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넘버원>은 어느 날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앞에 알 수 없는 숫자가 보이기 시작한 하민(최우식)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숫자는 밥을 먹을수록 하나씩 줄어들고 0이 되면 엄마 은실(장혜진)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식탁 앞에서 밥 먹는 행위가 죽음으로 바뀌는 공포 자체였다.
이후 하민은 갖은 핑계를 대며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려 한다. 도시락은 버리고, 밥을 먹고 들어오거나, 외식을 하자고 부추긴다. 하지만 무조건 피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시간만 보내던 중 여자친구 려은(공승연)에게 겨우 비밀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짐을 덜어 본다.
한편, 시간은 흘러 하민은 아예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 중이었다. 집에 가는 일을 많지 않았고 그게 엄마에게 도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하민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멀어졌던 날들을 후회하며 남아 있는 시간을 함께 소중히 여긴다.
건강한 집밥 같은 영화
영화는 우와노 소라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한다. 단편의 이야기를 늘려 아들과 엄마가 운명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았다. <거인>으로 제36회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은 김태용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감독은 데뷔작 <거인>의 영재와 <넘버원>의 려은을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밝히며 연출 톤 변화의 성장과 변화를 전했다. 가족의 형태와 의미가 변화된 현대 사회에서 소통의 부재를 상기하도록 했다. 따라서 려은은 소원해진 모자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결핍은 결점이 아닌 가능성’이란 따스한 목소리로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위로를 건넨다.
아들 하민 역에 최우식은 아이같이 해사한 얼굴에서 점차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거인> 이후 12년 만에 김태용 감독과 재회해 첫 사투리 연기에 도전하며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엄마 은실을 맡은 장혜진은 아들을 걱정하며 동동거리다가도 씩씩하게 삶을 꾸리는 인물이다. 남편과 장남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법도 하지만 하민을 위해 다시 일어선다.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무조건적인 희생도 하지 않는, 진화된 한국 엄마이다. 은실이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아들이 먹을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과정 자체다. 말 한마디 살갑게 하는 것보다 맛있는 한 끼를 차리는 게 은실에게는 사랑을 전하는 의미다.
부산 출신답게 다양한 노포가 등장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영화 속 로케이션은 대부분 김태용 감독과 장혜진 배우의 추억이 담긴 장소로 채워졌다. 경상도 출신이면 반가울 소고기뭇국과 콩잎 절임 등 지역 사투리와 음식으로 향수를 부른다. 자극적인 삶에 지쳤다면 엄마가 해주는 건강한 집밥이 생각나는 영화가 <넘버원>이다.
유한한 부모의 시간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은 유한하다. 이를 숫자로 표현한 <넘버원>은 미스터리하게 시작해 웃음으로 에너지를 더하고 후반에는 먹먹한 울림을 전한다. 다만 판타지 장르로 생각했다면 실망할 수 있겠다. 후반으로 갈수록 진진한 드라마가 펼쳐지며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눈물을 유도하기보다 서서히 층위를 쌓아가는 감정이 물 흐르듯 전이되는 쪽을 택했다. 제목 ‘넘버원’은 엄마의 음식을 맛볼 남은 숫자이면서도 모두에게 넘버원인 엄마이자, 흥행 넘버원을 바라는 염원이다. 결국 떨어져 지내는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해보라는 제안이고, 삶의 소중함과 일상의 행복을 일깨우는 감동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부모님을 떠올리게 만든다. ‘앞으로 엄마의 밥을 먹을 횟수는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질문을 바꿔 부모님께 음식을 해줄 수 있는 날로 환산해 보는 의미다. 엄마라는 눈물 버튼, 집밥이란 치트키가 영화에서는 새로운 신파로 다가오는 이유다.
[인터뷰] 장혜진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