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목화 농장의 소작농이자 목사의 아들인 새미(마일스 케이턴)는 천부적인 보이스를 지닌 뮤지션이다. 하지만 고된 노동과 부모님의 걱정에 꿈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해 답답하다. 하지만 사촌 형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의 도움으로 데뷔 무대를 갖는다.
새미는 흑인 전용 클럽 ‘주크 조인트’의 개업식에서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자신이 음악으로 과거와 미래의 영혼을 불러내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인물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첫사랑과 데뷔 무대를 이룬 기적 같은 날,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려 버린다.
시공간을 뒤흔드는 음악
영화 <씨너스: 죄인들>은 인종 차별이 만연했던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흑인 커뮤니티의 분열과 폭력에 관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뤘다. 호러와 음악을 결합해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독창적 무드를 형성한다. 미스터리 호러 장르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음악, 성장, 가족, 누아르, 역사극으로 해석될 것이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지금껏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라며 외할아버지가 나고 자란 1930년대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를 들었다.
오랜 억압을 겪었던 흑인 역사의 잔혹사를 음악이란 언어로 풀어낸 대서사시는 137분 동안 전율을 선사한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새미의 라이브 공연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러 영혼을 불러들인다. 과거와 미래의 존재, 현재 주점의 사람들이 경계 없는 장소에서 유희를 즐기는 장면은 경탄을 자아낸다. 흑인 음악의 영혼이라 불리는 ‘블루스’를 통해 애환, 연정, 한(恨), 가족을 녹여 냈다.
뱀파이어의 고적적인 특징을 가미한 장르적 쾌감도 상당하다. 피를 탐하고 목을 물어 전염시켜 종족을 확장하는 영생의 존재. 마늘을 두려워하고 태양에 노출되거나 말뚝이 박히면 소멸하고,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깊은 욕망에 빠진 특징도 낯익다. 내부인의 허락으로만 공간에 입장 가능하고 침을 흘리는 특징은 웃음과 긴장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구멍 없는 연기와 캐릭터의 향연
주연부터 잠시 등장하는 조연, 카메오까지 존재감 있는 인물로 꽉 차 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시작해, <크리드>, <블랙 팬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로 호흡을 맞춘 마이클 B. 조던의 1인 2역이 인상적이다. 성격차를 보여주는 상징적 의상과 말투로 분위기를 매료시킨다. 그가 왜 라이언 쿠글러의 페르소나인지 입증한다.
새미를 연기한 신예 마일스 케이턴은 스크린 데뷔작이다. 그는 16세부터 H.E.R.의 백보컬로 활약하며 콜드플레이와 월드 투어 중 합류를 제안받았다. 음악 감독 루드비히 고란슨과 함께 즉흥 연주와 기타를 배웠으며 실제 기타 연주와 라이브 노래를 선보여 사실적인 캐릭터 빌드업에 성공했다. 램믹에게 처음 희생당해 트리오를 결성하게 된 버트 역의 피터 드라이매니스와 조앤 역의 롤라 커크도 실제 뮤지션이다.
<범블비>로 한국에 이름을 알린 헤일리 스타인펠드는 앳된 얼굴을 지우고 관능적인 매력을 뽐내며, 탐닉적인 뱀파이어로 분한 잭 오코넬은 잔망스럽게 밴조를 튕기며 민속음악을 연주해 눈도장을 확실히 찍는다. 쿠키 영상에 등장하는 60년 후의 새미는 유명 블루스 기타리스트 버디 가이다.
1930년대 미국의 어두운 과거
영화는 1차 세계대전(1914-1918), 금주법(1920-1933), 짐 크로우 법(1976-1965), KKK 등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되짚는다.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은 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참호에서 살아 돌아온 참전 용사다. 이후 돈을 벌기 위해 시카고 갱단에 합류했으나 여전히 차별받는 현실에 범죄를 저질렀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술 창고를 털어 와인과 맥주를 고향으로 가져와 옛 제재소 건물에 주점을 차릴 계획을 벌인다.
몰래 술을 파는 것도 모자라 중국계 부부 보(야오)와 그레이스(헬레나 휴)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나머지 물품을 지원받기로 약속하며 돈 벌 궁리를 짜낸다. 이제 술과 음식이 준비되었으니 일할 멤버 영입을 시작한다. 기차역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델타 슬림(델로이 린도)을 피아니스트로, 온종일 목화솜 따는 밭을 떠나지 못하던 콘브레드(오바 벤슨 밀러)를 경호원으로, 스모크의 아내이자 후두교 주술사인 애니(운미 모사쿠)를 요리사로 고용한다.
어둠이 깔리자, 주점은 파티를 즐기러 온 손님들로 북적이지만 중간 정산을 마친 쌍둥이 형제는 난감하기만 하다. 손님 대부분이 목화밭 품삯으로 받은 농장 화폐를 현금 대신 지불했기 때문. 농장 화폐는 남북전쟁 이후 폐지된 노예제도의 다른 이름이었고, 이는 공공장소에서의 흑백 분리 법인 '짐 크로우 법'과 'KKK(백인우월주의)'로 상징되는 합법 노예제의 일부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시스템 속 누가 죄인인가?
제목 씨너스 즉, 죄인은 각자의 사회적 위치와 입장 차이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영화 속에서는 다수의 권위자가 만든 시스템의 약자 영화 안에서는 흑인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일은 30년대 미국뿐만 아니아 21세기에도 반복되는 아이러니다. 죄를 짓지 않아도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잠재적인 누군가를 암시한다.
이렇듯 <씨너스: 죄인들>은 함축적 의미와 메시지가 다층적이라 즐길거리가 많다. 문화, 역사적 배경을 알고 봐도 좋지만, 모르고 봐도 영화 자체로 만듦새가 뛰어나다. 깊이 있는 질문뿐만 아닌 오락성과 예술성, 장르의 변주도 수려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곡성>, <파묘>가 떠오르고, <겟 아웃>,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교차된다. 그만큼 이 영화에 레이어드 된 소재와 주제는 여러 사유를 불러낸다.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라이언 쿠글러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그의 차기작이 무척 기대된다.
덧) 뱀파이어 램믹은 죽음의 대리자이자 생명의 근원자이다. 램믹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어차피 KKK 단이 습격할 운명이었다며 구원자를 따르라 말한다. 스택과 메리처럼 인종 차이로 함께 할 수 없는 연인, 열심히 일해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지독한 현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뛰어넘어 초인적인 존재가 되자고 제안한다. 과거에는 아일랜드 이민자로서 환영받지 못한 피해자였지만 현재는 가해자가 되어 KKK와 손잡고 흑인을 넘어 여러 문화를 점유하려 든다. 누구에게도 차별받지 아니하고 영원히 함께 가족이 되고 노래로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고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