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넷> 상실의 고통이 예술이 될 때

by 장혜령

영화 <햄넷>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한 주요 8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노매드랜드>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2관왕에 오른 클로이 자오의 두 번째 아카데미 도전작이다. 3월 16일(한국시간) 오전에 시작하는 시상식에서 몇 개의 트로피를 얻을지 기대되는 작품 이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평범한 부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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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제시 버클리)는 대자연 속에서 어느 속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갔다. 마을 사람들이 마녀가 부른다 해도 아녜스에게 숲은 죽은 어머니를 만나고 각종 약초와 치유의 에너지를 얻는 공간으로 작용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라틴어 교사였던 윌리엄(폴 메스칼)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윌리엄은 가죽 장인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교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문학에 관한 꿈을 키우던 청년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고 결혼 후 행복이 충만한 가족을 만들어 간다.


큰 딸 수재나(보디 레이 브레스낙)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한 아녜스는 쌍둥이 햄넷(자코비 주프)과 주디스(올리비아 라인스)를 낳는다. 둘 중 주디스는 병약하게 태어나 온 가족의 걱정을 끼쳤고, 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행복은 오래 거지 않았다. 극작가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 윌리엄이 없던 날, 평화롭던 가족에 병마가 찾아오고 주디스는 흑사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을 보낸다.


밤새도록 아픈 아이를 보듬으며 매달린 아녜스는 새벽녘 잠시 눈을 붙이고, 주디스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던 햄넷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속여 주디스를 살린다. 과거 아녜스는 자신의 죽음을 자녀 둘이 보게 될 거라는 예언이 어쩌면 틀렸을 수 있다고 웃어넘겼지만 사실이 되어버리자 깊은 슬픔을 떨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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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햄넷>은 매기 오페럴의 소설 <햄닛>(영화와 영어 철자는 같고 한국 소설 제목은 햄닛이다)을 바탕으로 하며 원작자가 각본에도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세계적인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의 탄생 비화를 실존 인물의 이름을 빌려 쓴 팩션이며 1596년 여름 워릭셔 스트랫퍼드에서 죽은 소년의 삶에서 영감받았다.


오프닝의 글귀처럼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스트랫퍼드 기록 문서에는 햄넷(hamnet)과 햄릿(Hamlet)이 같은 이름이며 혼용되었다’는 문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셰익스피어는 1582년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지만 1585년부터 1592년까지 7년 동안은 알려진 바가 없다. 어린 아들의 장례 기록은 있으나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작품에 16세기 만연했던 흑사병, 역병의 단어가 보이지 않는 점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고통의 정서가 예술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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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불리는 <햄릿>은 ‘기억하라’라는 선왕의 마지막 말처럼 슬픔에서 헤어 나오는 법을 스스로 깨달은 치유제로 작용한다. 떠난 망자를 기억하는 것, 그로 인해 살아남은 사람의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거대한 연극을 통해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영화 <고스트라이트>와 정서를 공유한다. <고스트라이트>는 아들의 죽음 후 분노와 외로움 속에서 표류하던 가장이 아마추어 극단에서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나며 연기와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야기다. 연극을 통해 아버지는 아들을 이해하고 드디어 마음속에서 떠나보낼 기회를 얻는다.


<햄넷>의 윌리엄이 아들의 죽음 후 느낀 여러 감정을 문학작품에 쏟아 낸 것처럼, 상실 후 공허한 마음을 예술로 채워가는 회복 과정이 공통점이다. 기회가 된다면 두 작품을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햄넷>의 아버지는 비록 요단강을 건너려는 아들을 데려오지는 못했지만 활자 속 시켜 부활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배우를 꿈꿨던 햄넷은 아버지의 작품에서 500년 후에도 여전히 주인공이다.


결국 영화의 별개로 작가의 이야기는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경험하지 않는다면 토해낼 수 없다는 본질과 맞닿는다. 예술은 고통을 치유제이자 타인의 삶을 필터로 한 대리 경험이다.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허구라는 점을 알면서도 배우의 연기에 따라 웃고 울면서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행동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예술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상기하는 것은 물론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여전히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와도 맞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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