안에 귀가 솔깃했다. 손대리는 대출에 필요하다며 이런저런 수수료를 8차례나 요구했고, 덕희는 의심 없이 돈을 보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곧 연락 두절. 급히 거래 은행을 찾아서야 이 모든 상황이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차리지만 이미 늦어버린 때였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는 했으나 매번 꼬리 자르고 도망가는 수법에 신물 난 박형사(박병은)는 안타깝지만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수사조차 성립되지 않는 구조에 이미 포기한 상태라고 해야 맞겠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치밀한 익명성으로 실체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지치게 만든다. 아무리 한국에서 컴퓨터를 두드리고 발도 뛰어 수소문한다고 해도 본거지를 모른다면 말짱 꽝인 지능범죄에 속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하루아침에 이 두 아이와 거리로 나앉게 된 덕희는 망연자실하게 된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기적처럼 손대리의 전화가 다시 걸려 온다. 내용인즉슨 황당하게도 제보하고 싶다는 은밀한 구조요청이었다. 자신을 고액 아르바이트 공고에 속은 대학생이라 소개한 손대리는 중국에 납치되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한다. 보이스피싱도 전화도 어쩔 수 없었다며 제발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처음에는 적반하장이라며 화냈던 덕희는 이성을 찾고 손대리와 공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절실한 상황에도 박형사는 명백한 증거나 본거지 주소가 없으면 수사조차 할 수 없다며 포기해 버려 실망감을 안긴다.      

어쩔 수 없이 덕희는 직장 동료와 직접 본거지를 추적해 총책을 잡을 계획을 세운다. 조선족 출신 봉림(염혜란)의 통역과 아이돌 홈마(홈마스터)가 취미인 숙자(장윤주)의 고화질 카메라와 함께 다소 무모한 모험을 떠나게 된다. 과연 덕희의 말도 안 되는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지렁이도 밝으면 꿈틀, 내돈내찾 추적극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시민덕희>는 단역부터 조연, 주연으로 차근차근 올라온 라미란의 이름만으로 믿고 보는 영화다. 억척스러운 대한민국 아줌마하면 떠오르는 대세 라미란은 엄마, 아줌마, 언니, 친구 등으로 친근하게 스며든 배우다. 흡인력 있는 표정과 자연스러운 연기는 또 한 번 중년 여성 캐릭터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 일조했다.     


라미란을 중심으로 흥행 콘텐츠에 빠지지 않는 씬스틸러 염혜란과 연기력을 인정받은 장윤주가 지원군이 되어준다. 양옆을 든든히 지키고 있어 극한 불행이 희망이 될 에너지를 선사한다. 칭다오에서 만난 염혜란의 동생 역의 안은진은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활력을 불어 넣는다. 또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인물 총책을 맡은 이무생의 변신은 섬뜩함을 넘어 놀라움을 안긴다.     


영화는 간혹 피식거리게 만드는 유머가 끼어들지만 진중한 톤으로 보이스피싱의 실체에 다가간다. 속도감 있는 전개로 피해의 전말뿐만 아니라, 실체를 쉽게 알 수 없는 조직에 대해 자세한 설명해 준다.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아 보였지만 통쾌 유쾌한 추적 과정은 앓던 이가 빠지듯 시원한 대리만족감을 선사한다.      

영화 <시민덕희> 스틸컷

특히 취업 사기당해 타국까지 끌려온 청년의 아픔까지 귀담아듣는다.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낱낱이 공개한다. 이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중국에 발 묶이게 되는데,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더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삼엄한 감시망은 물론, 한국에 있는 가족까지 위협하는 잔인한 상황. 미래도 없이 노예처럼 하루하루 일하게 된 사연도 전해진다.      


덕희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 모은 재산을 날릴 위기를 맞는다. 바닥까지 떨어졌지만 좌절하지 않고 긍정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마음 근육이 단단한 회복탄력성이 좋은 덕희를 만나 기분 좋게 극장을 나설 수 있게 한다. 영화 속 그 어떤 히어로보다도 일상의 숨은 영웅의 등장에 찡한 감동도 배가된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소시민이 또 다른 소시민을 구하는 이야기야말로 어떠한 영웅서사보다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시민덕희 '라미란'인터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