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 2009년 지구멸망의 날 다시 만나

by 장혜령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2007년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이다. 일본의 차세대 감독으로 떠오른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데뷔작 <엣 더 벤치>로 국내에도 인정받은 주목할 만한 감독이다.


사진작가로 시작해 유명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광고를 연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원작의 기본 정서를 유지하고 무형의 마음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절제된 감성과 빛과 색에 관한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느슨한 분위기도 살렸다. 레트로 분위기의 필름 감성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해 실사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인상적인 기법을 선보였다.


아날로그 감성이 지배하는 영화는 1991년을 메타포로 활용했다. 1991년은 타카키와 아카리의 첫 만남 해이자 감독 오쿠야마 요시유키, 뮤지션 요네즈 켄시의 출생 연도다. 운명적인 인연에 영감받은 요네즈 켄시는 오리지널 스코어 ‘1991’를 헌정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대표곡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도 흘러나온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18년 전 다시 만나자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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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잊지 못한 타카키(마츠무라 호쿠토)는 18년 전 약속에 기대어 살아간다. 도쿄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며 반복되는 일상을 무기력하게 보내고 있을 뿐이다.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겉돌기만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우수에 찬 눈빛은 간혹 이성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관계를 차단하려는 의도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끝없는 공허함은 타카키를 더욱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었다. 어둠의 근원은 1991년 봄에서 출발했다. 초등학교에 전학 온 아카리(시로야마 노아)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둘만 추억을 쌓아갔다. 이후 같은 중학교에 가기로 약속했지만 아카리가 이사 가게 되면서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붙이던 어느 날, 또다시 불가항력 이별이 다가오자 타카키는 결심한다. 마음을 담은 편지를 들고 아카리를 직접 찾아가려 한다. 동선을 체크하고 시간까지 계산해 저녁 7시까지 도착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날씨가 말썽이었다. 기쁜 마음은 벌써 아카리에게 닿았지만 눈발은 점점 거세져 물리적 거리를 쉽게 좁히지 못한다.


기차 연착으로 약속 시간보다 4시간을 지나 도착한 타카키는 무거운 발걸음을 역사 안으로 옮겼다. 다행히 아카리는 타카키를 기다려줬고 둘은 눈밭을 해치고 벚나무를 보러 갔다. 그 앞에서 짧은 입맞춤으로 마음을 확인하며 2009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미완성이라 아름다운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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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원작에서 짧게 등장했던 타카키와 아카리의 미래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유년 시절 두 사람은 각자의 구원자였다. 나쓰메 소세키의 만화를 읽던 소년과 천문학 서적을 읽던 소녀는 서로를 동경했다. 짧았지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나누며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같은 뿌리의 기억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자라났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별의 상처로 고독해진 타카키와 현실을 수용하며 활기찬 아카리의 일상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유다. 60분이었던 원작 러닝타임 이상을 오리지널 스토리로 각색해 122분으로 확장했다. 30대를 앞둔 타카키의 일상과 고민, 그리움을 더해 풍부한 서사를 완성했다. 직장 상사, 천문학 관장 등 추가된 인물이 촘촘하게 서사를 채워냈다.


사실 제목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의 낙화 속도라며 아카리가 타카키에게 했던 말에서 비롯되었다. 해마다 피고 지는 계절의 상징일 뿐 실제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속도는 아니다. 우주의 신비에 심취해 있던 소년이 첫사랑을 영혼에 새긴 마법 같은 단어다. 벚꽃, 눈, 우주선을 볼 때마다 반응하는 잔상, 사람에게 닿는 마음의 속도를 뜻하는 은유인 셈이다.


종국에는 아카리의 이름처럼 밝은 내일을 따라가라 말한다. 이루어지지 못한 미련을 털어내고 성장에 초점 맞춘 결말이다. 과거 추억 속에 살았던 타카키가 이제는 추억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응원이 담겨 긴 여운을 남긴다. 원작 팬에게는 선물 같은 기쁨을 선사하고,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는 세밀한 감정의 속도를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터뷰]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요쿠야마 요시유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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