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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장cine 수다

<난 그녀와 키스했다> 커밍아웃에서 커밍인?!

솔직함이 최고, 이성애를 통해 동성애 들여다보기

by 장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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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를 개봉당시 놓쳤다가 최근 관람했다. 왜냐하면. 심심해 보이는 포스터와 그저그래 보이는 로맨틱 코미디스러운 제목이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물론, 수위 높은 19금 유머와 대사들로 모든 금기를 깨고 있었다.


사실 포스터와 제목 정도만 알고 관람하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로맨틱 코미디, 퀴어의 여러 클리셰를 뒤집으며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까지 의심하게 된다. 여러 터부를 여러 번 뒤집은 변덕이 싫지만은 않았다. 감초로 나오는 친구 샤를과 티격태격하는 클레망스, 부모님의 너무나 개방적인 사고방식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평생 게이였던 나인데..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 스틸컷

34년간 쭉 게이로 살아온 제레미(피오 마르마이)는 10년 째 사귀고 있는 앙투안(래닉 가우트리)와 최근 결혼 발표를 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가족들의 적극적인 축복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제레미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뼛속까지 게이라고 믿어온 제레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며칠 전 제레미는 스웨덴에서 온 아그나(애드리애너 그라지엘)와 격정적인(?)인 밤을 보냈다. “어떡하지? 술이 원수지. 술김에 그랬을 거야” 라고 자책하던 중, 동업자이자 오랜 친구인 샤를(프랑크 가스탐비드)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놓는다. 샤를은 충고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밤이었고 술김에 그랬을 수 있다며 대부분 낮에 다시 만나면 지난밤에 있던 일은 깨 버린다고 다시 찾아가 보라며 다독인다.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 스틸컷

샤를 말대로 낮에 그녀의 집에 찾아간 제레미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자기도 모른 사이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다른 여자에게는 가슴이 뛰지 않는다. 오직 아드나에게만 반응하는 심장이 요동친다. 그렇다고 사이좋았던 앙투안과 권태기가 온 것도 아니다. 결혼을 꿈꿨고 모범적이고 자랑스러운 게이 커플로 거듭날 준비를 거의 마쳤단 말이다.


아드나를 보고 있으면 삶을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쭉 좋아하던 게 익숙함에서 오는 습관 같은 거였던 건가 반문한다. 자기조차도 자기 진심을 모를 때가 있지 않을까. 제레미는 끊임없이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마음이 움직이는 쪽으로 자꾸만 기우는 탓에 어쩔 수 없다.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오늘은 말해야지라며 전전긍긍하다가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시간을 흘러 아드나와 겉잡을 수 없게 깊어질수록 결혼식은 다가오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이성애자로, 집에서는 동성애자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중 아드나와 앙투안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 스틸컷

영화는 동성애에 관한 상투적인 고정관념을 뒤엎는다. 그리고 너 자신은 누구인지 깊게 고민하길 촉구한다. 누구든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며, 누구를 사랑하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고 지지하고 있다. 사랑은 진정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게이였던 남자 제레미의 마음에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며 모든 삶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제레미는 광고 회사 CEO다. 그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한 아드나는 설문조사 방법을 가르쳐 주는 제메리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다. 미리 보는 미래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것. 미래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고 생각은 바뀌기 마련인 것이다.


쿨해 보이는 제레미의 부모도 사실 15살에 게이 선언한 아들 때문에 적잖이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부모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 감정을 억눌렀고, 세상에 당당하게 다름을 외치는 아들을 진심으로 지지했던 것이다. 때문에 연인 앙투안을 데려왔을 때 친자식처럼 대했고, 결혼한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워했다. 결혼이 파투나자 화 내는 부모님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평생 핫도그만 먹다가 갑자기 파이가 좋아진 거네?”라고 말하는 밉상친구 샤를의 대사가 정곡을 찌른다. 과연 정상과 비정상은 누가 나누는 것일까? 내가 좋으면 좋은 게 아닐까? 세상의 모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우리 모두 일 것이다.

영화 <난 그녀와 키스했다> 스틸컷

모든 일에 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왜 이랬는지 이유를 찾지 못할 일이 우리 주변에서는 훨씬 많다. 때로는 완전히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 제레미는 ‘사랑’때문에 정체성이 흔들린다. 낯설고 신선해서 앞뒤 따지지 않고 빨려 들어가는 감정. 즉 익숙한 것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생각은 새로운 도전정신과 만나 진보적인 행동으로 바뀔 수 있다.


영화는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사랑은 옮겨가기도 하며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프랑스에 워킹타이틀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프랑스식 로맨틱 퀴어 영화다. 시크함으로 똘똘 뭉친 프랑스 코미디 때문에 빵빵 터지기도 했다.


미래는 항상 열려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열린 결말처럼 인생은 한 가지로 떨어지는 정답이 없고, 사랑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랑이 존재함을 <난 그녀와 키스했다>에서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평점: ★★★☆

한 줄 평: 이성애를 통해 동성애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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