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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겹경사 홍상수의 변화

by 장혜령

3년 사귄 여자친구 준희(강소이)의 집까지 바래다주던 동화(하성국)는 처음으로 준희 부모님께 인사드리게 되었다. 아버지(권해효)가 할머니를 위해 손수 지었다는 집 건축 과정을 들으니 흥미가 생겨 구경만 하고 가려던 찰나였다. 주차장 입구에서 만난 아버지와 중고차 이야기로 첫 만남의 서먹함을 깨우게 된다.


집 안으로 들어가 가족사를 전해 듣는 것과 동시에 남자친구의 자질을 의심받는 듯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이야기가 무르익자 자리를 옮겨 뒷산에 올라 막걸리를 마시던 중 잠시 본가에 온 언니 능희(박미소)와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된다. 식후 세 사람은 근처 절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돌아온다.

잠시만 있다 가려고 했는데 벌써 저녁때다. 아버지가 키우던 닭을 직접 잡아 요리한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귀한 술도 등장했다. 준희 어머니(조윤희)까지 합세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워 나갔다. 그러던 중 2차 호구조사가 시작되며 술 테스트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화는 농익어가지만 사사건건 변호사 아버지를 운운하던 능희의 긁힘에 동화는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실연을 하게 된다. 순식간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정적과 함께 싸늘해지고, 서둘러 식사 자리를 피해 잠자리에 들게 된다. 새벽녘에 잠시 깬 동화는 뒷산에 올라 무언가를 떠올리고, 동이 트자마자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서울로 귀가하게 된다.


홍상수식 화법의 변주

<그 자연이 네게 뭐하고 하니>는 어느 순간부터 제작,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음악까지 담당하게 된 홍상수 감독의 33번째 장편 영화다. 영화는 제7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되었으며, 감독은 제78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다작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감독은 또다시 카메라를 직접 들고 관객에게 말을 건다. 큰 긴장감이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느슨한 상황, 유연한 대화를 통해 증폭되는 불협화음, 술자리가 이어지는 스타일은 같지만 미묘한 차이점이 느껴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걸까. 전작들 보다 다소 긴 러닝타임도 한몫한다. 청년 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걱정과 청년 아웃사이더의 충돌은 균열을 일으킨다. 한결같이 오롯이 연애에만 관심 있던 기존 남성 주인공이 결혼이란 제도 안으로 들어오려 시도한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홍상수식 철학에 변화가 감지되었다.

청년의 불안함 속 허세

영화는 저화질, 초점 나간 장면으로 무언가에 눈먼 사람들을 담아낸다. <물안에서> 보다 흐리지 않지만 의도적인 불편함이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제로 쓰인다. 극 중 동화는 흐릿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는 세상의 엄격한 잣대와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감독의 마음과 같다. 자신을 규정하려 드는 세상에 뚜렷한 답 대신, 회색 인간으로 남고 싶은 불완전한 도피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세속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지만 어쩌지 못해 굴복해버린 결말의 상황과 겹쳐진다.

준희네 가족은 동화를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물건 품평을 하듯 이것저것을 따지고 든다. 콧수염은 왜 기르는지, 프라이드를 모는 이유는 무엇인지, 시인으로 등단해서 돈벌이는 하는지, 아버지와 가까운지 등 무례한 질문을 계속 퍼붓는다. 돈, 아버지, 욕구에 의존하지 않고 싶다는 말에 코웃음 친다. 그때마다 동화는 웃으면서 응대하지만 굳은 의지는 결국 시험에 들고야 만다.


한편, 본인을 투영한 인물을 자기 성찰적 시선으로 탐구하는 방식은 여전하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무능력하고 지질하며 독립적이지 못하다. 말은 청산유수지만 속내는 텅 비어 있는 위선자다. 높은 이상과 현실의 비루함이 비교되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부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 한참 못난 인물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는 데 있다. 한 인간으로 온전히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고 누구나 실수를 반복하고 성장한다는 거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모순 사이, 부조리를 경험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 연인인 배우 하성국과 강소이의 관계로 스토리가 확장되었다는 데 있다. 감독은 회의가 길어져 하성국을 기다리던 강소이를 들어오라고 했고,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의 시골집에 초대해 달라는 농담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결국 초대받아 강소이 부모님의 집이 영화의 배경이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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