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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Feb 10. 2020

<정직한 후보> 우리는 주상숙 같은 후보를 원한다!

라미란의 라미란에 의한, 라미란을 위한 영화

정직한 후보 HONEST CANDIDATE, 2019, 장유정


여성 캐릭터가 늘어나는 것은 언제나 반갑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전작 <부라더>에 이어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장유정 감독의 코미디 영화다. 뮤지컬 감독에서 <김종욱 찾기>로 감독과 연출까지 맡으며 영화판에 입성한 장유정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믿고 볼 수 있는 확실한 여성 캐릭터와 감독의 존재감은 큰 수확이자 행운이다.


배우 라미란은 조연에서부터 시작해 탄탄히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가장 라미란스움을 만들어 왔다. 전작 <걸캅스>의 투톱 주연에서 여성 원톱 주연이라는 쾌거도 잡았다. 그야말로 <정직한 후보>는 라미란의 라미란에 의한, 라미란을 위한 영화다.


2014년 개봉한 브라질 영화 <O Candidato Honesto 우 칸지다투 오네스투>를 리메이크했다. 원작의 남성 대통령 후보를 여성 정치인으로 바꾸면서 세부적인 부분을 가미했다. 할머니 김옥희 여사(나문희)가 원작에서는 원인만 제공하고 사라지지만 <정직한 후보>에서는 살아 있으며 다른 사건과 엮이는 끈이 되어 준다. 정치적 풍자와 해학도 한국적인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꾸었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컷


영화는 누구나 해봤을 ‘거짓말’을 소재로 사회, 정치, 삶을 풍자하고 있다. 주인공은 겉으로는 국민의 일꾼이라 말하지만 속내는 국민을 머슴처럼 부리고 싶은 4선 도전 정치인 주상숙(라미란)이다.


주상숙은 부모처럼 키워준 김옥희 여사(나문희)의 보험금 때문에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대변인이 되라며 정치를 권유한 할머니의 뜻과는 다르게 권력의 맛에 중독되어 갔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있던 가족도 없애고, 남편 봉만식(윤경호)과 쇼윈도 부부도 서슴없다. 급기야 할머니마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만들어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어렵게 손주를 키웠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던 할머니의 깊은 뜻도 온데간데없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컷

점점 할머니는 손녀가 그릇된 길로 가는 게 안타깝고 철 좀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이에 할머니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할머니는 상숙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한다. “우리 상숙이, 거짓말 좀 안 하고 살게 해주세요 제발!”


어라? 하늘이 들어준 것일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던 주상숙은 다음날 거짓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거짓말 같은 상황에 놓인다. “나 어떡해, 이거 진짜 거짓말이지?!”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한 빈말이 어렵다면 그야말로 정치인의 치명타다. 주상숙은 주체할 수 없는 진실의 입 때문에 난감함 상황에 처한다. 흔히 하는 접대성 멘트, 하얀 거짓말도 불가다. 입 만 열면 바른 말 제조기다. 시어머니에게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속마음은 통쾌한 대리만족을 준다.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담아둔 진실이 주상숙의 입을 통해 전해질 때면 연이은 카타르시스와 해방감이 커진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컷

영화 <정직한 후보>의 포인트는 주상숙의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이다. “부부끼리 누가 뽀뽀를 해. 맨 정신에”, “말이 장에서 나와, 말이 똥처럼 나와”, “내가 서민의 일꾼은 아니잖아”, “남자였으면 이 더러운 꼴 안 볼 텐데” 등등. 때로는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법한 마음의 소리가 빵빵 터진다.


선거는 쇼다. 더러워도 아닌 척, 좋아도 싫은 척, 말 한마디 한마디가 표와 직결된다. 때문에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상황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아이러니다. 착함은 정글 같은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최고의 가치가 아닌지 오래다. 착하게만 살면 오히려 사기당하는 세상에 주상숙은 어렵게 지금의 자리에 올라왔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3선 타이틀이 거짓말로 무너질 위기에 봉착한다.


매년 선거철이 되면 청렴을 무기로 선거 유세를 하는 후보들이 많다. 하지만 뼛속까지 다 보여주겠다던 후보 시절을 잊어버리는 처사는 매번 반복된다. 당선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리발 내밀기가 주특기인 정치인,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정치판에 사람들은 지쳤다.


영화 <정직한 후보> 스틸컷

정직함이 진정성이 되는 사회, 우리는 주상숙 같은 후보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2020년을 여는 가장 기대되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아이러니는 비수기 2월 극장가에 웃음 핵폭탄을 투척할 것으로 예상한다.




평점: ★★★★

한 줄 평: 라미란의 라미란에 의한, 라미란을 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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