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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9월 5일: 위험한 특종> 시청률과 윤리 사이에서

by 장혜령

영화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를 다루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2005)과 소재를 공유한다. 두 영화의 차이점은 <뮌헨>은 올림픽 참사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과정을 다루고 있고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22시간의 긴박한 과정을 밀도 있게 압축했다는 데 있다. 초유의 인질 테러 극을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시청하게 된 과정, 시청률(돈, 광고)과 미디어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언론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올림픽에서 인질극이?

1972년 제20회 뮌헨 올림픽. 올림픽 생중계에 처음으로 도전한 ABC 방송국은 선수촌과 가까운 곳에 자체 스튜디오를 세우고 최신 장비로 무장해 중계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선수촌에서 울린 몇 발의 총성이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해 취재에 나선다.


알고 보니 무장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검은 9월단) 단체가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해 11명을 인질로 잡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들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올림픽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유는 이스라엘에 구금된 팔레스타인 포로 200여 명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함이었다.


이 상황을 단독 생방송을 결정해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을 그대로 전하게 된다. 시청률과 신뢰성을 단숨에 얻으며 승승장구하게 되나 필연적인 부작용이 따랐다. 테러단체도 ABC 특종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게 끔 정보를 제공했고, 경찰의 계획과 움직임을 파악할 빌미를 준 셈인 것이다.


ABC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방송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인질을 끌고 공항까지 간 테러단체는 돌연 의도를 바꿔 혼란함은 극도로 치닫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공항으로 따라간 취재진은 전원 구출이란 소식에 안도하지만, 이내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스포츠국이 전한 22시간의 생방송

영화는 당시 최초로 올림픽 위성 동시 생중계에 도전한 ABC 방송국 스포츠팀의 고군분투를 전하며 원본 영상을 더해 극도의 사실감을 준다. 핸드폰 대신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받는 모습뿐만 아니라, 라디오, 전화 등 다양한 통신 도구로 정보를 실어 나르는 상황을 재현했다. 언어라는 또 하나의 장벽을 뚫기 위해 긴박한 현장의 사투를 보여준다. 사건 직후 ABC 방송국이 설치한 라이브 카메라가 유일한 방송국이 되면서 현장 분위기를 리얼타임으로 보여주고자 한 의도도 전한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인 만큼. 당황스럽고 혼란한 상황은 물론, 관제실 각자의 윤리적 가치 판단마저 흔들리는 모습은 공감을 높인다. 사건을 벌인 주체를 섣불리 테러리스트라 규정할 경우의 위험성과 인질이 사망하는 과정을 지켜봐야만 하는 가족의 심정을 고민하는 흔적도 기록되어 있다.


특히 ‘전원 구출’이란 확인되지 않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려는 욕망은 두 군데 이상 확실한 제보여야 한다는 규정을 깨버리기도 한다. 최초 보도라는 경쟁심에 휘말려 이를 그대로 내보냈고 방송사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뼈저린 아픔으로 얻는 것도 있다. 미디어 보도 방식도 중대한 전환점을 맞는다. 뉴스 보도가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확대될 수 있음을 주목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기술적인 측면과 윤리적 측면, 직업적인 딜레마 사이에서 역사적 파장까지 아우르는 저널리즘 영역 확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반복되는 오보가 만들어지는 과정

한편,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 세월호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생중계로 침몰하는 배를 지켜봤고 한때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듣고 안도했었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에 한시름 놨었지만. 얼마 후 참담한 상황을 접해야 했던 아픈 역사와 맞물리는 점이 있다.


당시 신속히 정정될 수 없었던 이유가‘ 지역 언론과 중앙언론의 불평등한 관계’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전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이오현 교수와 김철원(박사 과정) 광주MBC 기자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최근 언론과학연구에 게재한 논문 《'지역'이 바라본 세월호 보도 참사 : 목포MBC 기자들의 세월호 참사 뉴스 생산의 경험과 회고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목포 MBC가 서울 MBC에 여러 차례 오보임을 전달했지만 묵살당했으며, 타 언론사의 정정 이후 오보를 바로잡았다고 전한다.


각종 전자기기와 SNS로 신속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도 실수는 왜 반복되는걸까. 영화 속에서는 서독의 의도된 오보, 정치적 함의라는 설정으로 그려진다.


서독은 과거 나치즘으로 박제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싶었다. 새롭고 진보된 독일 사회를 홍보하기 위해 올림픽을 적극 이용했다. 올림픽은 개최국의 최신 기술, 국가 경쟁력, 문화 수준을 공표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 예노 2018년 평창동계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ICT 기술을 스포츠에 적극 적용하며 국가 브랜드력을 올렸다.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는 그린워싱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기후변화에 발맞춰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했다.


이렇듯 ‘세계 평화’를 주제로 건 뮌헨 올림픽은 과거 역사를 지우려던 서독의 계획 중 일부였다. 보안보다 이미지 메이킹이 우선이었던 서독의 의도가 만든 인재(人災)였을지 모른다.

서독은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선수단을 포함하면서 보안과 치안을 최소한으로 했다. 제복하면 떠오르는 나치즘, 무장경찰은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했다. 허술한 경계는 방송국 직원을 선수로 위장해 잠입하는 것도 쉬울 만큼 느슨했다. 같은 시각 이스라엘 선수촌에서 총소리와 인질 대치가 일어나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낮은 담장 하나를 둔 다른 선수촌에서는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담장 사이를 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ABC의 단독 생방송과 별개로 올림픽 방송은 계속되었고 전 세계인이 지켜봤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옮은 가치판단 무엇일까. 여전히 자극적인 보도로 시청률과 조회수를 올리는 데 혈안이 된 상황 속 보도할 가치 있는 뉴스는 무엇인가 고민하게 만든다. 현대는 24시간 유튜브를 통해 라이브 스트리밍이 가능하고 AI로 가짜 뉴스로 자극적인 여론 확산 및 대중 선동도 쉬워졌다. 대중이 팩트를 접하는 과정, 시선, 소비하는 방식도 예전과 달라졌다. 하지만 한 사건을 편견 없이 전달하는 관점은 완벽하지 않고,여전히 어렵고 조심스럽다. 50여 년 전 사건이지만 관람 내내 내 여전히 내면의 복잡한 질문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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