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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21. 2020

<스킨> 피부 위 과거를 지워가는 뼛속 깊은 속죄


영화 <스킨>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상영을 비롯해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빌리 엘리어트>로 잘 알려진 제이미 벨의 파격 변신은 물론, 실제 백인 우월주의 집단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브라이언 위드너와 갱생으로 이끈 러몬트 젠킨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인종차별 집단에서 커온 남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삶을 살아가는 놀라운 영화다. 


히로인은 단연 제이미 벨이다. <빌리 엘리어트>이후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며 전형성을 탈피해왔다.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라 할만한 브라이언을 만나 강렬한 변신했다. 초반 난폭한 모습에서 내적 갈등을 지나 가족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성장과 고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밖에 <컨저링>에서 영매를 연기한 베라 파미가, <다크 워터스>의 진실을 알린 농부를 역의 빌 캠프, <파라다이스 힐스>의 감금된 소녀를 맡은 다니엘 맥도널드가 훌륭한 조력자로 뒷받침해 준다. 전작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파격적인 변신이 주목할만하다.


브라이언(제이미 벨)은 어릴 적 알코올 중독 부모의 학대를 피해 도망쳐 거리를 떠돌다 14살에 극단적 인종주의 단체 빈랜더스 소셜 클럽에 몸담는다. 그들은 오고 갈데없는 브라이언을 먹여주고 재워주며 가족이 되었다. 클럽 내에서도 핵심 멤버인 브라이언은 폭력 시위, 기습 공격, 범죄를 일삼으며 악명 높은 스킨헤드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늬만 가족일 뿐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철저한 복종과 엄격한 규율을 가진 범죄조직이다. 빈랜더스에서는 흑인이나 동양인, 소수자, 종교인, 불법체류자까지 무조건 차별한다. 사회의 법은 필요 없었다. 오직 자신들이 믿는 게 법이며 신념인 극우주의 단체이다.

영화 <스킨> 스틸컷

그러던 어느 날 브라이언은 미혼모 줄리(다니엘 맥도널드)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과 가족의 따스함을 느끼자 회의감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커진다. 결국 브라이언은 가족들에게만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탈퇴를 결심하지만. 그들의 살벌한 위협과 집요한 추적은 날로 심해지기만 한다.


한편, 그를 돕는 젠킨스(마이클 콜터)는 한 사람이라도 전향시키는 것이 임무라 믿는 인권단체의 살아 있는 신화다. 그는 하루빨리 혐오를 끝내고 세상을 희망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인류애를 가진 사람이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오랫동안 주목해왔으며, 끈질기게 브라이언에게 전향을 유도한 브라이언의 은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를 탈퇴하려는 과정과 새로운 인물의 포섭 과정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아이들은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아 쉽게 포섭 가능하다. 자연스럽게 신천지가 젊은 층을 끓어 들이는 과정과 오버랩 된다. 마치 생의 주기처럼 한 사람이 나가고 한 사람이 들어오는 순환이 계속된다.


이들은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두려움과 절망을 미끼 삼아 사회의 불만과 분노를 쌓도록 부추기는가 하면 한 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단단히 옭아맨다. 또한 차별과 혐오를 키우도록 방치하고 지시한다. 타인을 믿지 말고 오직 조직만을 믿고 따르며 유대감을 갖도록 철저히 가르친다. 커진 결속력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체계적이다. 한 가족임을 강조하지만 겉모습만 가족일 뿐, 돈을 위해 움직이는 이익집단일 뿐이다.

영화 <스킨> 스틸컷

가족은 키워준 대가를 묻지도 않고 빚의 형태로 상납하지 않는다. 조직원들은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무한한 충성으로 대갚음하고 있었다.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뿌리 깊게 세뇌되어 있었던 브라이언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새 삶을 찾을 수 있었다. 


브라이언의 온몸을 뒤덮은 문신은 폭력과 증오의 역사였다. 동시에 스스로 찍은 낙인이자 외면당한 사람들이 몸집을 부풀려 우월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다르게 속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컸었다. 아이들의 아빠,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싹튼 책임감은 브라이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피부에 새긴 문신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는 고통은 사회를 향한 속죄일 것이다.


때문에 사랑과 희망이 있다면 누구나 자기 삶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상처 위 새살이 돋아나듯 제2의 인생을 얻은 브라이언을 보며 가족의 사랑을 느낀다. 전반적인 어둡고 거친 분위기에서도 알 수 없는 따사로움이 움트는 이유다. 혐오에 맞서는 것은 혐오가 아니라는 것을, 포용과 관용으로 충분히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평점: ★★★★

한 줄 평: 사랑의 위대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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