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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27. 2020

<블루 아워> 어른이의 늦깎이 성장통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

영화 <블루 아워>는 온전히 두 배우만으로 꽉 찬 우울함과 발랄함의 대비가  여름과 잘 어울린다. 만화 속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심은경 배우의 명랑함에 흠뻑 빠져든다. 실제로 심은경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맡은 기요우라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울라프 같은 캐릭터로 해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신문기자>보다 먼저 찍었으며 심은경의 일본 첫 작품이자 실제 CF 감독 하코다 유코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를 통해 두 배우는 다카사키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앞서 열린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심은경은 한국 최초 수상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숨만 쉬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어른 

영화 <블루 아워> 스틸컷

CF 감독으로 일하는 스다나(카호)는 번아웃 상태다. 남편과는 소원해 진지 오래. 새벽에 들어간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 건 예사다. 오히려 고양이 인형을 끌어 안고 숙면을 취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다. 서로를 알기 위한 탐색은 진작 사라졌다. 스다나가 밥을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빵을 좋아하고,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도 취향도 많이 다르다. 하지만 싸우지 않는다. 이해하기보다는 포기했다는 표현이 맞는 동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라도 지루한 일상에 쫄깃한 스릴을 느낄 수 있을까나. 동료와 아슬아슬한 불륜 관계 중이지만 그마저도 깨질 위기다. 최근 그의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이다. 일은 지긋지긋하고,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안되고, 잘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왜 아이 갖지 않느냐고 성화다. 아이를 가지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누가 누구를 책임진다는 건가. 나 혼자도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불투명한 미래는 적성에 맞지 않는다.


모든 게 명확하지 않고 불안한 스다나는 30대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어버렸고 눈 깜짝할 사이 곧 40대가 되어 버릴 거다.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도 덜 됐고 배우고 할 일도 많아 부족하지만 사회는 나를 어른이라 부른다. 그게 영 부담스럽고 못마땅하다.

영화 <

때마침 엄마의 전화를 받고 친구 기요우라(심은경)와 시골집으로 떠나게 된다. 요즘 따라 삶과 죽음에 대한 이미지가 자주 스치던 스다나는 유년시절의 추억이자 잊고 싶은 기억이 봉인된 고향으로 향한다. 어릴 적 할머니와 살았던 기억, 여름의 풀벌레 소리, 노곤하던 낮잠, 좋기도 했지만 잔인했던 상처들이 다시 떠오른다. 시골 사람 특유의 괴팍하고 억센 엄마, 무자비했던 아빠, 거리감이 있던 오빠. 남들에게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족은 잊고 싶은 과거의 한자락이기도 했다.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한 과거로의 여행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반영한 듯 주인공의 직업과 인생 고민이 묘하게 겹친다. 블루 아워란 하루의 시작과 끝에 찾아오는 새파래지는 순간을 말한다. 밤인지 새벽인지, 저녁인지 헷갈리는 몽환적인 순간. 몸만 자랐지 마음은 아직 아이와 어른 사이에 존재하는 스다나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그래서 작게 보면 여성 영화이자 로드무비지만 크게 보면 '나란 누구인가'란 질문에서 출발해 답을 찾아가는 정체성 찾기 프로젝트다. 아직도 자아 탐색기를 벗어나지 못한 어른이가 어른으로 불리는 세상에서 보내는 치열한 고군분투다.

영화 <블루 아워>스틸컷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여기저기 조각나서 흩어진 파편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림자같이 어둡고 우울한 나,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나. 상반된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화롭게 통합하는 게 바로 정체성 확립 중 하나다. 그 정체성은 누가 찾아주는 게 아닌 스스로 찾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삶의 방향성과 의미로 귀결되기도 한다. 때로는 한계가 찾아오겠지만 힘닿는 데까지 부딪히며 조금씩 맞춰가고 인정하며 타협한다. 영화에서는 언젠가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스다나가 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시작된다.


때문에 영화 속 두 여성은 아이인지 어른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청춘으로 대변된다. 자주 실수하거나 사회가 규정한 틀에 벗어나더라도 머리를 쓸어내리며 괜찮다고 토닥인다. 괜히 남들에게 좋은 사람, 멋진 사람으로 보일 필요 없이 부족하더라도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관객도 스다나와 같은 심정으로 느끼게끔 설계되었다. 삶을 위로하는 힐링점과 블루 아워의 혼란 지점을 그대로 느껴 볼 수 있게 말이다. 


시간을 알 수 없는 어스름한 블루 아워가 지나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과 마감하는 밤이 반드시 찾아온다. 특별한 일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고 가치 없어 보이더라도 그 하루가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간다.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지 그 선택은 평생의 숙제로 남아 있다. 내 안에 숨겨진 진짜 나와 대면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은 사람은 설령 그 선택이 실패한다고 오히려 단단해지는 기회가 될 것이다.





평점: ★★★☆

한 줄 평: 타인에게 보여지는 나, 내가 되고 싶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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