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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사유리> 헉, 우리 할머니가 달라졌어요!

by 장혜령

영혼까지 끌어모아 꿈에 그리던 집으로 이사 온 카미키 가족. 가장 아키오(카지와라 젠)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네기시 토시에)와 아버지(키타로)를 모시고 삼대가 사는 집을 실현하게 되어 들떴다. 장녀 케이코(모리타 코코로), 중3 장남 노리오(미나미데 료카), 막내 슌(이노마타 레이오)과 아내 마사코(우라베 후사코)와 함께 사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야근 좀 하고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마다 이상한 소리와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가족들이 차례대로 죽음을 맞아 노리오는 할머니와 단둘만 남게 된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절망감과 무기력에 빠지지만.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뜻밖에 각성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오랫동안 태극권 사범이었던 할머니는 위기를 기회로 삼고 살아남기 위해 최후의 반격을 준비한다.


잊혀진 J 호러의 신박한 변주

<사유리>는 ‘오시키리 렌스케’ 작가의 만화 <사유리>를 바탕으로 한다. <사다코 대 카야코>의 ‘시라이시 코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처럼 초반 30여 분만 잘 버티면 놀라운 반전과 병맛 복합장르의 변주가 시작된다. 기묘한 B급 장르 설정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부른다. 골 때리는 스타일로 풀어내고 있지만 건강한 메시지가 강렬하다.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뚜렷한 주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1 막은 전형적인 J 호러이자 하우스 호러다. 새집에 이사 온 대가족이 지박령의 분노로 하나씩 죽어 나간다. 원인을 알 수 없어 허둥지둥거리다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다. 난데없이 2막부터 복수혈전이 시작된다. 귀신과 싸우는 할머니의 존재감이 하늘을 찌른다.


후반은 할머니의 전사를 풀며 코믹하게 해결해 나간다. 그래서일까. 2 막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막 나가는 전개처럼 보이지만 분명 개연성이 존재하고, 혼령의 지배받기 바빴던 피동적 인간이 주체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간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과거를 기억해 낸 할머니는 손자의 심신을 단련시킨다. 흐트러진 정신은 헛것을 보고 헛소리가 들려 서서히 두려움을 자라게 만든다. 때문에 잘 먹고 잘 자면 건강한 육체와 정신력이 장착되고, 살고자 버티면 못 이길 게 없다는 긍정의 힘을 전파한다.


그들의 성장담이 통쾌하기까지 하다. 산 자의 생명력을 죽은 자가 제일 무서워한다는 논리다. 대출금을 끼고 무리해서 집을 산 아버지의 걱정, 아들 내외에게 얹혀산다는 부담이 큰 할아버지, 집의 기운에 눌려 악몽에 시달렸던 첫째와 막내,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장이 된 엄마의 근심은 사유리가 원하는 것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원혼의 가족까지 찾아내 한을 푸는 것까지 깔끔하게 해결한다.


괴랄발랄 콘셉트, 젠지(Genz) 세대 공략

영화는 집, 소녀, 원혼이라는 J 호러 저주의 기본 틀을 비틀어 버리며 장르 결합을 시도한다. 익숙한 J 호러 방식을 쓴 포장지를 벗기면 전혀 다른 내용물이 들어 있는 셈. 90년대부터 시작된 J 호러는 비디오(링), 인터넷(회로), 휴대폰(착신아리) 등 물건을 타고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되었다. 여성 귀신이 등장하고 안전한 집이 공포의 근원이 되며 탈출 불가능한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원혼은 그냥 서 있을 뿐인데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빛이 닿지 않는 후미진 구석이나 어두운 틈에서 뭘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 있다. 관객은 캐릭터가 알지 못하는 원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서스펜스가 발생하고 공포감이 유발된다. 서양의 점프 스케어나 신체 훼손 이미지나 기괴한 음향 효과와는 달리 심리적 공포를 이끌어 내는 게 포인트다.


에도시대 유행한 전통극 가부키, 노극을 변형한 괴담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짝 엿볼 수 있다. 누가 와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는 소문은 부풀려져 괴담으로 정착된다. 연속적으로 괴상한 일들이 벌어지면 주인공은 적극적으로 원혼이 원하는 게 뭔지 찾게 되고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사유리>는 홍보 방식도 새로웠다. 디지털 트렌드에 익숙한 세대를 공략한 방식이다. 관크 허용 시사회를 열어 젠지(Genz) 세대의 열띤 환호를 끌어냈다. 영화 상영 중 오픈 채팅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상을 나누고 옆 사람과 대화도 가능한 관람을 유도했다. 극장에서는 반드시 침묵해야 한다는 엄숙함과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신박한 사고방식이다. 이와 같은 장르 변형이나 적극적인 콜라보를 통해 틀을 깨는 시도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이해를 돕는 한 축으로 해석된다.


한편, 원작자 ‘오시키리 렌스케’과 감독 ‘사라이 코지’가 4월 18일, 할머니 역의 ‘네기시 토시에’, 중3 손자 역의 ‘미나미데 료카’가 4월 25일 내한해 한국 관객과 직접 소통할 예정이다. 영화는 2024년 8월 23일 일본 개봉 당시 제작비 7배의 수익을 거두며 32개국에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에서는 어떠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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